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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은 남성의 색, '빨강'은 여성의 색?

아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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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만 해도 성모 마리아의 영향으로 파랑은 여성적 이미지를, 권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빨강은 남성의 이미지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남자아이는 파랑, 여자아이는 분홍으로 규정하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죠. 

사회 규범과 금기, 편견 등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색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의미로 변주돼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태도, 언어와 상징체계에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언제나 하나의 이미지, 의미를 담고 있지도 않았죠. 한 마디로, 색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색의 상징성은 어디서 비롯될까요? 또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요?

'파랑'은 오랫동안 중요하지 않은 색이었다?

청색은 만들기 어렵고 만드는 과정도 더디고 복잡했기 때문에 당시 사회나 종교 생활, 상징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청색을 미개인들의 색, 이방인들의 색으로 여겼는데요. 고대 로마에서는 파란 눈의 사람은 추하게 생겼다고 본 충. 격. 적. 인 기록도 있습니다. 

파란색 눈을 가진 여성은 정숙하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고, 파란색 눈을 가진 남성은 나약한 인상에 교양이 없거나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치부됐죠.

파리 왱왱

이런 상황은 중세 초기까지 계속되다가 갑자기 12세기에서 13세기에 청색은 가치로운 색이자 유행하는 색이 됩니다. 왜?

파랑, '하늘의 색'이 되다

필리프 드 샹파뉴, 비탄에 잠긴 성모, 17세기, 파리, 루브르 박물관

출처Wikimedia Commons

색과 빛에 대한 성직자나 신학자의 생각에서 깊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청색의 인기가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파랑은 12세기부터 성모 마리아의 형성을 나타내는 색이었습니다. 생드니 성당의 주교 쉬제르는 파란색을 "신의 어머니가 살고 계신" 하늘의 색으로 비유했습니다. 이후 서양의 화가들은 하늘을 파란색으로 표현했습니다. 참고로 그 이전의 하늘은 검은색이나 붉은색, 흰색이나 금색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서유럽 전역에 널리 퍼지면서 하늘의 색인 청색은 그녀의 겉옷이나 드레스의 색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그 과정에서 화가들은 성모 마리아의 옷과 그녀가 걸치고 있는 외투를 그리기 위해 아시아로 향했고,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광산에서 채굴한 준보석, 청금석에서 원하는 색을 찾아냅니다.


성모 마리아가 성화에서 청색 의상을 입고 나타나자 프랑스의 왕들도 이 유행을 따랐습니다. 필리프 2세와 그의 손자 루이 9세는 청색을 걸쳤던 최초의 프랑스 왕 들이라고 하는데요. 1400년경에 제작된 장식 삽화는 프랑크 왕국의 왕이자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롤루스 대제도 청색 망토를 착용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귀족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왕의 청색을 입었습니다. 

세대가 3번이나 바뀌면서 청색은 귀족들이 선호하는 색이 됐습니다. 이는 염색법 등 관련 기술을 발달시키고, 엄청난 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빨강'은 어쩌다가 '파랑'에게 자리를 내줬을까?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탈리아에서 빨강은 오랫동안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의식을 거행할 때 총독이 진홍색을 입고, 사슴뿔 모양의 진홍색 공식 총독 모자를 썼는데요. 옷과 모자는 케르메스 일리키스(연지벌레)를 말려 얻은, 고가(高價)의 붉은색 염료로 염색한 것입니다. 서양 중세에서 진홍색은 그야말로 위엄과 권세의 표상이었죠.

젠틸레 벨리니, 총독, 1460-1462, 보스턴 미술관

출처Wikimedia Commons

그러다 중세 말기 팽배한 도덕적 경향은 색의 사용과 반(反) 종교 개혁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몇몇 프로테스탄트 화가나 필리프 드 샹파뉴와 같은 얀선주의 화가들은 흰색, 검은색, 회색, 갈색과 함께 청색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빨간색과 노란색은 지나치게 화려했기 때문에 저속한 색으로 여겨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빨강은 '교황주의자'들의 색이었기에 신교도 종교 개혁가들에게 부도덕한 색으로 인식됐죠.

괜찮아
'빨강'은 양면성은 지닌 색깔이다?

빨강의 이런 '회피'는 16세기부터 더 도드라집니다. 추기경이나 몇몇 기사단 회원들을 예외로 남성들은 빨간 옷을 기피하게 됐고, 반면에 가톨릭 여성 교도들은 빨간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빨강은 여성의 결혼식 드레스 색깔로 전이하게 되는데요.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대다수가 빨간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식 날 가장 멋진 옷을 입는데, 당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는 당연히 빨간색이었습니다. 이 색은 염색 업자들이 가장 잘 만들어 낼 수 있는 색깔이기도 했습니다.

세실리오 플라 이 가야르도, 악마의 유혹, 잡지 '블랑코 이 네그로' 1900년 7월 1일 자 표지, 파리, 장식예술학교도서관

출처Wikimedia Commons

빨강은 이중성을 띄는 색이기도 했습니다. 중세 말에 성매매를 상징하는 색이었다고 하는데요. 오랫동안 성매매 여성들은 반드시 빨간색 천 조각을 몸에 걸쳐야만 했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그들을 더 잘 분간하고 귀부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같은 이유로 사창가의 문간에는 빨간색 초롱을 달아야 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성매매 여성이나 팜 파탈을 붉은색으로 즐겨 묘사하는 화가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19세기 말의 도판에서는 성매매 여성뿐만 아니라 팜 파탈과 '여자 악마'도 빨간색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빨간색은 자비의 색이면서 한편으로 육체로 지은 죄의 색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빨간색은 금기의 색, 위반의 색이 됐어요. 법관이 법정에서 입은 옷도, 피를 불러오는 사형 집행인의 장갑과 두건 색깔도 같은 이유로 빨갛습니다. 이는 우리의 심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색이 기막히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고 | 색의 인문학(미셸 파스투로, 도미니크 시모네, 미술문화),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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