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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규제가 부른 통신장애, 피해는 소비자들의 몫

조회수 2017. 10. 20. 08: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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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통신장애, 그리고 턱없이 적은 피해보상

잦은 통신장애, 그리고 턱없이 적은 피해보상

갑자기 내 스마트폰의 전화가 먹통이 된다면 어떨까. 갑자기 전화도 되지 않고 메신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없으며 문자 메시지조차 송수신이 되지 않는다. 통신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처럼 서비스가 먹통이 될 경우 많은 이들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심지어 이렇게 피해를 입고서도 보상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떠할까.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는 주기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SK텔레콤의 이용자 560만 명이, 그리고 불과 한 달 전에는 LG유플러스의 부산 지역 이용자들이 이런 불편을 겪은 바 있다. 끊이지 않고 통신장애가 계속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1시간가량 먹통이 된 통신 서비스  

지난 9월 20일, 부산 지역에서 이동통신사 서비스에 통신장애가 발생해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날 오후 6시 10분부터 40여 분 동안 부산을 비롯해 울산, 경남 지역에서 LG유플러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스마트폰 음성 통화와 데이터 통신에 불편을 겪은 것이다. 통신장애가 발생한 시간 부산경찰청과 부산소방안전본부에는 각각 170여 건, 530여 건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으며, LG유플러스는 사고 발생 후 40분 만인 오후 6시 50분경 통신망 복구를 완료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후 7시가 넘어서까지 LG유플러스의 통신 상태가 불안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LG유플러스가 통신장애 발생 직후 게재한 사과문
LG유플러스는 곧 공식 소통 채널을 통해 통신장애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글을 게재했다. 공식 트위터를 통해 “오늘 부산 경남 및 울산 지역에 음성 및 데이터 장애가 발생했다”며, “해당 지역 고객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하며, 앞으로 다시 발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글을 게재한 것이다. 금번 통신장애의 원인에 대해서는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을 수용하는 이동성 관리장비의 물리적 장애로 통신망 과부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자세한 사고의 경위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현재 고객센터를 통해 별도로 통신장애 피해에 대한 개별 접수를 받고 있다

LG유플러스의 통신장애로 실제로 불편을 겪은 이용자들은 LG유플러스에 곧 반발하고 나섰다. 통신장애가 발생한 당일 LG유플러스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불편을 토로하는 글이 쏟아졌다. 많은 수의 이용자들은 통신장애로 실질적인 재산상의 피해까지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LG유플러스는 이에 대해 3시간 이상 지속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약관상 손해배상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개별 협의를 통해 보상을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현재 LG유플러스는 고객센터를 통해 통신장애 피해에 대한 개별 접수를 받고 있으며, 피해를 증명한 소비자들에게는 익월 요금 감면의 혜택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겪는 손해보다 턱없이 적은 보상

문제는 금번 통신장애가 그리 희귀한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1년과 2013년에도 LG유플러스는 통신장애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2011년에는 9시간 동안 통신이 단절됐으며 이에 대한 보상책으로 최대 3,000원의 보상이 이뤄졌고, 2013년에는 2시간 동안의 음성 통화, 메시지 수발신이 불가능한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비단 LG유플러스뿐 아니라 이동통신사들의 통신장애는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SK텔레콤도 지난 2014년 3월 초유의 통신장애 사태를 일으킨 바 있다. 발생 당일인 오후 6시부터 통신장애로 SK텔레콤 이용자들이 통화가 안 되는 불편을 겪었으며, 이에 대해 SK텔레콤은 30여 분 만에 장애가 복구됐다고 밝혔으나 장애현상이 이후에도 지속되면서 최대 560만 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SKT의 통신장애는 회사의 설명과는 달리 장시간 이어졌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의 기준에 따르자면 1개월 동안 6시간의 통신장애가 발생했을 때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금번에 문제가 된 LG유플러스의 약관에 따르자면 1일 기준으로 3시간 이상의 장애가 지속될 경우는 배상의 요건이 된다. LG유플러스가 금번 통신장애를 약관상 손해배상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점은 바로 이 점이다. 혹여 실제로 보상이 이뤄지더라도 그 보상의 규모가 이용자들이 실제로 겪은 불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다. SK텔레콤의 경우에는 1일분에 해당되는 요금의 감액이 이뤄졌는데, 그 금액은 많아도 몇천 원에 불과했다.

▲ 별도의 홈페이지를 열어 보상금액을 조회할 수 있도록 조치했던 SKT
2014년 3월 통신장애를 겪은 대리기사와 일반인 등 18명은 SK텔레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소송의 내용은 3월 20일 오후 6시부터 11시 40분까지 SK텔레콤 장비 문제로 발생한 통신장애로 인해 대리기사, 택배 종사자들이 업무에 실제 차질을 빚은 데에 대한 피해보상 소송이었다. 보상청구액은 일반 시민이 10만 원, 대리기사와 택배 업무 종사자는 20만 원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약관에 따른 보상이 이뤄졌으며, 피고인이 입은 손해는 특별손해에 해당돼 SK텔레콤이 배상할 책임이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특별손해란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으로 발생한 추가 손해로, 이는 손해를 입힌 자(SK텔레콤)가 특별손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거나 알았을 경우에만 배상 책임이 발생함을 이야기한다.

통신 서비스가 갖는 의미

통신 산업은 전통적으로 국가가 독점적으로 운영한 산업이었다. 국민들에게 통신이라는 공공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던 통신산업은 민영화, 자유화의 흐름 속에서 80년대를 기점으로 미국, 유럽, 일본을 거쳐 점진적으로 운영의 주체가 민간으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4차에 걸친 5개년 계획을 통해 통신산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이후 정부 주도 하의 빠른 성장 과정에서 전화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980년대에는 공사체제로 전환되며 한 차례의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고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통신 서비스는 양적, 질적 향상을 이뤘다.

▲ 지금의 이통사 체제가 구축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90년대가 되면서 통신시장 구조개편에 따라 통신시장에서 부분적 경쟁 체제가 등장하고, 1994년에 포항제철과 선경, 그리고 LG가 데이콤 등을 인수하며 대기업이 이윤창출을 위해 통신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통신 서비스의 민영화가 시작된 것은 1997년부터로, 2000년 6월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2002년에는 정부의 한국전기통신공사 주식 전량을 매각하게 된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3사를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통신시장의 구도가 자리를 잡은 것은 이때의 민영화 이후였다.

▲ 통신망은 국가의 중요한 기초산업으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가 손을 떼긴 했으나 통신시장에 정부의 개입이 온연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민영화 이후에도 통신 서비스의 가격 설정, 투자 결정 등과 관련해 정부는 시장에 간섭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통신 서비스가 우리나라의 중요한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 통신망에 우리나라의 산업은 물론 국정, 보안, 국방이 기대어 있다. 통신 서비스는 단순히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국가가 운영될 수 있는 기틀을 담당하고 있음에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느슨한 규제 하에서는 문제가 재발할 것  

앞으로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네트워크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종국에는 모든 시스템이 통신망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 통신장애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교차로의 신호등이 통신장애로 인해 먹통이 된다면, 혹은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비행기, 선박, 기차 등이 통신장애로 인해 본래의 선로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자율주행차량이 장시간의 통신장애로 인해 먹통이 된다면? 네트워크의 의존도가 커진다는 것은 곧 통신장애가 불러올 수 있는 재앙의 크기도 커지게 됨을 의미한다.

▲ 4차 산업혁명, 자율주행, 인공지능 등 앞으로 통신 서비스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

현재의 약관, 제도하에서는 통신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이용자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이 극히 미비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소비자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피해를 입었으며 또 그 피해를 증명하더라도 책임의 소재가 이동통신사에게 있지 않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규제라는 것은 다가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작용하기 마련이다. 작금은 통신 서비스와 통신장애에 대한 규제의 재정비, 그리고 보상체계의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동통신사가 이윤만 좇아 영업하도록 방치하는 지금의 느슨한 규제 하에서는 금번과 같은 통신장애가 재발하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힘들다. 통신 서비스가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산업임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일본 대지진 당시 트위터의 역할을 지금의 메신저 서비스들이 해줄 수 있길

또한 통신장애에 대한 규제와 보상 체계의 마련은 온전히 이동통신사에만 한정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작년 9월,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서비스 장애를 겪은 바 있다. 지진 직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동안 카카오톡 메시지 송수신이 중단됐으며,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까지 불통이 돼 혼란이 빚어진 바 있다. 굳이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서비스 장애를 겪게 된다면 현재의 시점에서는 많은 이들이 기하급수적인 불편과 피해를 겪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도, 이제는 일정량의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은 아닐까. 일본 대지진 당시 재난 구제를 위해 활용된 것은 먹통이 된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아닌 트위터였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우리에게 비슷한 재난이 찾아오게 된다면(그런 날이 오지 않길 바라야겠지만), 그때는 ‘국민 메신저’가 우리의 구세주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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