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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암살자: '100명 이상 죽였지만 후회 안해'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외치던 한 남성은 어느새 잔인한 테러리스트이자 살인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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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8.05.07. | 18,713 읽음

A file picture showing a close-up of a man's camouflage-clad mid-section, and a Kalashnikov rifle in his hands

출처 : Getty Images

7년간의 끔찍한 전쟁. 어쩌면 21세기 최악의 잔혹사가 쓰이고 있는 시리아. 이 무자비함의 한복판에서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외치던 한 남성은 어느새 잔인 테러리스트이자 살인자가 됐다.

주의: 고문, 살인 등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거나 지웠습니다.

칼리드가 처음부터 죽음의 향기에 매혹되어 살인자가 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칼리드를 포함한 6명의 남자는 시리아 알레포의 한 비행장으로 소집됐고 프랑스 출신 조교로부터 권총, 소음기를 장착한 총, 저격용 소총 등으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웠다.

그전까지 평화로운 방식으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그는 체계적인 살인 훈련을 통해 프로페셔널 암살자로 거듭났다.

"정부군 포로 군인들을 대상으로 훈련했습니다."

"찾기 어려운 위치에 포로를 풀어놓고 저격용 총으로 사살하는 훈련이었죠."

"때로는 여러 명을 한꺼번에 풀어놓고 그중 한 명만 조준 사격하는 훈련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암살 훈련은 오토바이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앞에 동료가 운전하면 제가 뒤에 앉아 목표물이 타고 있는 차 옆으로 따라붙는 거죠. 차 안의 목표물에 발포하면 목표물은 도망칠 수 없습니다."

칼리드는 미행하는 법도 배웠다.

주변 인물을 통해 접근하기 어려울 때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하는 법도 배웠고, 동료가 목표물을 사살할 수 있도록 호송 차량을 방해하는 법도 배웠다.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교육이었다.

Rebels celebrate in Raqqa after capturing the city on 4 March, 2013.

출처 : AFP

이슬람 근본주의 반군 '아흐라르 알 샴'은 시리아 정부군이 떠난 도시 라카를 지배하고 라이벌 집단을 제거하길 원했다.

칼리드는 그런 아흐 라르 알 샴의 중간급 리더 중 한 명으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평화로운 남자'

칼리드는 자신이 시리아 혁명이 발발한 2011년 당시만 해도 '평화를 지향하는 남자'였다고 말했다.

성지 순례자들을 모으는 일을 했던 그는 "약간은 종교적이지만, 근본주의적이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첫 반정부 시위 경험을 "놀라운 자유로움과 정부군에 대한 두려움을 같이 느꼈다"고 회상했다.

"조국을 돕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국의 해방을 가져오고 아사드가 아닌 다른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민주화를요. 25~30명의 작은 집단이었어요."

칼리드는 시위 초기에 어떠한 무기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진압대는 개의치 않고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고 체포했다.

칼리드 역시 체포됐다.

Syrian anti-government protesters near the southern town of Deraa, in April, 2011

출처 : AFP

"집에서 체포되어 안보형사부로 끌려갔어요. 거기서 정치부, 국가보안부를 거쳐 중앙교도소까지 이르렀죠. 거기서 한 달간 수용되어있다가 풀려났어요."

"걷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풀려났어요. 허리 통증이 심했거든요."

칼리드는 그곳에서 그의 인생 가장 잔혹한 간수를 만났다고 회상했다.

간수는 칼리드를 고문하고 무릎 꿇린 채 아사드 대통령의 사진을 보여주며 "너의 신은 죽을 거다. 아사드는 죽지 않는다. 신은 죽고, 아사드는 버틴다"라고 말했다.

또 간수는 칼리드를 잔인하게 고문했다.

"그는 제 손을 천장에 묶어놓고, 저를 발가벗겼어요. 또 '나는 양탄자'로 저를 밀어 넣고 제 등을 채찍질했죠. '널 증오한다, 증오한다, 죽어라. 내 손에 죽어라'라고 말하면서요."

"온몸이 마비된 상태로 간수 방에서 나왔어요. 다시 들것에 실려 중앙교도소 방으로 들어가니 다른 죄수들이 제 몰골을 보고 울더라고요."

"신이 만약 저를 구해주신다면 꼭 그를 찾아 죽이겠다고 결심했어요. 그가 다른 도시인 다마스쿠스로 가더라도 죽이겠다고요."

A photograph of a padlocked door in an Islamic State prison in Raqqa

출처 : BBC

칼리드는 교도소에서 풀려난 뒤 본격적으로 정부군을 향한 무력시위를 시작했다.

35명의 시리아 정부군을 납치해 탈영시키고, 그들의 소지품을 팔아 돈을 챙겼다.

간혹 매력적인 여성을 군에 잠입시켜 결혼을 미끼로 '시위대를 공격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들을 꼬시기도 했다.

칼리드는 그들을 살려주는 대신 탈영 영상을 촬영하도록 해 다시는 정부군에서 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또 몸값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몸값을 지불하고 살아남았지만 한 사람만큼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

바로 칼리드를 고문하던 간수다.

"그를 찾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교도소에서 일한 간수에 관해 물었어요. 결국 찾아서 미행했고 납치했죠."

"제가 나중에 그 간수한테 다시 말해준 건데, 그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네가 다시 이 교도소에서 나가 나를 붙잡는다면 자비를 베풀지 마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했죠."

"그를 중앙교도소 근처의 농장으로 데려갔어요. 그다음에 도축용 칼로 그의 두 손을 잘랐죠. 혀를 꺼내 가위로 잘랐어요. 그래도 만족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가 살려달라고 빌 때 죽였어요. 복수를 위해 버텨온 삶이기에 두렵지 않았죠."

"제가 잔혹하게 그를 고문하긴 했지만, 후회나 슬픔은 안 느껴요. 오히려 반대로 그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저는 똑같이 할 겁니다."

"죄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모욕감을 주는 간수에 대해 문제 제기를 받아줄 만한 기관이 있었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없었죠. 항의할 수 있는 국가도, 사람도."

칼리드는 혁명을 통해 믿음을 잃었다. 그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슬람국가(IS)를 위해 싸우게 됐다.

IS의 첩자

신의와 배신, 전투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내전 상황은 반란군 내에서도 여러 파벌을 형성해냈다.

칼리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살인자로 훈련시킨 아흐 라르 알 샴을 떠나 당시 알카에다의 공식 시리아 지부이던 '알누스라 전선'에 가입했다.

당시 그가 머물던 도시 라카는 2014년 초만 해도 번번한 유니폼도 없어 무시당하던 IS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였다.

A group of men look at a large black jihadist flag with Islamic writing on it proclaiming, "There is no God but God, and Mohammed is the prophet of God".

출처 : AFP

칼리드는 당시를 시민들이 참수, 처형, 고문에 대해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고 회상한다.

"IS는 사람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뒀어요."

"'오, 모하메드'라고 말하면 신성모독이라고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벌을 주고. 담배를 피우면 감옥에 가뒀어요. 살인, 절도, 강간.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죠."

"아이가 보는 앞에서 죄 없는 여자를 간통죄로 몰아 돌을 던져 죽이기도 했어요. 저는 닭 한 마리도 가족이 보고 있으면 안 죽이는데 말이에요."

당시 IS는 다른 라이벌 반군 집단에 금전과 지위를 약속하며 첩자를 모집했다.

칼리드 역시 IS에 '보안과장'이라는 직책을 제안받았다.

거부는 곧 죽음임을 알기에 그는 요청을 수락했다.

"수락했어요. 다만 알누스라 고위 간부였던 아부 알아바스에게 허락을 받고요."

"이중첩자가 된 거죠. IS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비밀리에 납치하고 심문한 뒤 죽였어요. 처음으로 납치한 사람은 IS 훈련소장이었어요."

"아부 알아바스가 정보를 흘리길 원한다고 하면 제가 IS에 정보를 전달했어요. 신뢰를 쌓기 위해 가끔 진짜 정보도 주곤 했죠. 동시에 그들의 기밀 정보도 빼냈어요."

알누스라는 2013년 IS의 합병 제안을 거절하고 그 반대편에서 IS와 대립하고 있었다.

칼리드는 이 두 라이벌 집단의 이중첩자로 일하며 16명의 IS 대원들을 몰래 사살했다.

Members of the Syrian Democratic Forces patrol a damaged house in Raqqa in September, 2017

출처 : BULENT KILIC/AFP

그중 한 명은 알밥 지역에서 온 이슬람 학자였다.

"노크를 하니 문을 열더군요. 바로 습격해서 총을 머리에 겨누었어요. 그의 아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제가 그를 죽이러 온 것을 알았어요. 제가 입을 열기 전에 그가 그러더군요. '원하는 게 뭐야? 돈? 여기 돈이 있으니 가져가.'"

"제가 아니라고 하니 그는 말했어요. '돈을 가져가.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와 자려면 그렇게 해. 죽이지만 말아줘.'"

"그 말을 들으니 그를 죽일 용기가 나더군요."

시리아 라카의 IS 지도자들은 새 대원들을 선호했다.

그래서 일부러 뇌물로 기존 대원들을 유혹한 뒤 뇌물을 받는 대원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때로는 미군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고, 아무 변명도 하지 않기도 했다.

IS의 제안을 받아들인 지 한 달이 되던 날, 칼리드는 그의 차례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는 터키로 도망쳤다.

A screengrab from the BBC documentary Syria: The World's War, showing a man's head in silhouette

출처 : BBC

우리는 그가 어떤 심정인지를 물었다.

"어떻게든 도망쳐서 살아남자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요.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고 형제자매들을 죽이는 인간을 본다면 당신이라도 조용히 가만있지는 못할 거에요. 저는 자기방어를 위해 움직였을 뿐이에요."

"정부군, 그리고 IS와 싸우면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신은 제가 그 어떤 민간인이나 죄 없는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요."

"거울을 보면 제 자신이 왕자처럼 보여요. 밤에 잠도 잘 잡니다. 그들이 제게 죽이라고 했던 모든 사람들은 죽어 마땅했으니까요."

"시리아를 벗어나서는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왔어요. 이제는 누군가 제게 불친절하게 대하면 그러려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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