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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의 객관화

조회수 2020. 12. 20.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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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섭섭에게 일과 휴식의 균형에 대해 물었다. 그는 스스로를 멀리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위) 블루 컬러 터틀넥 니트는 라코스테(Lacoste), 팬츠와 앵클 부츠는 코스(Cos). (아래) 그레이 컬러톤 후드 톱은 에잇 바이 육스(8 by Yoox). 베이지색 쇼츠는 코스.

오늘의 인터뷰를 위해서 여행을 취소했어요. ‘마음먹고 만들어낸 휴일이지만 제대로 된 휴일을 보내고 있는지 헷갈리는 이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Day Off 그림을 어제 보았는데, 결국 인터뷰 때문에 쉬질 못했네요. 요즘 제대로 된 휴일을 보내지 못하는 건가요?

휴일을 잘 보내는 편은 못 되는 것 같아요.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리는 계속 생각하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서 휴가를 제대로 못 떠나요.

Day Off를 보고 섭섭의 휴일과 휴가가 궁금했어요.

SNS가 활성화되고 쉬는 시간이 더 없어진 것 같아요. 주요 소통 창구가 인스타그램인데, 업무 관련한 분들과도 서로 팔로잉하니까요. 일을 안 하고 있어도 신경은 쓰이는 거죠.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따로 없겠어요. 작업 패턴이 어떻게 돼요?

정해놓은 날짜는 없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그리는 것 같아요.

그럼 더 힘들지 않나요?

장단점이 있어요. 마감 일정을 정해놓으면 거기에 집착하게 되니까요. 마감만 맞추는 억지스러운 그림을 올리는 게 싫어서요.(웃음)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어요?

친구를 만나거나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소재를 얻는 것 같아요. 만약에 그 사람이 ‘나 지금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되지?’ ‘돈을 벌기 위해서 안 하고 싶은 걸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돼?’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이번에는 돈으로 주제를 잡아야 되겠다 생각하는 방식이에요.

그런 일상적인 주제라서 공감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주제 또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찾나요?

맞아요. 또 공상을 많이 해요. 워낙 생각이 많아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타일이에요.

그럼 피곤하지 않나요.

엄청요. 잠잘 때도 생각하다가 지쳐서 잠들고, 굳이 지금 안 해도 되는 고민을 계속하는 거죠.

그런 피로감은 어떻게 해소하나요?

요가요.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방법으로 호흡명상법을 배웠어요. 요가는 호흡이 중요한데 들고 나는 숨에만 집중하면 잠깐이지만 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명상이 어렵지 않나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이전보다 편해 보이고 차분해졌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네요.


오버사이즈 재킷과 안에 입은 재킷은, 레드 컬러 셔츠는 모두 프라다(Prada).

요가 외에 플랭크 챌린지도 하던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요가 동작 중에 어깨와 코어를 많이 쓰는 핀차 마유라사나라는 머리서기 동작이 있는데, 그 자세를 하기 위해 힘을 기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그 전갈처럼 올라가는 거 말하는 거죠?

맞아요. 그 자세를 하고 싶어서요. 아직까진 힘이 안 돼서 연습하고 있어요. 원래는 30일 동안 5분까지 하는 걸 목표로 시작했는데, 아직 거기까진 못 갔어요. 1분 30초에서 시작해서 오늘 18일째 2분 10초까지 기록했어요.

효과가 있었나 보네요.

네. 확실히 코어랑 팔힘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플랭크 꼭 하세요. 진짜 좋아요. 1분이면 돼요.

인스타그램 피드에 샤크시(제3자가 되어 나를 관찰하는 것)에 대한 그림을 올렸던데, 진짜로 경험했나요?

아! 그게 유체이탈처럼 진짜 영혼이 빠져나가는 건 아니고요.(웃음) 내가 내 뒤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바라보는 거예요. 보통 나는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남들보다 머릿속 상상도 잘 그려내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뒤에 서 있으면 어떻게 서 있을까?’ 같은 상상을 하면서 몰입하게 되고 상상이지만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위로도 받고요.

섭섭의 그림을 보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나요. 가끔은 어이가 없어서 웃기도 하고요. 그 와중에 위로도 받고요.

뻔한 스토리로 가다가 의외의 장치를 넣어서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가볍게 읽으면서 가끔 옆으로 새기도 하는?

맞아요.

저에겐 To Do List 시리즈도 그랬어요. 하찮은 것들은 완료! 해야 할 일은 아직 X표시를 당당하게 해내는 게 뭔가 짜릿하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겠다 용기도 생기고요. 죄책감도 살짝 내려놓게 되는 효과를 봤어요.

그것도 스스로 생각이 너무 많아서 만들게 되었어요. 허황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까. 진짜 하찮은 것을 한번 써보자 생각했어요. 살다 보면 하찮은 To Do List도 때때로 필요하더라고요. 숨쉬기, 밥 먹기 등등 쉬운 거 지금 해놓고 결국 나중까지 필요한 건 안 하는, 그런 걸 재미있게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얼마 전에 집을 공개한 콘텐츠도 봤어요. 작업을 집에서 한다고 들었는데, 일하는 것과 휴식하는 것의 균형은 어때요?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문 하나 사이로 완벽하게 분리된다면 거짓말이겠죠. 환경이 주는 분리는 없고, 정신력으로 해야 되는? 그림을 도화지에 그렸을 때는 작업실이 필요했는데, 요즘엔 주로 아이패드로 그려서 그런지 큰 공간이 필요하진 않더라고요. 작업공간은 주로 저희 집 식탁이에요.

그럼 일과 쉼을 분리하는 방법은?

시간과 정신력!

작업 시간을 따로 정해두나요?

과거에는 몰아서 했는데 지금은 남들 일하는 시간에 같이 일하고 같이 끝내려고 해요. 밤낮이 바뀌면 함께 일하는 클라이언트와 의사 소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예요?

LP가 있는 공간이요.

음악을 좋아하나 봐요?

좋아해요. 지금 작곡도 배우고 있어요. 미디 작곡인데, 재즈도 배우고 일렉트로닉도 배우고.

재미있어요?

네! 솔직히 지금은 음악 배우는 게 제일 재밌어요. 왜냐하면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하는 거니까. 조금 더 빨리 배울 걸 그랬어요.

나중에 작업에 쓰일 때가 있겠네요?

그렇지 않을까요? 제 그림이랑 함께 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고요. 전에 구호와 작업했을 때 BGM도 제가 만들었어요.

섭섭의 힐링 포인트를 또 하나 찾았네요. 재주가 많네요.

소질은 없는 것 같은데, 재미있으니까.

쉴 때는 뭐 해요?

쉴 때 뭐 하냐고 물어볼 때가 가장 난감해요. 24시간 중에 쉬어야지! 작정하고 쉬는 시간은 사실 없어서. 그냥 기쁠 때가 휴식 같은 느낌?

언제가 기쁜데요?

일이 잘됐을 때가 가장 좋죠.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요가를 하고 나서 개운할 때도 기쁜 것 같아요.

반대로 슬플 때는?

행복할 때의 반대겠죠?

밝은 사람 같은데 아닌가요?

원래는 안 그랬는데, 바뀌었어요. 기저에 예민함은 있는데, 작은 것에도 반응하는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 예민이요.

잔잔한 파도에도 동요하면 마인드 컨트롤하기 힘들지 않아요?

그 점은 요가와 음악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요가에서는 들숨이 있고 날숨이 있는데, 이 중에 한 가지로는 숨을 쉬지 못해요. 살기 위해 호흡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들숨과 날숨을 해야 되잖아요.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있는데, 늘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는 걸 배웠어요. 변화에 동요되지 않도록 모든 일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객관화시켜서 보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플랭크에 이어 들숨 날숨도 해봐야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에게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섭섭의 그림처럼 우리가 아무거나 들어드릴게요.

당신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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