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계_단군 #프로듀서 #딸바보..류정한의 새로운 수식어

조회수 2019. 9. 18. 07:00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아트랑
한국 뮤지컬계의 자존심
뮤지컬 배우들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선배
뮤지컬 대배우

데뷔 22주년을 맞은 배우 류정한에게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지난 2년은 ‘첫 도전’과 온몸으로 부딪히는 시간이었다.


2017년 처음으로 ‘프로듀서’ 타이틀을 달고 뮤지컬 <시라노> 초연을 무대에 올렸다. 게다가 주연으로 직접 출연까지 했다. 2018년 1월엔 ‘아버지’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배우자인 배우 황인영과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난 것.


새로운 두 수식어의 무게를 류정한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시라노> 재연의 막이 오른 지 3주쯤 지났을 무렵 그를 만나 들어 보았다.


작년 <프랑켄슈타인> 이후 오랜만에 서는 무대인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시라노> 재연을 준비하느라 6개월 정도 쉬었고요. 그동안 육아도 열심히 했습니다(웃음).

인터뷰도 굉장히 오랜만이시죠.

사실 저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하고 싶어요. ‘이래서 연기를 이렇게 하고 작품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자랑도 하고 싶죠. 그런데 그보다는 관객들이 온전하게 자기 감상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의도로 이렇게 연기했습니다’ 하는 인터뷰를 보고 납득하기보단 사전 정보 없이 본 감상이 제일 정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라노>에서 프로듀서 겸 배우라는 독보적인 타이틀로 활약하고 계세요. 프로듀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데뷔 10주년 때 단독 콘서트를 하라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그땐 내가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티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부끄럽더라고요.


20주년이 됐을 땐 그래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공연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제가 데뷔했을 때 미국 유학을 잠깐 갔었는데, 거기서 프로듀서 공부를 했었거든요. 젊었을 때 꿈을 20주년을 맞이해서 실현해보자, 내 식대로 축하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처음 프로듀서 타이틀을 달고 올린 게 <시라노>예요.

프로듀서 데뷔작으로 <시라노>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작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시라노라는 인물이 저에게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 <맨오브라만차>랑 <두 도시 이야기>인데 그 작품 속 주인공들과 비슷한 면이 많거든요. 그런데 <맨오브라만차>의 돈키호테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라면, 시라노는 보다 주변에 있을 법한 인간적인 인물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아무도 모르는 슬픔이 있고, 코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콤플렉스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요.


그리고 음악도 너무 좋아요.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이 한국에서 굉장히 많이 공연이 됐지만, 전 그중에서도 <시라노> 같은 초기작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 너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 올리겠다는 프로듀서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프랭크에게 ‘내가 제작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다행히도 CJ ENM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초연을 무사히 올릴 수 있었죠. 이번에 재연을 하면서 <시라노>는 계속 올려야 하는 작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시라노> 재연이 초연과 달라진 부분이 많은데요. 재연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대본이에요. 원래 <시라노>란 작품이 뮤지컬인지 연극인지 모를 정도로 대사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초연 때도 일반 관객들이 듣기에 편하도록 많이 다듬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앙과 록산의 서사에 부족함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크리스티앙의 마지막 장면이 더 부각되도록 전쟁 장면도 추가하고, 록산도 보다 자주적인 캐릭터로 각색했어요. 공간감을 더하기 위해 회전무대와 영상도 써보았고요. 세 번째 공연이 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시즌을 거듭하며 점점 완성도를 높여가고 싶어요.

시라노 역으로 최재웅, 이규형, 조형균 배우가 새롭게 합류했어요.

제가 <지킬앤하이드> 초연을 할 때 우려가 많았어요. 제가 데뷔 초엔 줄곧 달달한 역할만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킬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이 달라졌죠. ‘얘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이번에 <시라노> 캐스팅을 할 때도 그런 의외의 캐스팅을 해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시라노를 꼭 전형적인 대극장 배우가 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있었고요.


그렇게 최재웅, 이규형, 조형균 배우가 합류했는데, 처음엔 걱정이 있었어요. 물론 다양한 역할을 지금까지 잘해왔던 배우들이지만 시라노는 또 다른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연습하는 걸 보니 걱정보단 기대감이 더 생기더라고요. 지금 세 배우가 해내는 걸 보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규형이는 워낙 재능이 많은 친구라서 정말 색다른 시라노를 보여주고 있어요. 디테일한 연기에서 ‘이렇게도 할 수 있네’ 하고 많이 배웠고요. 재웅이는 사람들이 이 친구를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진짜 재밌는 친구예요. <쓰릴미> 초연 때 같은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는데 또 다른 시라노를 보여줬죠.


형균이는 이렇게 하이텐션을 갖고 있는 배우는 처음 봤어요. 주변을 밝게 하는 좋은 에너지를 갖고 거기에 맞게끔 시라노를 연기하는데, 그게 너무 재밌었어요. 셋 다 <시라노>를 통해 또 다른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 기대되는 배우예요.

오디션 현장은 어땠나요? 초연 땐 아는 배우들이 너무 많아서 난처했던 적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도 친한 동료나 선배님들이 오디션장에 들어왔을 땐 펜을 내려놓거나 나가 있었어요. 같이 작품을 했던 배우가 자기를 심사하고 있다는 게 기분이 썩 좋지 않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도 오디션 과정엔 다 참가했죠. 저는 프로듀서가 당연히 오디션에 참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저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됐어요. 정말 잠깐 노래하러 온 건데 다들 준비를 정말 많이 하고 오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저도 어렸을 땐 오디션을 봤었는데, 그때의 간절함이 지금 나에게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죠.

이번 <시라노>는 24시간 라이브, 웹드라마 등 새로운 홍보·마케팅도 눈에 띄어요.

저도 처음 경험해보는 거예요. 초연 땐 홍보·마케팅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배우 입장에서 ‘그걸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만 했었거든요. 홍보팀에서 저 때문에 굉장히 힘드셨을 거예요. 이번엔 CJ ENM에 다 맡기고 한 번 해보자고 했어요. 웬만한 건 다 ‘OK’ 했죠. 해보니까 소소한 재미도 많더라고요. 웹툰, 웹드라마 같은 새로운 시도도 재밌었고. 24시간 라이브도 얼마나 힘든 일이에요. 그걸 보면서 라이브를 진행해준 안영수 대표에게도 고생했다고 문자를 했어요. 우리 홍보팀에게도 너무 고맙고.

이번엔 <시라노>로 라디오에도 나가셨잖아요.

박지연, 조형균 배우를 소개해주는 입장으로 나간 거예요. 저는 제가 라디오 같은 데 잘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말도 재밌게 하고 위트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스스로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예능 같은 건 생각도 못 하고요.

무대에서 봤을 땐 개그 욕심이 있으신 것 같던데요? 

있죠, 저도 기본적으론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어요. 이 정도 경력이 되면 코믹한 연기도 잘 해야 되고요. 재밌고 위트 있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해요. 저도 사람을 웃게 하는 연기에 욕심 있어요. 잘 안돼서 그렇지(웃음).


작년에 아버지가 되셨는데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결혼 전엔 정말 일만 했어요. 특별한 취미도 없고, 친한 사람도 많지 않고. 공연만 하고 되게 재미없게 살았죠. 공연이 1순위고 그것밖에 없으니까 점점 더 예민해지더라고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에만 파고들고.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1순위가 가정이 되면서 마음이 더 편해졌어요. 아이를 보면 세상이 행복하게 느껴지고요. 육아가 너무 힘들지만 그걸 상쇄할 만한 게 분명 있어요. 남을 더 잘 용서하게 되고 화도 덜 내게 된 것 같아요. 책임감도 생기고요.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자라나는 다른 아이들도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요. 그러려면 우리가 더 좋은 어른이 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성우 선배가 저희 공연장에서 연습을 해서 가끔 만나는데, 그분 아이가 저희 아이보다 하루 이틀 먼저 태어났거든요. 그러다 보니 대화 주제가 달라지는 거예요. 아이 얘기, 육아 정보 같은 얘기만 하고. 그러면서 ‘나도 아빠가 됐구나, 어른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기회에 따님 자랑 좀 해주세요.

이제 20개월 됐는데 엄청 건강해요. 저나 아내나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데 애가 너무 건강하게 태어나서 아이를 쫓아다니는 게 힘들 정도예요(웃음). 사실 자랑할 만한 건 말을 하기 시작해야 많아질 것 같고요. 그냥 이 아이 자체가 보물 같고 너무 예뻐요. 왜 아이를 낳으면 부모들이 팔불출이 되는지 알겠더라고요. 딸이라고 해서 공주님처럼 키우고 싶지는 않고요. 성별에 상관없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운동도 시키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어요.

앞으로 배우로서, 그리고 프로듀서로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프로듀서로서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내가 대한민국 일등 프로듀서가 되겠어, 본보기가 되겠어’ 이런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냥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극장 크기 가리지 않고 선보이고 싶어요.


일단은 <데블스 에드버킷>이란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키아누 리브스,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원작인데, 영화를 너무 재밌게 봤거든요. 이걸 뮤지컬화하고 싶어서 원작자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한 번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시라노> 때문에 많이 연기가 되었는데 빠르면 내후년쯤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과 대본은 다 나왔는데 더 발전시키기 위해 수정을 하고 있고요. <시라노> 끝나면 원작자를 만나러 미국에도 잠깐 갈 예정이에요. 그밖에 창작 작품도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물론 배우도 계속하고 싶어요. 너무 좋은 내 일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 하고 싶어요. 다만 프로듀싱을 하는 작품에서 배우까지 병행하는 일은 앞으론 없을 것 같고요. 전에는 일에만 몰두했는데, 50대에도 계속 배우 일을 즐겁게 하려면 연기 외에 다른 일에도 스스로를 열어놓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 다른 즐거운 일, 다른 꿈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어떤 일들이 있을까요?

인문학 공부도 다시 해보고 싶고요. 농사도 배우고 싶어요. 제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너무 좋아하는데 마침 전원생활을 시작했거든요. 집 주변이 다 논이라 저도 농사를 배워서 아이 먹거리를 직접 재배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건축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디자인이 제가 직접 설계하는 분들과 6개월 정도 회의를 하면서 정한 거거든요. 조만간 강아지를 키우려고 하는데 강아지 집을 한 번 멋들어지게 지어볼까 싶어요. 세계적인 강아지 집을 목표로(웃음).

단독 콘서트 계획은 없으신가요?

25주년, 30주년쯤 되면 절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로서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제 공연을 봐주신다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 값어치를 하기 위해 배우라면 관객을 정말 존중하고 몸 관리도 잘하고 사생활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30주년쯤 되면 지금보단 체력적으로 더 힘들고 노래도 못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젊은 친구들이 저를 보고 ‘저렇게 오랫동안 뮤지컬을 할 수 있구나, 뮤지컬만 해도 잘 살 수 있구나’ 느꼈으면 좋겠어요. 뮤지컬을 영화, 드라마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보는 시선들이 있잖아요. 뮤지컬만 한다고 해서 잘 안 풀린 건 아니라는 거, 뮤지컬이 좋다면 뮤지컬만 해도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시라노>를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아름다운 음악과 좋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연, 따뜻한 마음을 갖고 돌아가실 수 있는 공연이에요. 관객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공연하고 있으니까요. 꼭 오셔서 <시라노>에 공감해주시고 힐링 받아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올댓아트 이참슬, 조민정, ㈜RG, CJ ENM

뮤지컬 <시라노>
2019.08.10 ~ 2019.10.13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