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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

한국 정부에 등재된 위안부 피해자 239명, 이 가운데 남아 있는 생존자는 3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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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News | 코리아 작성일자2018.02.08. | 90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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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고 김화선(1926~2012) 할머니는 16세에 싱가포르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다. 해방 후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수치심과 자책감에 결혼도 포기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던 그는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2012년 6월. 86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

출처 : BBC

2016년 고인이 된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는 생존 당시"아기를 갖고 싶었다. 너무 외로워서 애들을 데려다 키웠다"고 말했다. 또 "너무너무 외로워서" 고아원에서 아이를 입양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여러 증언과 영화, 책, 자료 등을 통해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 실태와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에 대해선 잘 알려졌다.

반면 이들이 전쟁 후에도 겪은 아픔. 특히 여성으로서 개개인들이 받은 상처는 위안부란 이슈에 가려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고 김화선 할머니가 직접 그린 '결혼'이란 작품

출처 : BBC

1991년 8월 지금은 고인이 된 김학순 할머니는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당시 김 할머니의 공개증언은 위안부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총 239명의 여성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기록됐다. 이 가운데 2018년 2월 8일 현재 남아있는 피해 생존자는 31명.

그러나 실제로 더 많은 피해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위안부 사실을 감추고 살다 떠났거나, 아직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눔의 집'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

출처 : BBC

잊혀진다는 것

지난 1월 12일 찾아간 경기도 광주시'나눔의 집'. 이곳에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단일시설로는 가장 많은 9명이 거주하고 있다.

나눔의 집 입구에는 이곳을 거쳐간 피해자 17명의 동상이 있다. 할머니들의 생활시설 뒤에는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유품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유품전시관 한쪽에는 이들이 남긴 글과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고 김화선 할머니의 그림도 걸렸있다. 그림속에는 평소 바람처럼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의 모습이 있다.

김 할머니 사진 옆에는 "나도 여자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라고 그가 생전에 남긴 문구가 적혀있다.

유품전시관에는 할머니들이 간직했던 편지도 볼 수 있다. 가족이 없어 홀로 외롭게 지내야 했던 이들은 방문자들이 남긴 편지 한통도 소중히 보관했다.

생존자 중 최고령자인 정복수(103) 할머니

출처 : BBC

"눈물이 나..몰러 눈물이 나"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최고령자인 정복수(103) 할머니도 이곳 나눔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 현재 그는 노환과 치매로 인해 대화가 어려운 상태.

이름을 묻는 질문에 그는 "몰러…눈물이 나"라는 말만 반복했다.

1916년생인 정 할머니는 1943년 남양군도 야스시마로 연행되어 위안부가 됐다. 전쟁 후 부산에서 홀로 지내던 그는 지난 2013년 나눔의 집에 정착했다.

나눔의 집 허정아 간사는 "정 할머니에게 양아들이 있는데 이제 그분도 연세가 있어 찾아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나눔의 집에서 만난 또 다른 피해자 박옥선(94) 할머니는 중국 헤이룽 장성의 '위안소'에서 4년동안 일본군의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치매로 인해 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잊고 싶었던 아픈 기억뿐만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가족, 친구, 고향에 대한 기억도 함께 잃어버린 듯 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 박옥선(94) 할머니

출처 : BBC

한·일 위안부 합의안

나눔의 집을 방문했던 당시 한국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안 처리에 입장을 발표했다.

앞서 외교부의 민간 TF 조사팀은 한·일 양국간 위안부 합의 내용을 공개하며, 2015년 12월 28일 맺은 합의안은 '내용상, 절차상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밝혔다.

TF 팀의 문제를 제기한 부분에는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도 포함됐다. 또 일본 정부로 받은 10억엔 (약 100억원)의 보상금이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위로금을 받은 피해자 중에는 보호자가 대리 서명했다.

또 본인이 동의한 경우에도 치매 등으로 인해 정확한 의사표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재 31명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나이는 평균 90.6세다. 대부분 노인성 질환 등으로 인해 거동과 의사표시가 어려운 분들이 많다.

실제 이날 경기도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9명의 피해 생존자 중에서 이옥선(92) 할머니만이 인터뷰가 가능했다. 그도 처음에는"기자를 만나도 이제 소용이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또 "나이 이렇게 먹도록 기자들하고 얘기를 했는데 성과가 하나도 없잖아요. 아무리 말해봐야"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몇 시간 뒤 마음을 바꿔 다시 인터뷰에 응하며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할 수 있지만 먼저 간 할머니들은 원한을 얼마나 품고 갔겠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 몫까지 우리가 다 해야 됩니다"라고 했다.

1942년 중국의 위안소에 끌려간 이옥선(92) 할머니는 58년만인 지난 2000년에 한국에 돌아왔다

출처 : BBC

생존자들은 무엇을 바랄까?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옥선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13살에 울산에 있는 한 여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2년 뒤인 1942년 일본인에게 이끌려 중국 연길로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됐다.

전쟁 후에도 할머니는 위안소가 있던 연변에 남아 있다가, 지난 2000년 한국정신대연구소의 도움으로 58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당시 그는 이미 사망신고로 국적이 말소된 상태였다. 1년 반에 걸친 법정소송을 통해 어렵게 국적을 회복했고, 이후 그는 직접 일본에 건너가 사과 요구를 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앞서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는 하지만 "이제는 나이 이렇게 먹도로 얘기를 했는데 성과가 하나도 없다"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지금 할머니들이 하나하나 돌아가시는데 매일 죽죠.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까. 할머니들 하나씩 죽을 때 우리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그는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사죄"라며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아내는 것이 자신과 남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위안부 할머니들이 하나도 없이 다 죽어도 이 문제는 꼭 해결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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