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이 질병이 될 수 없는 이유 [기자스케치]

조회수 2019. 6. 21.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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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이 폭력성에서 중독성으로

안녕하세요. 알면 돈이 되는 IT 상식! 앱스토리 IT스토리의 이귀주입니다. 게임중독을 마약, 알코올, 담배처럼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안건이 통과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냐고요? 아닙니다. 우리나라 기관에서 한 게 아니라 WHO, 즉 세계보건기구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건이 통과된 겁니다. 오늘은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것들, 관련 업계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이귀주 기자

문제의 본질이
폭력성에서 중독성으로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현상을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딱히 최근 들어 부각된 화제가 아니라는 거죠. 과거에는 폭력성이 주된 화두였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폭력성을 키운 인물이 강력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은 언론에서 많이 다뤄진 이야기죠. 총기 테러범이 1인칭 슈팅 게임을 즐겼다거나,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가 일본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의 마니아였다거나 하는 뉴스들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게임의 요인이 실제로 사람의 폭력성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은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게임보다 더 수위가 높은 영상 매체들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게임의 과도한 폭력성을 문제 삼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떠오른 화두가 바로 중독성입니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실제 생활까지 잠식하는 중독성이 폭력성 대신 자주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게임 중독’의 이야기입니다.

▲게임의 궁극적인 문제를 폭력성이 아닌 중독성으로 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게임 중독은 많은 나라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전에 없던 게임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태어나고 또 발전하면서, 그것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도 함께 발전하고 있는 거죠. 실제로 게임이라는 매체는 다른 영상, 음성 매체들보다도 중독성이 높은 편으로 봐야 할 겁니다. 게임은 어떠한 영화보다도 더 몰입도가 높고, 영상과 음성이 모두 활용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이자 이용자의 직접적인 조작에 의해 결과를 거둘 수 있는 체감형 미디어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다른 콘텐츠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는 이들이 많아졌죠. 영화 중독, 음악 중독 같은 말은 잘 사용되지 않지만, 게임 중독이라는 말은 최근 몇 년 동안 끊임없이 통용되던 일상적인 용어입니다.


WHO “게임 중독은 질병이다”

그런데 최근 게임에 중독된 현상을 질병으로 분류해 치료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안건이 세계보건기구에서 통과됐습니다. 올해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중독을 ‘게임사용장애’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이 통과된 거죠. 본 안에서는 게임 중독을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WHO는 최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세계보건기구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데에는 의학적으로 게임 중독의 유해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른 관심사나 일상사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며’, ‘이로 인해 삶에 문제가 생겨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증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게임 중독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게임사용장애, 즉 게임 중독은 ‘6C51’이라는 코드가 부여됐고,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부문의 하위항목으로 분류됩니다. 본 안은 유예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2022년부터 약 5년에 걸쳐 각 회원국에 게임 중독이란 질병을 치료하도록 권고할 방침입니다.

▲게임 중독의 유해성이 의학적으로 입증됐을까?

본 분류에는 강제성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권고죠.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권고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기본방침은 다릅니다. 결국 우리나라도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에 따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을 참고해 작성된 표준질병 사인분류, ‘KCD’라는 질병 체계가 있습니다. KCD는 5년에 한 번씩 개정이 되는데, 다음 개정의 시기는 2021년입니다. 즉, 이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이 KCD에 반영이 되는 것은 빨라야 2026년이 될 것입니다.


게임 중독이 정말로 질병이 된다면

그렇다면 게임 중독이 2026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질병으로 등재되지 않을 테니, 별 영향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을 ‘질병을 유발하는 매개체’로 보게 되면, 게임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될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요즘 K-POP이 엄청난 인기죠. BTS가 빌보드를 휩쓸고 있습니다. 영화는 또 어떤가요.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들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가 영화일까요, 아니면 K-POP일까요? 정답은 게임입니다. 게임은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 수출 분야에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입니다.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특히나 지금 게임 산업 매출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도박에도 비유되는 확률형 아이템이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의 가장 주된 매출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 중독에 대한 화두가 부각되게 되면 우리나라는 게임 수출에 큰 타격이 가해지게 되겠죠. 세계보건기구의 발표가 있던 날, 우리나라 게임사들의 주식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의 가장 주된 매출원, 확률형 아이템

‘질병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임사들에게 사회적 책임에 대한 목소리도 더욱 커지게 될 겁니다. 질병인 게임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기금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테고, 게임사들은 영화기금처럼 별도의 질병 치료를 위한 기금 조성을 해야 할 겁니다. 세금의 형태로 걷어지게 될 수도 있겠죠. 안 그래도 구글, 애플에 수수료를 떼이는 게임사들의 입장에서 이건 치명적일 겁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 게임 산업에 가해진 규제들이 하나둘씩 철폐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게임 결제 한도 폐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머지않아 셧다운제도 손을 댈 거라는 희망적 전망이 업계의 관측이었는데요. 여기에 여성가족부나 야당도 아닌 세계보건기구가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 게임 규제 철폐의 움직임도 더뎌지겠죠. 수출의 역군인 게임사들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니, 실제로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에 정부도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총리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문제에 대해, 지혜로운 해결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죠.

▲한참 논의되던 게임 결제 한도 폐지 건도 더뎌질 것

우리나라에는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졸지에 이들이 질병의 매개체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돼버렸어요. 이번 세계보건기구 발표 이후 SNS에서는 게임이 질병이 아니라는 표어를 담은 사진으로 자신의 프로필을 바꾸는 업계 종사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젊음을 바쳐 만들어 낸 결과물이 질병을 유발하는 유해한 매체로 취급되는 걸 게임 업계 종사자들은 견딜 수 없을 거예요.


WHO의 결정, 과연 실효성 있을까

여기까지가 비교적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반응들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요. 준대기업 위주로 재편된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사실 게임중독 방지 세금을 걷더라도 회사 경영에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거예요. 영화진흥기금을 걷는다고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문을 닫은 건 아니잖아요.

물론 이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되는 중소기업들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낄 게임 개발자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게임이란 산업은 원래 예전부터 기성세대들에게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던 업계였잖아요. 이번 결정이 기분 나쁜 일이긴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다거나 지금껏 없었던 핍박을 받게 되는 계기이거나 한 게 아닙니다. 사실 게임사들 입장에서 이번 결정은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 먼 나라 소식으로 들릴 겁니다. 과장하자면 그저 기분 나쁜 뉴스거리에 불과하다는 거죠.

▲게임을 향한 부정적 잣대 중 하나에 불과하다?

게임 중독이란 것이 과연 뭘까요. 우리는 이 지점부터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게임중독의 기준을 다시 살펴볼까요?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 그럼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다른 관심사나 일상보다 게임을 우선시한다’. 게임도 일종의 취미인데 그럴 수 있죠. ‘게임 중독으로 삶에 문제가 생겨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한다’. 이 정도로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는 사람을 굳이 게임으로부터 떼어놓을 필요가 있을까요. 게임이란 말을 노래로 바꾸면 어떻게 되나요? ‘노래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른 관심사보다 우선시하며, 삶이 문제가 되어도 일상보다 노래를 우선시한다’. 그저 노래가 취미이자 특기인 가수 지망생이나 인디 뮤지션들이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치료해야 할 ‘노래 중독’을 앓고 있는 인물로 생각되진 않죠.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볼 만한 충분한 의학적 근거가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의학적 근거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이들이 제시한 게임 중독의 기준들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즉, 게임 중독이 질병코드가 되더라도 실효성을 거두기가 힘들 거라는 거죠. 이건 마치 과거에 세계보건기구가 질병으로 등재했다가 삭제한 ‘인터넷 중독’과도 비슷한 개념이 될 겁니다.


게임 중독이 모호한 기준 속에서 실효성을 잃더라도,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 중독이라는 게 그러면 과연 없는 걸까? 있다면 과연 정말 질병이 아닌 걸까? 하는 점에서요. 게임이 중독성이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일 겁니다. 다만 그걸 의학적으로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죠. 게임의 사행성 문제는 어떤가요?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사람의 도박 심리를 건드리는 지금의 과금 구조는 과연 옳은 걸까요?

우리나라 게임사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들은 기존의 다른 플랫폼의 게임들보다도 중독성이 높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적응할 수 있고, 그 시간을 들이기 힘든 사람은 확률형 아이템으로 시간 대신 돈을 써야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죠. 적어도 모바일 게임에 한해서는 중독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게임 업계에서는 게임 중독을 그저 ‘꼰대’들의 잘못된 결정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의 세계보건기구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는 잘못된 결정이라는 걸 인정해야겠지만, 게임 중독이 제대로 진단될 수 있는 성격의 무언가가 된다면 그때는 게임사들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까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듣고 싶고 알고 싶은 주제가 있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다음 방송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지금까지 IT스토리, 이귀주였습니다.

▲게임사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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