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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차별 수단이 된 게임물 심의 제도

조회수 2019. 10. 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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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물 심의 제도에 대한 문제점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역사에서 ‘바다이야기’ 사태는 악몽이었다. 2004년에 출시된 국산 아케이드 게임인 바다이야기는 다양하게 얽힌 권력형 비리의 주된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바다이야기와 같은 도박성 게임을 근절하고자 2006년 10월 30일 우리나라에서는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출범됐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출시 전에 심의하고 등급을 의결하기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공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게임물의 경우에는 ‘등급분류거부’ 판정을 내려 유통될 수 없도록 만들 권한을 가지고 있다.

▲심의를 무기로 역차별 받고 있는 웹 게임 시장

게임물 심의기관 탄생의 경위

게임 소프트웨어가 등급분류거부를 받은 경우에는 이를 유통할 시에 불법게임물을 유통한 협의로 법적인 처분을 받게 된다. 게임물 서비스 사업자들은 게임물등급위원회, 현재는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심의를 받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제출해야 하며, 심의에는 일정한 비용이 소요된다. 게임 소프트웨어에 등급을 부여하고 유통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미국 소프트웨어 연합인 ESA(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의 산하기구인 ESRB(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가 존재하며, 유럽에는 PEGI(Pan European Game Information), 일본에는 CERO(Computer Entertainment Ration Organization)가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는 게임 산업의 많은 곳을 바꿔 놓았다

다만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특히 ESRB의 경우에는 게임 소프트웨어의 심의가 ‘필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ESRB는 자발적인 심의등급 제도이며, 심의에 따른 규제는 강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품화되지 않는 플래시 게임과 같은 게임물들은 별도의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와 달리 국내의 경우에는 어떤 플랫폼의 게임이건 게임 소프트웨어라면 심의는 ‘필수’며,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내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을 유통할 경우에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형사처분 대상이 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해외에서 유통되는 게임들은 심의를 받고 있지만, ‘모든’ 게임들이 다 심의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PC, 온라인, 비디오 게임물이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만 해도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업무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게임물을 개발하고 또 서비스하는 이들은 제한적이었고, 출시되는 게임 소프트웨어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위시한 모바일 퍼스트의 시대가 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유통되는 게임들이 많아진 것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등급 분류가 이뤄지지 않은 게임물의 유통을 막기 위해, 스마트폰 시장 초기 국내에서는 구글 플레이, 애플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는 닫혀 있었다.


집중구난방으로 이뤄지는 자율심의

2011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앱스토어에는 게임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국내 게임물 서비스사들은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로 심의를 받은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거나, 국내에서의 서비스를 아예 포기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모바일 게임 이용자들 또한 미국, 일본 등 해외 앱스토어의 계정을 만들어 모바일 게임을 내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국내에서 스마트폰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가 열리게 된 것은 게임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 이뤄지면서부터였다. 2011년 3월 개정된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라 구글, 애플 등의 앱 오픈마켓 서비스사들이 자율적으로 모바일 게임을 심의할 수 있게 됐고, 2011년 11월 2일 오전 9시를 기해 국내 앱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가 열릴 수 있었다.

▲애플과 구글 등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격을 획득해 게임을 자율심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게임물의 자체등급분류사업자격을 획득한 사업자는 구글, 애플, 원스토어, 삼성전자,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카카오게임즈, 그리고 오큘러스의 총 7개 사다. 여기에 최근에는 PC게임 전자소프트웨어 유통망(ESD)을 서비스하는 에픽게임즈가 가세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여기에 ‘스팀’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밸브의 스팀은 우리나라에서 자체등급분류사업자격을 획득하지 않은 상태다.

▲밸브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격 없이 게임을 유통하고 있음에도, 마땅한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밸브는 국내 이용자에게 미심의 게임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밸브를 향한 제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미심의 게임 판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밸브를 대상으로, 우리는 별도의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격을 획득한 업체가 오히려 스팀 같은 플랫폼으로부터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다.


비영리 모바일 웹 게임의 시장이 닫히다

게임물 심의의 역차별의 사례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웹 게임의 영역이다. 올해 2월, 다양한 소규모의 비영리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던 플래시 게임 사이트들이 일제히 게임물 제공을 중단했다. 게임등급위원회가 이들에게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을 공유해서는 안 된다며, 형사처벌까지 검토되고 있다는 공문을 보내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1차 통보가 이뤄진 업체는 총 5곳이었으며, 이들 모두가 공문을 내걸고 플래시 게임 서비스 중단을 발표했다.

▲형사처벌이라는 극단적인 말로 창작자들을 겁주고 있다

비영리 목적의 프리웨어까지 심의를 강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조치는 시장의 커다란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개인의 창작욕을 꺾는 조치라는 비난이 빗발쳤고,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모든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한다’라는 대전제를 계속 이야기했으나 대중들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 결국 올해 3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심의 수수료를 면제할 것이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비영리 게임에 대한 심의 자체를 면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과거 게등위는 RPG쯔꾸르로 만든 게임에도 심의가 필요하다며 규제를 가하기도 한 바 있다

개인의 창작욕을 규제한다는 이유로 결국 비영리 플래시 게임의 규제는 없던 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게임물 심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된 것으로 볼 수 없다. 심의를 무기로 인디게임에 대해 규제를 가한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초등학생이 블로그에 공개한 비영리 게임에 대해 100만 원가량의 비용이 소요되는 심의를 요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시에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협박’을 가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자의적인 심의의 잣대

더욱이 이런 규제들이 웹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미니게임들에 한정되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게임물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들의 심의는 구글, 애플 등의 자체등급분류사업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즉 모바일 플랫폼으로 출시될 경우에는 원천적으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되며, 앱이 아닌 HTML5 게임으로 서비스될 경우에는 앱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규제를 받게 되는 구조다.

▲같은 게임물이더라도 웹 게임으로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규제를 받게 된다

자율규제로 서비스되는 모바일 게임들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설사 웹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되는 일부 게임들이 역차별받는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정도 합리성을 지닌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가 그러하지 못하는 점이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가 매월 공표하고 있는 자율규제 미준수 게임들의 대다수는 해외 기업들의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때, 해외 기업들은 자율규제의 그림자에 숨어 불공정한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 자율규제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웹사이트 등을 서비스 플랫폼으로 채택한 게임들은 불공정한 심의 규제로 신음하고 있다.

▲특혜는 없더라도 ‘역차별’은 없도록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지난 5월,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과 대기업집단 간 정책간담회’에서 “국적에 관계없이 동등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의 경쟁에서 한국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는 특혜를 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역차별은 당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게임물 심의라는 제도는 대기업 혹은 해외기업에 지극히 유리한, 국내 중소기업에의 역차별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게 실정이다. 플랫폼에 따라 같은 게임도 규제를 받을 수 있는 지금의 심의 정책은 너무나도 자의적이며 또 불공정하다. 하루빨리 심의에 대한 제도는 개선돼야 할 것이며, 창작자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사전심의가 아닌 ‘사후관리’로 체제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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