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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에게 풀메이크업과 하이힐이 꼭 필요할까?

엄격하지만 실용성이 떨어지는 복장 규정에 승무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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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8.04.04. | 129,69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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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들은 전 운항에 걸쳐 야간 비행 중에도 풀 메이크업과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다

출처 : Getty Images

전직 버진 아틀란틱(Virgin Atlantic)항공사 승무원 제이드는 장거리 비행 도중 응급 의료 상황이 발생하면, 아픈 승객을 돕는 것 외에도 다른 걱정을 해야 했다.

제이드는 "과연 딱 붙는 치마를 입은 채 무릎을 꿇고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하는 게 가능할지 항상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버진 아틀란틱에서 일하는 가족이 있어 성은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이드는 정장 바지를 입고 심폐소생술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빨간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바르고, 꽉 끼는 빨간 유니폼 치마를 입고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다. 그는 "노출도 신경 쓰이지만, 복장 때문에 실제 위급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항공사의 엄격한 복장 규정이 실무에서 요구되는 실용성과 충돌하는 하나의 사례다. 작년에 여러 성 추문이 불거지면서 직장 내 성차별이 화두에 올랐지만,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아직 많아 보인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승무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성 고정관념을 고착시키는 복장 규정을 고집하는 항공사의 태도가 그 예이다.

버진 아틀란틱 항공사의 대변인은 BBC에 "이 항공사를 '상징하는' 유니폼은 광범위한 실험을 통해 편안함과 안전함을 증명했고, 여성 승무원들이 원할 경우 바지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힐이 아닌 낮은 굽의 신발을 신게 되기까지

승무원들은 항상 깔끔하고 세련된 겉모습을 유지한다. 하지만 하지정맥류, 수면 부족과 같은 건강 문제를 감당해야 한다. 일부 승무원은 복장 규정이 건강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전직 영국항공(British Airways) 승무원 멜 콜린스는 근무하면서 생긴 건막류와 심한 요통으로 고통받았다. 그의 계보기 수치에 의하면, 콜린스는 10시간 남짓의 장거리 비행시간 동안 11km 정도의 거리를 하이힐을 신고 걸었다. 하이힐이 복장 규정의 일부였기 때문. 결국 발이 붓고 물집이 생기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콜린스가 적극적으로 복장 규정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었던 건 11명의 승무원을 이끄는 책임자로 승진하고 나서부터다. 이후 그는 하이힐 이외의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항공사가 훨씬 편안한 낮은 굽의 신발을 신도록 허용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영국항공의 입장은 듣지 못했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 승무원과 남성 승무원

출처 : Getty Images

이런 문제는 다른 항공사에서도 발생한다. BBC가 인터뷰한 전직 여성 승무원 중 일부는 성차별을 일상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유니폼이 주는 이미지가 승객들의 무례한 발언과 신체적 위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제이드는 "한 남자 승객은 내가 두 번째 음료를 빨리 가져다주지 않자, 얼굴은 예쁜데 머리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며 "승무원들이 그저 예쁘장한 인형처럼 보이면, 승객들이 어떻게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버진 아틀란틱 항공사 대변인은 BBC의 취재에 항공사의 직원은 기내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관리인에게 보고하게 되어있고, 항공사는 승객들이 승무원과 항공사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콜린스는 과거 한 승객이 "젊고 몸매 좋은 승무원들은 어디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흔한 일이고, 이와 같은 말은 대부분 행실이 나쁜 남성 승객이 아닌 "점잖은 회사원처럼 보이는" 남성 승객에게 듣는다고 말했다.

직업의 일부

항공 법률 사무소인 에어 로펌(The Air Law Firm)의 항공 고문 팜 챔버스는 항공사에서의 성차별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승무원들이 승객의 불쾌한 행동을 상부에 보고하지 못하는 이유로 출발 시각과 실적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꼽았다.

챔버스는 "낮은 직급, 모욕, 비방하는 발언 등은 직업의 일부"라며 "이는 승무원의 대부분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고충이고, 간부직도 이미 예상하는바"라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항공사인 에어링구스(Aer Lingus)에서 5년간 근무했던 마리사 맥클은 이에 동의한다. 승무원 시절 자신의 경험에 대해 책을 쓰고 있는 그는 비행 중 자신의 엉덩이를 때린 승객에게 비행기에서 내릴 것을 요구했다. 2000년대 중반에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행동이 자신의 승진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당시 맥클은 22세였다. 그는 "기장은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강인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를 만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항공이 지연되거나 비용이 더 들더라도 공항 경찰이 호출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고 회상했다.

전직 에어링구스(Aer Lingus) 항공사 승무원인 마리사 맥클은 승무원 유니폼 때문에 계속해서 몸무게와 외모를 신경 썼다고 말했다

출처 : Marisa Mackle

항공 고문 챔버스는 범죄행위가 심각할 경우, 비행기 이륙이 취소되고 모든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 때문에 승무원들이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장 규정에 대한 승무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은 영국의 노사 분쟁 조정・중재 기관(ACAS)을 대신해 직장 내 복장 규정 및 외모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르면 승무원들은 보다 유연한 복장 규정을 희망하지만, 실제 복장 규정은 지나치게 직원의 외모를 강조하며 복장 규정을 넘어 외모 관리까지 포괄하게 됐다.

2015년 인사노무관리 전문 온라인 업체 엑스퍼트HR(XpertHR)에서 실행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절반이 직장 내 복장 규정에 불만을 느꼈다고 한다. 인적 자원 전문가들은 항공 업계에서 복장 규정에 대한 항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비즈니스 심리학자인 리즈대학 경영학과의 초빙 교수 빈나 칸돌라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복장 규정은 직장에서의 성 고정관념을 고착시킨다. 이런 복장은 실제 업무와 거의 상관이 없다"고 분석했다.

칸돌라 교수는 여성 승무원의 유니폼이 승객들의 무례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더 이상 여성스러운 승무원 이미지가 '고객들이 원하는' 이미지라는 변명을 받아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동 분야 법률 사무소 ELAS그룹의 고문 에마 오리어리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승무원 복장 규제에 대한 항의가 급증하는 것을 막으려면 항공사들이 하이힐과 풀메이크업에 관한 복장 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리어리는 "항공사들이 여성과 남성의 특정 이미지를 고수하는 것은 구식"이라며 "승무원은 1950년대 비서가 아니다. 승무원은 대중과 승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만, 꼭 성별에 따른 제한적인 복장이 아니어도 다른 융통성 있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변화의 조짐

일부 항공사는 복장 규제를 완화했다. 영국 항공에서 단거리와 장거리 노선을 모두 운항하고 있는 믹스 플릿(Mixed Fleet )의 여성 승무원들은 이제 원할 경우 치마 대신 바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

전직 에어링구스 승무원 맥클은 승무원의 체형 기준이 바뀌는 것을 긍정적인 변화로 해석했다. 10년 전 그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영국 사이즈 10 (한국 여성복 치수로 55사이즈) 이상의 체형을 가진 승무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맥클은 더 큰 사이즈의 유니폼을 요청하려면 상사와의 "굴욕적인 면담"을 거쳐야 했다며, 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체중 조절에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승객 좌석과 음료 카트 사이를 지나갈 때 카트가 움직이지 않으면 몸무게가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상사와의 면담을 거친 여자 승무원들이 화가 나서 비행기 안에서 얘기를 하는 것을 종종 봤다"고 말했다. 맥클은 요즘은 이전보다 몸집이 큰 승무원들을 자주 본다며 "그런 면에서 (승무원의 체형이) 좀 더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항공 업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여성스러운 유니폼에 대한 항의가 늘면서, 복장 규정의 변화를 촉구하는 직원들의 목소리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항공사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난감한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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