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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속 음악이 소름돋는 이유?

조회수 2020. 3. 10. 11: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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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본문은 영화 <작은 아씨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벌써부터 2020년 인생 영화를 만났다". 영화 <작은 아씨들>의 리뷰입니다. 따듯하고 잔잔한 가족 간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신 영화 <작은 아씨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OST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똘똘 뭉친 첫째 '메그', 용감하고 강인한 둘째 '조', 조용하지만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씨를 지닌 셋째 '베스', 철없어 보이지만 속 깊은 막내 '에이미'. 네 자매의 사랑스러운 성장기와 성인이 된 후의 장면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극이 진행됩니다.

<작은 아씨들>은 둘째 '조'를 중심으로 이뤄진 이야기인듯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베스'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을 보살피다 전염병에 걸린 '베스'의 존재는 혼자서 당당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 '조'의 마음을 녹였고, 접었던 글을 쓰게 했으며, 자식을 모두 잃은 로리의 할아버지 '로렌스'에게 큰 위로가 되어줬죠.

베스가 등장하는 장면이 유독 눈물겨운 이유는 베스가 그토록 좋아하던 피아노 음악에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조와 로리가 첫 만남에서 왈츠를 추는 장면, 산뜻한 작은 아씨들의 일상 등에서 수많은 클래식 음악이 사용됐지만, 베스가 연주한 피아노 곡, 그중 특히 세 곡은 영화의 스토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작은 아씨들의 옆집에 사는 로리의 할아버지 '로렌스'는 베스를 집으로 초대에 마음껏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배려해줍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피아노를 쳤던 베스는 처음엔 머뭇거리는 듯하지만 이내 음악으로 자유한 듯 아름다운 연주를 선보이죠.

로렌스의 집, 베스의 피아노 연주

<작은 아씨들>이 선사하는 소박한 기쁨을 표현하기에 슈만의 음악만큼 적합한 곡이 있을까요. 슈만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고, 그의 음악적 영감의 원천은 언제나 사랑하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아내 클라라와의 첫 만남부터 결혼, 아이가 태어난 기쁨 등 모든 일상적인 요소를 <여인의 사랑과 생애>, <어린이 정경>,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같은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슈만-나비

앞선 곡은 슈만의 작품, <나비 Papillons>의 10번째 곡 '가면을 벗기다'입니다. <나비>는 작은 아씨들과 로리의 행복했던 시절을 음악으로 다시 한번 회상하는 곡입니다.

슈만은 리히터의 미완성 장편소설 <개구쟁이 시절>의 마지막 장인 63장 <애벌레의 춤>에서 영감을 받아 이곡을 작곡했습니다. <애벌레의 춤>은 가면무도회를 배경으로 발트와 볼트라는 두 형제가 무도회장에서 아름다운 소녀 비나를 만나 구혼하는 내용인데요. 무도회장에서 비나를 처음 만났던 순간, 사랑에 빠지고 고백을 한순간과 비나를 둔 형제의 다툼과 분노, 그리고 떠나버린 형제들까지. 슈만은 리히터 소설의 스토리를 총 12개의 곡으로 나눠 피아노 곡으로 작곡했습니다.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난 로리와 조의 아름다웠던 순간, 그 뒤 나눈 행복한 시간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른 뒤 로리가 조가 아닌 조의 동생 에이미와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맺기까지의 과정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슈만-어린이 정경

로렌스가 계단을 내려와 눈물을 훔칠 때 등장하는 곡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 Kinderszenen> 첫 번째 곡, '미지의 나라들'입니다.

슈만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상상력 풍부한 세상을 음악으로 그렸습니다. <어린이 정경>은 어린이를 위한 곡이 아니라, 어린 시절 모습을 그린 곡이라는 점에서 <작은 아씨들>과 매우 잘 어울리는 곡이죠.

슈만이 이곡을 작곡했던 1838년 2월은 그와 클라라가 한참 사랑에 빠졌을 때입니다. <어린이 정경>은 클라라 부모님의 반대로 당장 결혼은 할 수 없었지만, 마냥 어린아이같이 사랑스럽게 보이던 클라라와 언젠간 행복한 가정을 꾸려 귀여운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하고픈 슈만의 소망을 담은 곡입니다.

'미지의 나라들', '숨바꼭질', '꿈', '난롯가에서' 등 13곡으로 꾸려진 이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이유 모를 감정의 요동침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합니다. 어떠한 기교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곡이지만 잊고 있던 순수한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적시기 때문입니다. 이곡을 들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 로렌스 역시 천진하게 뛰놀던 자신의 딸의 모습을 떠올렸을 겁니다. 

"베스는 우리 중 가장 착한 아이였어요." 영화에서 다른 아씨들은 베스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슈만의 음악은 어린 베스의 따듯하고 맑은 마음씨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너무도 티 없이 맑아 슬프기까지 한, 그런 마음 말입니다.


"베스에게 주고 싶었던 진지함이 슈만에게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슈만의 음악을 선정했습니다."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작은 아씨들>의 감독 그레타 거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은 이렇다 할 큰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습니다. 평범한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영화는 우리에게 우애와 사랑, 꿈과 용기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그 상황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음악은 잔잔한 평화를 선사합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특히나 따듯한 위로가 그리운 요즘, 영화 <작은 아씨들>과 클래식 음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사진ㅣ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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