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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헤어졌다 만난 북한인-베트남인 커플의 이야기

북한인 최초로 베트남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리영희씨의 사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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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8.02.14. | 103,946 읽음

리영희-팜녹 칸 부부의 연애 당시 모습

1967년, 18살 베트남 청년은 북한의 함흥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창문 너머로 본 한 여성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눈에 반한 그는 고백을 했고, 여성도 청년의 잘생긴 외모와 따뜻한 배려에 마음이 끌렸다. 그렇게 만남이 시작됐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연수가 끝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청년은, '다시 만나자. 꼭 당신과 결혼하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긴 채 떠났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청년은 어느덧 흰머리가 덮힌 중년이 됐지만, 그의 마음속엔 여전히 한 사람만이 있었다.

11일 베트남 하노이 집에서 인터뷰 중인 부부

출처 : BBC

지난 2002년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북한 당국의 허가로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1일 BBC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리영희(71)-팜녹 칸(69) 부부를 만나 이들의 만남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리영희 씨는 아직도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정열적인 눈빛에서 이 사람이 날 좋아한다는 걸 느꼈죠, 저도 첫 눈에 반했어요. 이 사람 너무 잘 생겨서."

그는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누구도 사랑해 본 적 없고, 첫 눈에 반해 본 적도 없었죠"라며 40년 전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 사람이 돌아갈 때, 베트남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저에게 기다리라고 하면서 갔어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라고 고백했다.

두 사람은 현재 하노이 탄콩 강 인근에 살고 있다

출처 : BBC

30년을 기다린 사랑

1973년 베트남에 돌아온 뒤 팜녹 칸씨는 다시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크게 바뀌는 않았지만, 당시에 평범한 북한 주민이 해외에 나오는 것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교제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1978년 칸씨는 다시 북한을 방문해 리영희를 찾았다.

"그때까지도 이 사람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하니깐 대답은 못 하고 그냥 기다리라고만 했죠"

"그래서 이러다가 내가 다 늙어서 할머니가 된다고 하니 그는, '할머니가 돼도 내 영희다'라고 했죠."

그 뒤로도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어느 날부터 소식이 끊겼다.

"90년대 들어서 나도 생활이 너무 힘들고, 국가적으로도 환경이 좋지 못하고...이러다 보니 나도 단념했다"고 리영희씨는 밝혔다.

칸은 포기하지 않고 수차례 답장 없는 편지를 썼다.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녀를 수소문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는 소식도 들렸고, 또 오래전 사망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한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2002년 마침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렸다. 그녀가 살아있고, 또 아직도 그를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때마침 북한을 방문하는 베트남 고위급 대표단에 자신의 사연을 알렸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사연을 알게된 북한 당국도 마침내 두 사람의 만남을 허락했다.

또 리영희씨에게 통행증과 함께 외국인과 혼인을 허락한다는 정식 문서도 발급해 줬다.

베트남 주석과 북한 정부가 이미 혼인을 승인한 상황에서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리씨는 고백했다.

"그때 제가 비록 나이는 55살이었지만 오늘까지 살 수 있을까, 내일까지 살 수 있을까. 별로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루 살다가 죽어도 조국에서 바라는 일이라면 하자 이렇게 하고 왔죠."

지난 2002년 12월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재회했다. 당시 칸의 나이 53세, 리영희는 55세였다.

은퇴 후 남편의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어려움이 있다

출처 : BBC

서로의 변치 않은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하노이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리영희 씨의 가족은 올 수 없었지만, 칸의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속에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리영희씨는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며, 베트남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50대의 나이에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와서 보니깐 너무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니깐 어리둥절했죠"

"나이 먹은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잖아요. 그래도 이 사람이 관대하게 다 이해해주고,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도 다 받아줘서. 그렇게 맞춰서 살아요."

또 그는 북한에 남은 가족이 베트남에 올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세 차례 북한을 찾아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9월에는 남편과 함께 고향을 찾았다고 한다.

올해 결혼 16년차 부부. 이들의 결혼 생활은 넉넉지 않았다. 특히 엔지니어로 일했던 남편이 퇴직한 뒤로는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부부는 탄콩 강 인근에 9평 남짓한 작은 집에 살고 있다.

매달 남편의 연금으로 받는 170 달러가 생활비의 전부. 이 또한 집세로 절반을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1967년과 달라지지 않았다.

리영희 씨는 "우리 이 사랑이 너무 힘들게 이뤄졌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면 지금 좀 힘들게 살고 있지만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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