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 성장판 닫힐까? 주 52시간제가 두려운 기업들

조회수 2019. 11. 21. 10: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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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도, 타당할까?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따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기구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다. ‘민간 각 분야 전문가로 최대 25명이 위원회를 구성하며 위원장은 민간 전문가 중 대통령이 위촉한다’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지난 2017년 9월 25일 장병규 블루홀 이사회 의장을 위원장으로 민간 위원 20명이 모여 제1기 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출범으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장 위원장이 현재의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토로가 대중들에게 회자되면서 화제가, 그리고 또 문제가 되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제시한 52시간제의 문제

그의 토로는 한 일간지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오는 11월 26일 임기 종료를 맞아 그동안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장으로 활동한 소회를 묻는 인터뷰였다. 그는 “이 정부는 반기업도, 친기업도 아닌 무기업”이라며 기업의 어려움에 관심이 없는 정부라고, 그리고 “경제는 버려진 자식처럼 밀려나 있다”라고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인터뷰 기사에 기재됐다. 하지만 인터뷰가 공개되자 곧 장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일간지와의 인터뷰 기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했다. 실제 진행된 인터뷰와 기재된 내용이 달랐다는 해명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발족된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 위원장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친기업, 반기업이 아닌 무기업이라고 표현한 것은 ‘친기업이 아니라 친노동’이라고 발언했다고 정정했으며, 경제는 버려진 자식처럼 밀려나 있다는 표현은 “경제의 우선순위가 남북관계 등보다 순위가 낮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음을 밝혔다. 이외에도 몇몇 문장에서 본래와는 뉘앙스가 다른 말을 곡해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장 위원장은 애초에 이야기한 것과 일간지 인터뷰의 내용이 다르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장 위원장의 해명을 보자면, 금번 일간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발언이 곡해돼 인터뷰어의 의도에 따라 기사로 사용된 전형적 사례로 생각된다.

▲위원회 출범 및 제1차 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장병규 위원장

바로 잡혀야 할 장 위원장의 해명을 짚어본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 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에서도 해명이 이뤄지지 않은 내용에 오히려 주목해 보고자 한다.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실제의 의도를 추론해서 말이다. 현재 시점에서 장 위원장이 인터뷰의 주된 소재로 삼고자 했던 것은 해명글에서 별도로 수정 의견을 내지 않았던 ‘주 52시간제’에 대한 비판으로 추측된다. 장 위원장은 본 인터뷰에서 52시간제가 국가가 너무 획일적으로 정한 제도이기에 문제가 있으며, 불확실성과 싸우는 R&D 영역은 시간을 곧 성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리고 이는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정부에 제출하고 발표한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전부터 장 위원장은 “인재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며, 특히 R&D 분야에 있어서 주 52시간 상한제에 대해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꾸준히 밝혀온 바 있다.


천편일률적 적용이
걸림돌이 될 우려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권고안에서 주 52시간 노동제는 ‘분야별 권고안’의 첫 번째 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노동제도가 여전히 2차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다양화되는 노동의 변화를 반영하거나 혁신을 이끄는 인재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정의했다. 또한 주 52시간제는 일률적으로 적용되기에 개별 기업, 노동자가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제도가 곧 인재 성장의 걸림돌이 되거나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은 아직까지 주 52시간제에 대한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권고안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일률적인 대책을 사회 전체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권 등 기본권을 보장하면서도 사업장, 개인 단위에서 자율적 선택이 가능한 방향을 추진해 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처럼 새로이 생겨나는 직종들도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로는 포용할 수 없다는 의견도 함께 게재됐다. 즉, 위원회의 권고안은 다양한 노동 형태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영선 장관은 주 52시간 제도가 실정의 고려가 미흡했음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여기에는 위원회 내에서의 반대 의견도 함께 기재돼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유일한 노동계 위원인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의 의견이다. 황 위원은 주 52시간 상한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필요하며, 주 52시간 상한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의 일자리는 국민의 일자리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 위원은 위원회의 권고안이 기업가 출신인 위원장이 기업들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개진된 안이라는 의견을 지난 11월 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

주 52시간 근무제는 작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다. 주 최대 68시간으로 해석되던 법정 근로시간 상한을 ‘휴일근로도 연장근로에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을 받아들여 연장근로 한도를 12시간으로 묶어, 일주일에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한 것이다. 순차적으로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될 이 제도는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확대될 예정이다.

▲불합리한 근무환경 조성을 방지하기 위해 주 52시간과 같은 제도가 분명히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확대를 둘러싸고 다음 적용 대상인 사업장에서는 벌써부터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4개 중소기업 단체는 지난 11월 13일 ‘주 52시간제 입법보완에 대한 중소기업계 입장’을 발표하며 “아직도 현장의 중소기업 상당수는 준비가 안 된 상태”며 “장시간 근로 관행 개선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감안한 제도 보완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라는 의견을 개진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의 박영선 장관은 이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가 다소 경직된 부분이 있다면서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했어야 했고,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예외 규정을 뒀어야 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등은 현재 근로시간 체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IT 업계에서는 주 52시간 상한제에 맞춘 다양한 기업들의 대책들이 나오고 있으며, 여기에서 또 갖가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게임 업계에서는 근무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5분에서 15분가량 자리를 비울 시, 자리를 비운 사유를 제시하지 않을 경우는 근로시간으로 산입시키지 않는 근로시간 체크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분 단위 근무시간 체크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또 한 편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저 회사들에서는 지금까지, 근무시간에 임의로 자리를 비워도 됐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 말이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고려한 대안이 필요

창의성을 요하는 IT 업계에서는 지금껏 종일 한자리에 앉아있는 경직된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 자율적으로 자신의 업무시간을 관리하는 형태를 주로 취하고 있다. ‘검은사막’의 개발사인 펄어비스는 실제로 지난 2017년, 업계 최초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업무시간 체크 자체를 거부한 바 있다. 대부분의 IT 기업들은 업무시간 전체를 체크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야근 등 직원들의 추가 업무시간만 확인하고 보상하는 추세였다. 이것이 최근 들어서는 52시간제가 먼저 적용된 IT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IT 기업들은 기존의 근로제도로 재단할 수 없는 근무형태를 가지고 있다

IT 업계의 업무강도가 마냥 다른 업계보다 약하고 또 업무의 자율성이 크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회사의 직원이 익명 게시판을 통해 장시간의 게임 점검으로 4일째 직원들이 퇴근을 하지 못했으며, 그중에는 거품을 물고 기절해 응급실로 실려나간 이도 있었다는 폭로를 게시한 바 있다. 글쓴이에게 지목된 회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접한 IT 업계 종사자들은 이것이 있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게임, IT 업계의 업무는 불규칙적이며, 돌발적으로 발생되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통상의 몇 배에 달하는 업무와 시간을 직원들이 강요받을 때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52시간 근무 상한제는 이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내년으로 다가온 주 52시간제 확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R&D를 중시하는 IT 업계가 52시간 근무 상한제에 맞춰, 2개월도 남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체질을 바꿔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혹자는 이로 인해 우리나라 IT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또 기업 직접고용이 아니라 외주화가 더 많이 이뤄지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정부의 기대대로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52시간 근무 상한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임박한 52시간제 확대는 산업 일선에서는 물론 주무부처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위원회 내에서의 권고안 반대 의견의 근거였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가 될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일자리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필드의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노동자들조차 기업들이 취하는 반대급부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확대시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의 시점에서,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제도의 취지와 확대의 타당성을 되짚어보고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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