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하는 시계 랜덤박스, 정말 소비자는 '손해' 보지 않을까?

조회수 2020. 4. 28.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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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박스, 득일까 실일까?

‘랜덤박스’라는 제품의 판매는 이제 우리에게는 생소하지 않다. 주로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주로 활용되는 랜덤박스 판매 방식은 가챠, 뽑기, 럭키박스, 확률형 아이템 상품 등으로 불리고는 한다. 한정된 인원에게서 최대한의 매출을 끌어내기 위해 고안된 랜덤박스의 방식은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돼 시행되고 있다. 한때 화제를 끌었던 로지텍의 게이밍 마우스 럭키박스, 교보문고 핫트랙스 등지에서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우스 럭키박스, 일렉트로마트의 벨킨 럭키박스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고지되지 않는 확률, 신뢰가 가지 않는 구성

랜덤박스, 럭키박스라는 판매 방식은

랜덤박스가 보편적인 판매 방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비약적으로 높은 판매력 덕분이었다. 이러한 판매 방식은 ‘대박’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를 충족시키면서도, 기본적으로 판매가 이하의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실정으로 인해 동작할 수 있는 방식이다. 소비자 판매가 언저리의 상품을 주로 패키지에 담고, 소수의 패키지 안에만 판매가 이상의 고가 상품을 넣어서 판매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심 판매가 이상의 상품이 나오길 바라면서 랜덤박스를 구매한다. 설사 대박 상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구매자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꽝’에 해당하는 상품의 소비자가도 판매가를 밑돌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비자들에게도 친숙한 럭키박스 판매 방식

게임 업계에서는 랜덤박스가 기본적인 상품의 판매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랜덤박스가 구매자의 'ARPPU(Average Revenue Per Paying User, 구매자 1인당 구매금액)'를 높일 수 있는 유효한 판매 방식이기 때문이다. 패키지 판매 방식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무료로 배포하고 일부의 구매자들이 금액을 지출하는 F2P 게임들은 소수의 구매자들로부터 개발, 운영비 이상의 매출을 끌어내야만 한다. (랜덤박스의 기본 구성품이 구매금액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갈수록 높아지는 개발비를 보전하기 위해, 대박 심리를 자극하는 랜덤박스로 ARPPU를 끌어올린 것이다.

▲게이머들에게는 ‘가챠’, ‘뽑기’,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것

최근에는 랜덤박스와 같은 판매 방식이 게임 업계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일부는 시즌이 지난 재고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일부는 저조한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또 일부는 제품의 판촉행사를 통한 화제몰이 등의 의도를 담아서 말이다, 다양한 제품들을 모아서 동일한 패키지에 담아, 항시가 아니라 정해진 시즌에만 한정적으로 판매하는 ‘럭키박스 이벤트’를 많은 업체들이 시도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로지텍, 벨킨,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로 PC, 모바일 디바이스 주변기기 제조사들이 이러한 방식을 자주 취하며, 또 이들의 시즌 한정 럭키박스 상품들은 나올 때마다 얼리아답터들에게 화제가 된다. 비단 IT 관련 업계에서만 랜덤박스가 기획되는 것은 아닌데, 작년 9월에는 롯데백화점에서 호주의 유명 와인들을 담은 랜덤박스를 11개 주요 점포에서 1,300개 한정으로 판매한 바 있다.


시계 랜덤박스가 수상하다

이들의 럭키박스 상품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꽝’이 ‘꽝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지텍 럭키박스 이벤트를 예로 들어보자. 작년 말 교보문고 핫트랙스를 통해 판매된 이들의 럭키박스 이벤트의 가격은 19,900원이었다. 기본 구성품은 마우스 제품인 G102 혹은 G304였으며, 낮은 확률로 높은 가격대의 마우스를 취할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가장 확률이 높은, 꽝에 해당하는 G102의 소비자가는 29,900원이며, 실제 오픈마켓에서는 19,000원대에 거래된다. 구매자는 실질적으로 꽝이 걸리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다.

▲시계 랜덤박스를 판매하는 곳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우주마켓’

실제 상용품을 담은 랜덤박스가 아니라, 모바일 게임의 가챠 상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캐릭터, 장비 등을 담은 확률형 아이템 상품은 이용자들이 느끼는 가치가 게임사가 이야기하는 가치와의 차이가 현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게임물의 확률형 아이템 상품은 다른 분야의 랜덤박스 상품보다도 더 많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 포함 국회의원 10인이 2015년 3월 9일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을 발의했으며(19대 국회 종료로 폐기), 이후로도 몇 차례 게임산업법의 개정안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내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다양한 브랜드들이 이들의 랜덤박스 참여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보다도 더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한 분야가 존재한다. 바로 ‘시계’다. 일부 쇼핑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시계 랜덤박스’ 상품에서 최근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시계 랜덤박스는 기본적으로 다른 분야의 랜덤박스와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가의 상품들을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정한 상태에서, 최소한 꽝이 나오더라도 랜덤박스 판매가에 준하는 소비자가의 시계를 얻을 수 있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언뜻 보았을 때 꽝이 나오더라도 소비자 피해는 발생할 것 같지 않은 시계 랜덤박스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확률도, 상품 정보도 정확하지 않은

시계 랜덤박스 상품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시계 랜덤박스 판매업체들 중에서도 ‘우주마켓’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는 ‘우주그룹’이 특히 유명하다. 이들의 시계 랜덤박스 상품은 유튜브에서도 화제로, 이들이 2018년 3월 업로드한 ‘정품시계 랜덤박스(한정판매)’ 영상은 86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우주마켓에서 직접 업로드한 영상 다수가 백만 단위의 조회 수를 보이며, 우주마켓 시계 랜덤박스를 추천하는 구매 후기 영상들도 높은 인기도를 보인다.

▲비싼 가격의 시계를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사행심’이 시계 랜덤박스 판매력의 근간을 이룬다

시계 랜덤박스 판매사들의 상품 소개 페이지에는 세이코, 태그호이어, 알마니 등의 유명 시계 메이커들의 제품들의 사진이 게재돼 있으며, 구매 후기란에는 구매자들이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글이 가득하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블로그, 커뮤니티의 글들도 마찬가지다. 구매 후기나 블로그의 글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랜덤박스에서 후기 글들처럼 ‘대박’이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알 수 없다’다. 시계 랜덤박스 판매품들 대부분은 누구나 보면 알 만한 메이커의 제품이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인지도가 높지 않은 메이커의 제품을 배송받게 될 확률은 또 얼마인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고지되고 있지 않다.

▲시장에서 찾기 힘든 제품들이 시계 랜덤박스의 주된 구성품이 된다

인지도가 낮은 메이커의 제품을 배송받게 되더라도, 랜덤박스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꽝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시계 랜덤박스로 받은 제품의 시장에서의 판매가는 실제 랜덤박스의 가격을 상회한다. 3만 9천 원의 시계 랜덤박스를 구매하더라도, 여기에 들어있는 시계들의 가치는 적어도 5만 원 이상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된다. 하지만 그 검색의 결과를 담고 있는 사이트들은 일부의 소수 시계 전문상이며, 그 가게의 대부분이 시계 랜덤박스를 판매하는 주체와 동일하거나 계열사로 나타난다. A그룹이 운영하는 A마켓에서 구매한 시계 랜덤박스의 구성품 대부분은 A그룹의 대표자가 운영하는 다른 메이커‘에서만’ 판매하는 시계라는 이야기다. 시계 랜덤박스는 내용물의 확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며, 구매자의 대다수가 수령하게 될 꽝 상품의 가치를 신뢰할 수 없도록 구성돼 있다는 결론이다. 일부 유튜버들은 시계 랜덤박스의 꽝에 해당하는 상품들이 대부분 중국산의 염가 상품이며, 이것들이 랜덤박스 판매자들의 교란행위로 인해 시계 랜덤박스 판매가에 준하는 상품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하루빨리 규제가 필요한 상품

시계 랜덤박스 판매자들이 시장의 의심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년 전, 다수의 시계 랜덤박스 판매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2017년 8월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랜덤박스를 통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고가의 다양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한 3개 업체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1,9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3개월간 영업정지를 결정했다. 3개 업체에 해당하는 이들은 더블유비, 우주그룹, 트랜드메카의 세 곳이었다. 더블유비는 ‘사구박스’라는 이름으로 시계 랜덤박스를 판매했는데, 상품 소개 페이지에 기재된 41개 시계 브랜드 중 9개 브랜드의 제품만이 실제로 공급된 것이 문제였다. 공정위 속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구성품(시계)의 가격이 무조건 30만 원 이상이라는 광고를 입증하라는 공정위의 요청에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주그룹도 68개의 제시 상품들 중 24개를, 트랜드메카는 여성용 브랜드 시계의 경우 71개 브랜드 중 62개의 브랜드의 시계를 소비자에게 실제로 공급하지 않았다.

▲랜덤박스라는 판매 방식 자체가 가진 문제점도 있지만, 시계 랜덤박스의 문제는 그 이상이다

3개월의 영업정지 및 시정명령이 내려진 이후로도 시계 랜덤박스는 동일한 방식으로,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황을 공정위는 여전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작년 12월 26일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 제공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한 바 있다. 공정위의 개정안에는 확률형 상품의 확률 정보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예시로 명백하게 ‘시계’를 기재하고 있다. 시계 랜덤박스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더는 좌시하지 않을 것을 밝힌 것과 다름이 없다.

▲예고된 개정안이 하루빨리 시행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랜덤박스라는 판매 방식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랜덤박스의 판매력이 기대고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나 ‘사행성’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랜덤박스 상품이 소비자들의 반발에 부딪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계 랜덤박스는 다르다. 염가의 중국산 시계를 우리나라에서 고가에 팔 수도 있는 일이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정당하게 생겨나고, 판매사가 책정한 가격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계 랜덤박스가 판매되는 방식은, 그리고 판매자들이 랜덤박스가 ‘절대 손해가 없다’라고 밝히는 근거들은 신뢰하기 힘든 것들이다. 검색 결과로 나오는 시계의 거래가는 조작되었다고 무방하며, 랜덤박스의 구성품의 확률은 소비자들에게 전혀 고지되지 않는다. 공정위의 전자상거래 상품 고시 개정안은 행정 예고 기간 동안의 이의를 수렴해, 추후 시행될 예정이다. 하루빨리 개정안이 시행돼, 시계 랜덤박스로 인한 소비자 기만이 앞으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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