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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루어코리아

빈티지 쇼핑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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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난 패션템에 새로운 활기가 돈다. 바야흐로 빈티지 쇼핑의 시대다.

어느 시대에나 ‘트렌드’는 있다. 나 역시 본격적으로 쇼핑에 뛰어든 20대부터 숱한 트렌드의 파도에 올라탔다. 때는 이른바 ‘럭셔리 제품이 대중화’된 시기였다. 대학생들이 프라다 백을 들고 캠퍼스에 나타난다며 언론이 혀를 끌끌 차기도 했지만 그냥 그런 시대가 도래한 거였다. 그렇게 십수 년을 살아온 결과 지금 내 옷장은 터질 지경.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 것인지, ‘옷장 정리’라거나 ‘옷 순환시키기’ 같은 칼럼을 쓸 때마다 조회수는 톱을 달렸다.

그 수많은 유행템 중에 유행이 지난 후 가장 처치하기 곤란한 것은 무엇일까? 당시로선 큰 돈으로 구입한 브랜드의 가방, 액세서리다. 아직 너무나 멀쩡하지만 지금 들기는 조금 그런 가방들이 커다란 박스로 2개분. 그러나 골칫덩이가 된 이 가방들이 몇 년 사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새것이 아닌 빈티지가 사랑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당장 인스타그램을 열어 패션 에디터, 디자이너,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열어보길. 지금 막 시작된 가을/겨울 신상품과 함께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가방과 액세서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패션 콘텐츠를 선보이는 플랫폼도 앞다투어 빈티지 스타일링을 다룬다. 아아, 저것은 2008년의 컬렉션! 이것은 2010년 한정판으로 나온 것이고 모델은 누구였다까지 떠오르는 나는 어쩌면 패션계의 고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 반가움은 미뤄두더라도 이 옷과 액세서리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처음의 볼록볼록함을 잃고 다소 납작해진 샤넬 클래식 백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저 낡은 백인가? 내가 보기에는 한창때는 지났지만 한결 너그럽고 우아해진 여사님처럼 보이고, 데님 팬츠와 스웨터로 된 평범한 룩에 우아함 한 방울을 드리우는 것 같다. 드라마 < 하이에나 >에서 변호사 역을 맡은 김혜수는 빈티지 가방을 여럿 들었다. 처음의 빳빳함을 잃고 중력에 따라 느슨하게 처진 에르메스의 에르백이나,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샤넬의 브리프케이스… 이런 소품들은 경력과 능력을 갖춘 정금자 역할에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오랜만에 ‘처박아둔 박스’를 뒤져 루이 비통의 백팩을 찾아냈다. 몽수리라는 귀여운 이름의 백팩은 포코노 소재로 된 프라다 백팩의 후계자였다. 한때 백팩을 한쪽으로 메고 압구정동을 걸으면 나와 같은 백팩을 멘 여성을 대여섯 명은 만날 수 있었다. 근 10년만에 세상의 빛을 본 백팩은 조금 얼룩덜룩하긴 했지만 여전히 튼튼했다. 스웨터를 입고 이 백팩을 멨다. 이 백팩을 멘 건 나 하나다. 이제 나의 빈티지 몽수리 백팩이 샤넬 가브리엘 백팩보다 귀하다. 디자인이 변형되어 기존 디자인은 시간과 함께 어느덧 ‘레어템’이 되어 있었다.

급성장하는 빈티지 마켓

빈티지 마켓은 말 그대로 폭풍 성장 중. 빈티지 제품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더리얼리얼(TheRealReal)을 보자.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초기 투자금 약 1억원으로 시작된 더리얼리얼은 오프라인 매장까지 운영하며 상장 당시 시가 총액 약 2조6천억원을 달성했다. 시장가치는 15조로 평가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유니콘이다. 카일리 제너와 켄달 제너 자매가 더리얼리얼에서 소장품을 판매해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심상치 않게 후기가 올라오는 포시마크(Poshmark)도 있다. 소셜 쇼핑 사이트 카부들 설립자이기도 한 매니시 찬드라가 설립한 포시마크는 더리얼리얼과 달리 판매자가 상품 촬영부터 등록, 배송까지 직접 하는 시스템으로 대신 수수료가 낮은 편이다. 또 상품에 문제가 있거나 분실되면 포시마크가 환불을 해주는 구매자 보호 정책이 있다. 포시마크는 해외 카드 결제를 막아놓아 국내에서 직접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이 포시마크를 ‘눈팅’하다 보면 그 어마어마한 셀렉션에 놀란다. 마치 패션의 역사를 펼친 것처럼 그 브랜드의 시즌별 주요 제품들이 NWT(New With Tag: 태그가 달린 새 상품)부터 누가 사나 싶은 낡은 제품까지 등록되어 있다. 팬데믹 이후 당근마켓 사용자가 급증한 것처럼 포시마크 역시 팬데믹 이후 더욱 호황을 맞았다. 집에 머물며 안 쓰는 옷과 신발을 정리하는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포시마크의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판매 게시글은 이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 이러한 플랫폼 외에도 기존 유통 채널 역시 빈티지를 판매하는 데 적극적이다. 니만 마커스와 메이시스 백화점은 중고 패션 상품을 판매하는 코너를 열었고, 리치몬트 그룹은 시계 전문 플랫폼인 워치파인더(Watchfinder)를 인수했으며, 파페치는 ‘Positively FARFETCH’ 코너를 신설했다.

왜 다시 빈티지일까? 빈티지 트렌드를 이끄는 주역은 MZ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다. 새것을 구입할 만큼 충분히 넉넉하지 않은 밀레니얼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빈티지 제품으로 ‘플렉스’를 한다. 실제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의 가방이 3백만원대라면, 빈티지 시장에서는 상태가 좋은 가방을 50만원에 살 수 있다. 이것을 구입해 한두 시즌 즐긴 후 다시 35만원에 재판매하는 식이다. ‘가성비’를 즐기는 MZ의 기호와도 맞다. 밀레니얼은 패션을 소유, 소장의 개념이 아닌 구독, 착용의 개념으로 여긴다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새것을 살 돈이 없어 중고를 산다”라는 시선이나 “중고를 사도 될까?”라는 의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포시마크 사용자의 20%는 Z세대로, 2019년 신규가입자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지속가능한 ‘빈티지’

지속가능한 패션의 선구자인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븐 쉬나드는 <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에서는 이렇게 단언한다. “소비자로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옷을 수선해 입는다. 여기서 수선은 낡은 옷을 기워 입는 것에 가깝다. 이 시대의 빈티지는 바로 이러한 ‘윤리성’을 입고 더욱 날개를 단다. 나의 물건을 더 잘 써줄 수 있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 타인의 물건을 내가 더 사용하는 것 모두 환경에 도움이 된다. 늘 새것만 산다면 오래된 것은 그저 버려지는 쓰레기가 된다. 새것을 사는 대신 빈티지를 사는 것은 물건의 쓰임을 연장시키는 ‘좋은 행위’라는 인식이 점점 공감대를 얻고 있다. 파페치의 ‘Positively FARFETCH’ 코너는 바로 이 점을 내세운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장려하고 환경과 윤리를 고려한 착한 브랜드를 권장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되기 위한 파페치의 미션’,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는 클래식 셀렉션을 만나보세요’, ‘자원의 선순환을 돕는 파페치의 서비스를 통해 옷의 수명을 늘리고 새 주인을 찾아주세요.’ 이는 모두 실제로 파페치의 웹사이트에 쓰여 있는 문구로 빈티지를 구매하는 데 더욱 긍정적인 무드를 얹는다.

파페치의 문구처럼 빈티지 쇼핑이 ‘더욱 의식적이고’, ‘자원이 순환되는’ 착한 쇼핑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패션 산업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쳐서 입을 것을 권하는 파타고니아의 캠페인이 전 세대에 호응을 받는 이유다. 반면 패션 하우스들이 브랜드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 제품을 소각하는 관례는 비난에 직면했다. 프랑스 총리실에 따르면 매년 프랑스에서 6억5천만 유로(약 8천633억원)가 넘는 신상품이 버려지거나 파괴된다. 작년 프랑스에서는 2019년 이를 막는 법안이 상정되었다. 소각하는 대신 미판매 제품을 다시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탄소배출의 25%를 섬유 생산이 차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중고 제품을 구매한다면 탄소 발자국이 82%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몇몇 패션 브랜드는 빈티지 고객을 끌어안으며 책임과 윤리를 실천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버버리와 구찌는 더리얼리얼과 제휴를 맺었는데, 더리얼리얼에 위탁된 버버리 제품을 구매한 고객은 미국 내 부티크 중 한 곳에서 특별한 쇼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구찌는 판매가 이루어질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고, 환경에 관심이 많은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사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용자에게 100달러의 크레딧을 제공하고 있다.

Pre-Owned, Pre-Loved

그러니 빈티지 패션은, 어쩌면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일이다. 당시 사랑했던, 지금 사랑하지 않는 나의 물건들이 새로운 사랑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빈티지 물건에 대해 중고임을 뜻하는 ‘Used’보다 ‘소장된(Pre-Owned)’을 사용하거나, ‘사랑받은(Pre-Loved)’ 물건으로 표기하는 일이 늘었다. 나는 요즘 지금보다 패션에 열정적이었던 때 구입한 옷을 다시 꺼내보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것은 새 주인을 찾아주기도 한다(내가 이렇게 짧은 걸 입고 다녔다니! 이렇게 높은 걸 신었다니!). 새로 산 토템 데님에 8년 된 미스지 컬렉션의 긴 재킷을 입고, 아크네의 슬랙스에 15년 된 아르마니 재킷을 입는 식이다. 당대의 미감을 쏟아부은 이 재킷들은 여전히 라인이 선명하고 다시 돌아온 1990년대 무드와도 잘 맞는다. 13년 전에 사고 잊어버렸던 DKNY의 팬츠는 당시 유행대로 밑위가 조금 짧지만 바지 라인만큼은 지금 막 나온 것 같다. 가방은 어떤가. 오래된 디올의 새들백은 당근마켓으로 팔아버렸지만 사회초년생 시절 구입한 루이 비통이며 페라가모 백은 너무 튼튼한 데다 클래식해 보이기까지 해서 열심히 들기로 한다(게다가 아직도 라인이 유지되는 스테디!). 정금자의 샤넬 브리프케이스가 탐이 나는가? 현재 파페치의 ‘Positively FARFETCH’ 코너에서 1995년 제작된 브리프케이스가 7백85만원에 팔리고 있다. 그러니 당장, 빈티지의 무드에 동참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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