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망 품질 유지 의무법' 무엇이 문제인가

조회수 2020. 5. 2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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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 문제는 없나

국내 서비스 개시 당시만 하더라도 8만 명에 불과했던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 수는 현재 481만 명 수준으로 폭증했다. 인지도 증진과 가입자 증가를 통해, 넷플릭스는 단순한 글로벌 OTT가 아니라 국내 콘텐츠 시장 전반에 큰 영향력을 가지는 사업자로 자리를 잡았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이제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다. 문제는 이들의 성장을 그다지 곱게 보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 문제는 없나

통과를 눈앞에 둔 넷플릭스 규제법

이들의 성장을 혹자는 ‘무임승차’로 이야기하기도 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의 목소리는 정치권에도 전달됐다. 실제로 현재 20대 국회에서는 마지막 안건으로, 소위 ‘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는 지난 5월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의결로 이어졌다.

▲넷플릭스 규제법으로 더 유명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법의 개정안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에게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의 부과다. 유민봉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경진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정당한 이유 없이 콘텐츠 제공자들이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비스 품질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16년 말에 있었던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벌어졌던 페이스북의 국내 서비스 품질 문제 논란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폭증한 트래픽이 문제가 되다

국내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페이스북은 국내 망 제공자들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페이스북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와 망 이용 대가를 두고 논의를 진행하는 와중에 임의로 인터넷 접속경로를 바꾸게 된다. 이로 인해 페이스북의 해당 망 제공사의 국내 이용자들은 접속이 지연되거나 계속 끊어지는 현상을 겪었다. 서비스 제공사가 서비스의 품질을 제대로 유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은 페이스북만이 아니었다. 구글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유럽 등에서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우리나라 통신망에서 문제가 없었음에도 국내에서의 유튜브 스트리밍 화질을 낮추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불거지고 있는 국내 콘텐츠 서비스사들에 대한 역차별

당시에 망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는 망 제공사들에게 지워져 있었다. 금번의 개정안은 이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비스 품질 유지의 의무를 망 제공사가 아닌 콘텐츠 제공사에 지우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KT에 캐시서버를 두고 통신3사 이용자들이 이를 통해 접속하게 해 왔다. 이에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자사 이용자들이 KT망으로 접속해 발생한 트래픽에 대해 접속료 정산을 요구했으며, 페이스북은 캐시서버가 아닌 해외망을 통해 국내 이용자들이 접속하도록 경로를 바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용 대가, 접속료를 제대로 내지 않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방통위는 이 과정에서 접속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책임을 페이스북에 물었다. 3억 6천만 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페이스북은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방통위 조치에 대해 행정소송을 진행했으며, 지난 8월 1심에서 승소한 바 있다.

▲서비스 품질을 임의로 떨어트리면서 논란을 빚은 페이스북

글로벌 IT 기업들의 국내 시장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해외의 업체들은 국내 통신사들과의 망 사용료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있다. 2016년 KT와 캐시서버 구축 및 전용 통신망 대여 계약을 맺고, 연간 150억 원을 지불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기간 네이버가 2016년 지불한 망 사용료는 734억 원이었다. 여기에서 국내 콘텐츠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원활하게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통신사들과의 망 사용료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반면, 해외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구글, 넷플릭스 등은 EU의 요청으로 떨어트린 스트리밍 품질을 최근 원상복구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의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용자들은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들에 주로 항의하게 된다. 이용자를 볼모로 잡은 협상에서 통신사들은 자연스레 불리한 입장에 서서 해외 업체들과의 협상에 나서게 되고, 이것이 국내 콘텐츠 제공사들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이라는 망 사용료 협상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지금의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이와 같이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들이 국내에서 인터넷망 사업자들에게 사용료를 적절하게 지급하지 않으면서 불거진, 이에 대비해 매년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에의 역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넷플릭스 논란이 불을 지피다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각기 통신사들의 네트워크 서비스를 가입해 유료 혹은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통신 서비스 제공사는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통해 네트워크망을 확충하고 서비스 품질 향상을 도모한다. 그런데 네트워크 서비스는 이용자들의 트래픽만 가지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사 또한 인터넷 서비스의 중요한 반대편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소비자뿐 아니라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들로부터도 KT는 ‘접속료’, SK브로드밴드는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료’, LG유플러스는 ‘인터넷접속서비스 이용료’로 각기 다른 명칭의 망 사용료를 받고 있다.

▲통신사의 네트워크 품질 유지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국내 콘텐츠 서비스사들이 받고 있는 역차별 논란에서, 최근 넷플릭스가 화두가 되고 있다. 작년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국내 LTE 데이터 사용량 TOP10 서비스 중 다섯 개의 해외 콘텐츠 제공사들의 트래픽이 67.5%에 달했다. 거기에서 상당량을 차지하는 넷플릭스의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국내 통신사들은 망 확충에 많은 비용을 투여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1년 동안 100억 원을 들여 한국과 일본 간 500Gb급 국제 회선을 증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일본 넷플릭스 보조 서버로 연결해 영상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넷플릭스의 조치는 비용 분담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해 망 품질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에 대한 협상 중재를 신청했다. 넷플릭스로 인해 불거진 불가피한 망 품질 관리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넷플릭스는 망 품질 관리는 ‘망 중립성’에 의거해 통신사의 역할이라는 점을 들면서 반발하다가 지난 4월, 서울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한 ‘채무부존재 확인을 위한 소’를 제기했다. “콘텐츠 사업자와 통신사업자의 책임과 의무는 엄연히 다르며, 이미 소비자가 인터넷 접속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사업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이중부과”라는 입장이었다. 중재가 재판으로 번지면서 방통위는 중재 절차를 중단했으며, SK브로드밴드는 소장을 받는 대로 맞고소 등 대응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역차별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야

글로벌 콘텐츠 서비스사와 통신사의 싸움 안에서, 우리는 망 중립성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를 이제야말로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서 있었다. 충분한 공론화, 의견수렴의 과정을 거쳐서, 5G 혁신의 시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역차별에 대한 우려를 종식시키고 망 중립성에 의거해 망 이용료를 다시 검토할지, 혹은 지난 2017년의 미국처럼 망 중립성을 폐지하고 통신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을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또 빠르게 결론을 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5월 중순을 지나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는 공론화 전에 개정안 발의와 의결로 이어지고 말았다.

▲망 중립성 논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야 할 때

5월 19일 열릴 법사위에서 처리될 예정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넷플릭스, 페이스북, 구글 등의 서비스 품질 저하의 사례에서 글로벌 서비스 제공사들에게 안정성 책임 및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이다. 넷플릭스에 ‘괘씸죄’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문제는 이 법안이 궁극적으로 역차별을 해소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차별이라는 말은 해외 콘텐츠 사업자들이 비용을 안 내거나 적게 낸다는 말도 되지만, 그와 함께 국내 사업자들이 비용을 ‘많이’ 내고 있다는 말도 된다. 결과적으로 이 법이 통과되고 시행된다면 의도하던 국내 콘텐츠 사업자들의 권리 증진보다는 통신사의 영향력에 이들이 강하게 귀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이 속한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국회가 졸속 입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21대 국회에서 추진될 것을 요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통신사들이 ‘서비스 안정성 유지’라는 모호한 법 조항을 토대로 지금보다도 더 많은 망 이용 대가를 요구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해외 기업으로부터 망 이용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도 개선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규제를 통해 당장은 통쾌하고 시원할 수 있겠지만,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을 것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결단은 항상 매력적이다. 다른 콘텐츠 사업자들과는 달리 무임승차하고 있는 플레이어를 재단할 것이라는 표어는 당장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좋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입법조치는 자칫 어느 한 쪽의 이익을 대변하고, 다른 한쪽의 권리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한 우리의 생활은 이제 앞으로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으며, 네트워크 트래픽은 이전보다도 훨씬 더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속도의 변화 속에서 부디 인기에 영합한 졸속 결의가 이뤄지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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