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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와 소리꾼의 의외의 '케미'…'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김주원·이자람

아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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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대에서 만날 거라고 기대도 못했던 이들이 이렇게 완벽한 ‘케미’까지 보여줄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만난 발레리나 김주원과 소리꾼 이자람의 얘기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개막 전부터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일단은 이지나 연출가, 정재일 음악감독, 김보라 안무감독, 여신동 비주얼 디렉터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창작진들이 ‘총체극’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뭉쳤다는 점이 그렇다. 거기에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원작 그대로 올리지 않고 2019년의 현대미술계로 배경을 옮겨 재해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공연계의 트렌드인 젠더 프리 캐스팅까지 시도했는데, 그렇게 캐스팅된 이들 중 국립무용단 수석 무용수 생활 15년 끝에 이제는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발레리나 김주원과 밴드 활동, 음악감독 등 ‘소리꾼’이라는 수식어만으론 다 설명할 수 없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자람이 있으니, 화제가 안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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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아름답고 예민한 예술가 ‘제이드’(원작의 도리안 그레이에 해당)를, 이자람은 제이드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예술가 ‘유진’(원작의 배질 홀워드에 해당)을 맡았다. 각자의 분야에선 최정상에 오른 이들이지만,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첫 도전’인 것이 많았을 터. 두 사람을 만나 어떤 마음으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무대에 오르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뮤지컬 <컨택트> <팬텀>, 연극 <라빠르트망>에 이어 이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까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새로운 도전을 계속 하고 계세요.

김주원: 국립발레단 밖으로 나와서 관객분들을 만났을 때 발레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발레도 옛날엔 대중예술이었는데, 다시 대중에게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무용을 보다 쉽게 생각하실 수 있게 대사가 있는 작품도 공부해보고, 연극·뮤지컬도 해보게 됐어요.

이자람 배우님은 퍼포머로서든 창작자로서든 대부분 국악을 기반으로 한 공연을 해오셨는데요. 이번 작품은 국악 요소가 없어서 낯설거나 아쉽지는 않았나요?

이자람: 딱히 그렇지는 않아요. 이지나 연출님이 저를 섭외하실 때 “나는 네 연기가 어떤지 아는데 세상 아무도 그걸 몰라. 네 연기를 세상에 꺼내놓겠어”라고 하시길래 “어디 꺼내보세요” 하고 출연한 거예요(웃음). <당통의 죽음>이란 연극에도 출연을 했지만 음악감독까지 겸했었는데, 온전히 배우로서 연극 무대에 선 건 처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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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배우님은 대학로 무대는 처음이시죠. 개막한 지 열흘 정도 됐는데, 무대에 선 소감이 어떤가요?

김주원: 벌써 열흘이나 됐나요? 저는 대학로 공연을 원래 좋아해서 이것저것 많이 보러 다녔어요. 대학로의 관객 문화에 정말 감동받았고요.


어떤 배우, 공연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주신다는 게 진짜 부러웠거든요. 소극장에서 관객분들과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요. 소극장 무대 서는 게 기대도 되고 긴장감도 있었지만 너무 재밌어요. 다른 배우들도 정말 많이 도와줬고. 아직도 조금 낯설긴 하지만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무대 서고 있어요.

이번 작품은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어요. 매 공연마다 상대 배역의 성별이 바뀌는 게 힘들지는 않은가요?

김주원: 성별의 차이보다는 네 명의 유진, 세 명의 오스카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들 힘드셨을 거예요. 젠더 프리에 관해서는 오히려 괜찮았어요. 여자, 남자의 차이보다는 인간 대 인간, 예술가 대 예술가의 느낌으로 연기를 했거든요. 성별이 달라도 공연의 기본적인 부분은 똑같고요. 물론 체격과 힘의 차이가 있으니 배우마다 동작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 부분은 있지만요.


이자람: 저는 주원 언니랑 할 때가 훨씬 편해요. 물론 (더블 캐스트인) 문유강 씨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고요. 언니가 같은 여성이라서 서로 더 이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성별에 상관없이도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있고요. 혼자 외롭게 ‘지랄맞게’ 싸우면서 40년 이상 어떤 분야에서 버텨온 사람들이니까. 언니랑 전 그걸 알잖아요.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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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두 분의 케미가 그렇게 좋은가 봐요.

김주원: 저는 전부터 자람 씨랑 같이 공연하는 게 꿈이었어요. <사천가> <억척가>를 보고 팬이 됐었거든요. 그런데 접점도 없었고 ‘이자람은 아무나랑 일 안 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언젠가 같이 해볼 날만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만나고 나서 ‘내가 사람 잘못 본 게 아니었네’ 생각했어요. 자람 씨랑 처음 만나서 연습 들어갔을 때부터 너무 편했어요. 절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 다음에도 다른 무언가를 또 같이 하고 싶어요. 

애드리브도 정말 자연스럽게 주고받으시던데요.

이자람: 언니가 저한테 “발레 했어?”라는 애드리브를 친 거예요. 저도 빵 터졌죠. '지금 나한테 발레 했냐고 물었냐, 이 발레리나야?' 하고(웃음).


김주원: 자람 씨랑 하면 너무 재밌어요. 다 받아주고. 발레라는 게 파트너십이잖아요. 상대와 주고받는 게 저에겐 상당히 중요한데, 자람 씨는 그 누구보다 편하고 좋아요. 

제이드, 유진이라는 인물에는 어떻게 접근했나요?

김주원: 저는 어떤 공연이든 그걸 만드는 연출가, 안무가분들의 의견을 거의 100% 따르는 편이에요. 저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극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의견이 더 중요하거든요.


이번에도 이지나 연출님이 원하는 제이드가 무엇인지, 김보라 안무감독님이 원하는 움직임, 정재일, 여신동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 제일 중요했어요. 그분들의 디렉션들을 열심히 조합해서 저의 색깔을 녹여낸 거죠.


이자람: 저도 제가 퍼포머일 때는 비슷해요. ‘연출 선생님이 원하는 거 내가 해줄게. 이 장면에서 뭘 보여주고 싶어요? 오케이, 내가 그거 해볼게요’ 이런 입장이거든요. ‘그거 아니야!’ 하시면 바로 ‘아닌가요?’ 하고. 퍼포머로 섭외됐으면 연출가가 그리는 그림이 가장 비슷하게 그려지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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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 그레이라는 인물을 양극성 장애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점이 눈에 띄는데요.

김주원: 원작 소설에선 도리안의 정신질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아요. 그런데 그의 행동이나 말을 갖고 유추해보면 양극성 장애 증세와 유사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 배경을 현대로 옮기면서 이지나 연출님이 그런 설정을 넣으신 건데요. 저는 그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흐나 차이콥스키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정신질환을 앓았잖아요. 오스카 와일드가 표현한 도리안 그레이라는 인물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실제의 저는 감정 기복도 크지 않고 화낼 때 소리도 안 지르는 사람이라서 제이드를 연기하느라 고생을 좀 했어요. 자람 씨한테 소리 지르는 것도 배웠죠.

제이드에 대한 유진의 감정은 어떤 건가요?

이자람: 그냥 사랑인 것 같아요. 유진은 아무나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연애를 한다면 잘 하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이드를 만났을 때도 처음엔 방어기제가 있었죠. 누구나 연애 초반엔 고민하잖아요. 내 인생을 쟤한테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럴 가치가 있을 것인가. 유진도 처음엔 그랬지만 제이드를 받아들인 이후엔 끝까지 품어보겠다고 결심하고 죽음까지 계속 옆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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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오스카는 고통과 광기가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고 믿는 반면 유진은 그런 믿음에 반대하는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인데요. 예술가로서 두 분은 어느 쪽 의견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해요.

이자람: 저는 완전 유진이죠. 저는 일단 예술 한다는 사람들이 전화 안 받는 거 이해 안 돼요. 재깍재깍 전화 받고 약속 시간 잘 지키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남들 다 하는 걸 왜 못해. 판소리가 한이 있어야 하는 예술이라고도 생각 안 해요. 저는 건강한 정신과 체력에서 좋은 예술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김주원: 저도 자람 씨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진짜 평범하고 건전한 삶을 살고 있거든요. 발레라는 장르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규칙적인 삶을 살아야 하다 보니 술, 담배도 안 하고. 제이드는커녕 유진보다도 덜 '예술예술'한 사람인 것 같아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아름다움에 관한 극이기도 한데요. 두 분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김주원: 사람에 따라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는 기준이 다 다른 것 같은데요. 요즘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내면의 아름다움이에요. 어렸을 땐 아름다운 몸과 테크닉을 가진 무용수들을 좋아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만이 가진 내면의 무언가를 전달하는 예술가들을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런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이고요.


이자람: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처음 언니랑 무대에 설 때 ‘큰일 났다, 피지컬 너무 안 어울리는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언니는 너무 길잖아요! 안 그래도 최근에 인터넷에서 보고 빵 터진 사진이 있는데, 어떤 분이 기다란 흑조랑 다람쥐 사진을 같이 올리고 ‘주원자람’이라고 써놓으신 거예요(웃음).


그렇지만 관객분들은 언니가 말한 그런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봐주신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비록 피지컬은 흑조와 다람쥐지만 저희의 사랑을 절절하다고 봐주신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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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어렵다는 반응도 많은데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김주원: 이 작품이 꼭 예술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극에선 조금 극대화된 면이 있지만, 모든 현대인들이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위로가 되는 부분도 있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보단 그냥 편하게,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자람: 저희 공연은 ‘찰랑찰랑’하게 꽉 차 있는 것 같아요. 음악, 무대, 조명, 배우 등등 다. 그러니까 그 ‘찰랑찰랑함’ 중에서 본인의 취향에 맞는 게 있겠다 싶으면 그걸 보러 와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 공연은 이야기가 관객을 납득시켜주는 공연은 아니거든요. 그러니 결코 ‘재밌으니까 오세요’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웃음). 그걸 각오하고 오시면 각자 다른 걸 얻어 가실 수 있을 거예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외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김주원: 9월에 제 개인 토크 콘서트 같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고요. 내년에도 새롭게 올리고 싶은 작품이 두어 개 있어서 계속 스태프 미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자람: 저는 지금 작창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11월에 두산아트센터에서 <노인과 바다>를 하는데 제가 각색, 작창, 출연까지 하거든요. 3년 만의 신작이라 압박감이 크지만, 잘하겠죠? 밴드 싱글 녹음도 계속 준비하고 있고요. 

총체극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2019.09.06 ~ 2019.11.10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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