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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명의 후원자를 두었던 이 화가. 섬뜩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아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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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에게 후원은 매우 중요합니다. 갤러리에 소속된 전속 작가들이나 기업의 후원을 받는 거물 작가들은 안정적인 재정 여건 속에서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죠.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 ~ 1828)는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화가입니다. 무려 4명의 전제 군주로부터 풍족한 후원을 받으며 성공한 예술가로 명성을 날렸죠. 


동시에 후원자들에게 큰 소리 뻥뻥 치는 '용감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과감한 행동이 가능했을까요?

Portrait of Goya by Vicente López Portaña, c.  1826. Museo del Prado, Madrid

출처위키피디아

고야의 작품 활동 시기는 40대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눠볼 수 있습니다. 40대 이전은 여러 명의 후원자를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후원자들이 맘에 들어하는 경쾌한 스타일의 그림을 대거 쏟아냈죠.

고야의 1777년 작품 '파라솔'(The Parasol), 프라도 미술관 소장

출처위키피디아

하지만 고야가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조국 스페인이 프랑스의 침공을 받아 내전에 휘말렸고, 고야는 역병에 걸려 '청력 상실'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고야의 작품 경향은 뚜렷하게 달라지죠. 심지어 기이하면서도 무섭기까지 한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끝없는 덜덜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광기,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작품 몇 점을 살펴볼까요?

아래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묘사한 그림인데요. 왕실의 권위 따위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좀 사는 부잣집 일가의 가족 사진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최고 존엄과 그 가족들을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건 당시로선 엄청난 파격이었습니다.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1800–01

출처위키피디아

아래 작품은 스페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프랑스 군대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1808년 5월 3일'입니다. 

The Third of May 1808, 1814. Oil on canvas, 266 cm × 345 cm (105 in × 136 in). Museo del Prado, Madrid

출처위키피디아

이번에는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라는 작품입니다. 어느 후원자가 이런 섬뜩한 그림을 저택의 거실이나 침실에 걸어두고 싶어했을까요. 조국이 처한 현실, 전쟁, 병마, 죽음의 공포 등으로 시달리던 고야의 내적 심리 상태, 권력을 향한 환멸, 울분, 좌절, 불안 등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Saturn Devouring His Son, 1819–1823

출처위키피디아

마드리드 교외의 한 농가에 정착해 세상과 단절한 말년을 제외하면 고야는 줄곧 왕가와 귀족층의 후원을 받으며 넉넉한 형편 속에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데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걸까요, 아니면 그의 '저항'에도 후원을 끊을 수 없을 정도로 고야의 실력이 대단했다고 봐야 할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당시 고야를 후원했던 왕이나 귀족들이 이런 반항은 그냥 품고 넘어갈 정도로 그릇이 컸다는 걸 의미하는 걸까요. 


정답은 알 수 없지만 프란시스코 고야의 자신만만한 작품들을 보면서 '예술가들에게 후원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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