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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듣기 아까운 90년대 음반 6

조회수 2020. 2. 18.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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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슈가맨

혼자 듣고 말기에는 아쉬운, 달콤하고 쌉싸름한 음악을 소환한다.

양수경

디제이라는 수식이 부끄러울 만큼 음악 찾아 듣기에 별 흥미가 없다. 점점 일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렇게 스멀스멀 부스에서 내 모습이 사라져도 멋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찾아 듣지 않아도 음악은 어느 곳에나 흐르고 있어서 반강제로 좋은 음악을 캐치하기도 하는데 좋다는 생각도 잠깐, 금세 까먹기를 반복한다. 다시 생각해내기에는 게을러 리스트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최근 양준일의 활동 재개를 보며 그동안 클럽에서 자주 플레이했음에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 없던 그의 2집 앨범을 꺼내어 찬찬히 살폈다. 내가 이 음악을 왜 알고 있고 이 음반을 왜 가지고 있는지에 관한 물음으로 시작해 내 음악 컬렉션 전반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하 생략). 김현철, 양수경, 듀스 등으로 채워진 다소 빈약해 보이는 한국 대중음악 모음은 벌써 시들해진 시티팝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힘을 보탰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운전에 할애하는 요즘의 나에게 졸음 방지용으로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그중 양수경의 노래 ‘그대의 의미’는 묘하게 없던 추억을 조작하는데, 아마도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세트리스트를 듣다 어디쯤에서 홀렸던 것 같다. 어떤 음악을 듣고 환희에 겹게 좋았을 때 그 순간의 세세한 장면이 기억나기 마련이다. 양수경의 노래를 들으면 나에게는 꽉 막힌 강남역 사거리의 현장감이 떠오른다. ‘다시 주목받았으면’이라기엔 2016년 복귀 후 지금까지 왕성한 연예 활동과 더불어 신곡까지 발표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노래는 들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 Maalib(360사운즈, BANA, Puppy Radio)


이은민

TV 가요 프로그램에 한창 빠져 살던 1999년 어느 날, 헐렁하고 짧은 교복 치마에 발목 토시를 한 세련되고 멋진, 날라리 같은 언니가 단호한 표정과 터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복싱을 연상케 하는 동작과 교복 치마 차림으로 발차기를 하는 식의 파워풀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 언니의 이름은 이은민이었고 노래 제목은 ‘215의 외침’이라 했다. 암호 같은 215라는 숫자는 당시(1999년) 우리나라 여자 중고생의 수를 의미했다. 한국의 여학생들이 그동안 참아왔던 성 차별의 고통을 호소하며 더이상 이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선언문이었다. 이 곡은 당시 나에게 ‘다시 만난 세계’였다. 이토록 강렬한 기억만 남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더욱 선명한 이은민의 지금이 궁금하고 많이 그립다.

‐ Happy Color Seoul(DJ Selfie & DJ SEASEE)


함중아

골든 그레이프스는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아쉽게도 작년에 돌아가신 함중아 씨가 결성한 밴드다. 1972년에 유일한 앨범 〈즐거운 Go Go 파티〉로 데뷔했는데,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신중현 선생님이고 신중현의 작품인 것을 내보이는 ‘신중현 Sound Vol.3’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의 인기였던 신 선생님이 깊게 관여한 작품이었지만 함중아 씨가 두각을 나타낸 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라 유감스럽게도 이 앨범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음반이 되어버렸다. 이 앨범을 처음 들은 건 1990년대 중순 음반수집가로 유명한 일본 음악평론가 Y씨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신중현 작품이나 산울림 음악을 들으며 한국 록 음악 탐구에 몰두했고 일본에서 록 밴드 ‘곱창전골’을 결성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앨범 전체가 훌륭한 노래와 연주로 꽉 차 있다. 한국 개러지 록의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에 정말로 놀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해외 사이키델릭 음악 마니아들에게도 동경의 대상이고, 오리지널 판은 터무니없을 만큼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그래서 아날로그 LP 붐인 지금이야말로 한 번 더 정식적으로 복각했으면 하는 명반이다. 덧붙이자면 이 앨범의 첫 곡은 나의 밴드인 곱창전골의 레퍼토리로 지금도 가끔 연주하고 있다.(곱창전골의 베스트 앨범 〈Vintage Rock:History of Kopchangjeongol〉(2017년) 수록.)

‐ 사토 유키에(밴드 곱창전골)


송명관

한국의 1980~90년대 실험음악과 전자음악을 재발견하고 소개하는 나의 레이블 대한일렉트로닉스의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의 숨은 음반을 찾던 중 송명관의 음반 〈Alone〉을 만났다. 처음 이 음반을 들었을 때는 그렇게 큰 감흥을 받지 못했는데, 이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음반을 듣다 보니 음악이 주는 깊이와 마치 살아 있는 듯 느껴지는 소리에 곧 매료되었다. 1980년대 말 국내에도 ECM과 같은 해외 레이블들이 이미 라이선스 되었지만 이로부터 영향받은 한국의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88년 대도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송명관의 〈Alone〉은 이에 반하는 파격적인 어쿠스틱/앰비언트 음반이다. 매우 독특하고 깊이 있는 어쿠스틱 연주와 신시사이저로 내면적인 감성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음반에는 ‘The Solo Mind Guitar’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평범한 기타 연주곡집이 아닌, 무언가 다른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송명관의 마음을 추측하게끔 한다. 만약 그가 활동을 계속 이어왔다면 분명 타협 없이 흥미로운 음악을 성실하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송명관은 이 음반을 발표한 후부터 음악계의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떠한 후속 정보도 찾을 수 없다. 나에게 매우 소중한 이 음반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그의 소식을 아는 이가 이 글을 읽기 바라며.

‐ 커티스 캄부(DJ 6TS, 대한 일렉트로닉스 대표)


도마뱀

양준일의 성공 뒤에 그의 음악과 스타일이 카피라는 지적은 무의미하다. 선진국의 기술과 문화를 카피하는 건 모든 개발도상국의 절차이기 때문이다. 도마뱀은 이후 어어부밴드와 영화음악 감독, 씽씽, 이날치 등의 멤버로 활동한 장영규의 밴드다. 1집 〈피부 이식〉에 수록된 ‘해저도시’는 그의 초기 음악 세계에서 커다란 관심사 중 하나인 뉴웨이브를 내세웠다. 해외에서는 1980년대 유행했던 음악이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만들어진 적 없는 장르다. 왜 굳이 80년대 유행한 음악이 90년대 말 한국에 존재해야 할까. 이런 질문은 의미 없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을 통해 펑크라는 장르가 알려지던 시기니까. 양준일의 귀환처럼 유행은 돌고 돌고 해외 팝 문화도 80년대를 거쳐 90년대를 통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80년대 발명돼 90년대 한국에 등장한 도마뱀의 음악은 새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도마뱀이 활동하던 시기는 가요 프로그램의 립싱크가 이슈이던 시기다. 동시대 삐삐롱스타킹은 립싱크를 하며 ‘우리는 립싱크 중입니다’ 같은 현수막을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지금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도마뱀의 음악도 모두 립싱크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도마뱀은 화려한 패션과 확성기 같은 소품으로 나름 한국의 글램 스타일을 보여줬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아쉽게도 그들의 라이브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라이브를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들의 음악을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다시 듣고 싶다. 도마뱀은 어디까지나 밴드니까.

‐ 하박국(영기획 대표)


정인정

실버 마운트 자이온(A Silver Mt. Zion)이란 밴드의 ‘One Million Died to Make This Sound’라는 곡이 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뮤지션들의 무덤만 모아도 한반도를 뒤덮을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호황이었던 1980~90년대에 등장해 음반 한두 장만 발매하고 사라진 가수의 무덤을 세어보면 서울을 뒤덮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무덤 가운데에도 아직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는 정인정이라는 가수, 그가 보여준 결과물인 음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가요판을 디깅하다 보면 커버만으로도 이것은 보물이라는 느낌이 드는 음반이 있다. 연도는 1993년, 흑백사진 속 또렷하게 새겨진 외모와 깊은 눈동자, 그리고 그것들을 방해하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 이 음반을 보는 순간 바로 보물임을 직감할 수 있었고, 뒷면의 참여자 크레딧을 보고는 확신할 수 있었다. 유명 프로듀서이자 작곡자인 심상원과 신재홍이 팀을 이뤘고 기타에 함춘호, 박청귀, 색소폰에 이정식과 같은 믿음직한 음악가가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녀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박미경의 ‘기억 속의 먼 그대’의 원곡인 ‘내게는 소중한 그대’를 언급하지만 정인정의 본명인 정명진으로 작사에 참여한 곡 ‘비(la pluie)’가 이 음반의 중요한 포인트다. 딥 하우스 비트 위에 메타포로 가득한 불어 가사를 속삭이는 이 곡은 한국 가요에서 ‘프렌치 스타일’을 풍기고자 했던 어느 곡보다 세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디제이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이젠 늦었어’도 필청곡이다. 대중들이 원하는 발라드부터 디제이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곡들이 포진되어 있는 정인정의 〈Volume 1〉은 90년대 가요 중 묻혀진 골드마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 DYDSU(DJ) 에디터/ 박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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