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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가 가장 쉬웠던 그녀가 집착의 아이콘이 되기까지...베테랑 배우 길해연의 꿈

아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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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대본 받고 왜 나한테 이걸 하라는 거지, 궁금했어요. 감독님을 만나기 전까지 고민해보고, 만나자 마자 이유를 물었죠. 제가 생각한 답을 주시더라고요. 외로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그 순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30여 년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해온다는 건 보통의 열정과 재능으론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녀가 연극 <미저리>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일말의 기대감 같은 것이 들었다. 어쩌면 캐시 베이츠(동명의 영화 속 주인공)를 능가할 애니 윌크스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말이다.


마침내 마주한 무대에서 그녀는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쳤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에 사춘기 소녀처럼 행복해하다가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집착에 가까운 팬심을 보이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지난 해 국내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길해연의 얘기다.

출처그룹에이트
제일 잘 하는 것이 포기?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1987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에서 시작된 <미저리>는 유명 베스트셀러 소설가와 ‘자칭’ 넘버원 팬이 한 공간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1990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됐고 이후 2012년 윌리엄 골드먼이 각색해 무대에 올린 바 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 연기를 하다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어요(웃음). 사실 제가 인생관이 뭘 그렇게 아등바등 거려, 편히 살자, 예요. 농담처럼 제일 잘하는 게 포기라고도 말해요. 그런 마인드인데, 집착하고, 예민하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랬는데, 없긴 뭐가 없어(웃음). 그것도 다 제 착각이더라고요. 연기를 해올 수 있었던 힘, 그게 바로 집착이었어요. 돌아서서 왜 이것 밖에 못했을까, 그때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출처올댓아트 이참슬

다양한 변주 속에서도 섬뜩하고 엽기적인 행동으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애니 윌크스의 활약은 퇴색하지 않았다. 동시에 캐릭터가 공포감이 앞서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애니가 왜 폴과 폴의 작품에 집착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길해연은 그 숨겨진 사연을 찾아내는 것이 배우의 몫이라 생각했다.


저는 드러나는 데서 오는 두려움 보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악이나 광기가 더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극 중 애니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에요. 외딴 오두막에 살지만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여자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그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이 무대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번 무대에서는 애니의 감정 낙차, 집착의 이유들이 좀 더 드러나도록 집중하고 있어요.


세 명의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사실상 2인극에 가까운 무대다. 상대역인 폴의 김상중, 안재욱과의 호흡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바로 재미있다는 것.


배우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제 올랐던 무대도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해요. 내가 이렇게 했을 때 저 사람이 이렇게 할 것이다, 예측하면 그건 죽은 연기에요. 저는 늘 새로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그러다 보니 같은 신도 다르게 표현될 때가 있어요.


막 소리를 지르다가 저도 모르게 조금 더 화를 내는 날이 있는데, 그럼 상대 배우의 눈빛이 흔들려요. 왜 그래, 하는 둘만 아는 눈빛이 있죠(웃음). 긴장감 속에서 오가는 유희를 즐기고 있어요.”  

출처SBS, JTBC
'인간' 길해연과 '배우' 길해연의 경계

누군가에게는 다소 낯선 얼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길해연은 딸의 부정 입학을 청탁하던 역술인(드라마 ‘밀회’)부터 유준상을 보좌하던 내공의 양비서(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집안, 학벌, 능력을 동시에 갖춘 남자만 등장하면 앞 뒤 가릴 것 없이 밀어붙이는 엄마(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을 만나왔다.


동시에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돐날>, 영화 <마파도>, <똥파리> 등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변수가 많은 무대에서 갈고 닦은 내공은 장르나 역할을 불문하고 뿜어지는 연기력으로 표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일찍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선배들 중에선 연출가나 작가들은 다양한 도전을 해보는 것이 좋지만 배우는 좋은 역이 있을 때 무조건 올라가야 한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는데, 저는 그때도 반드시 성공해야지, 이런 마음이 없었어요. 생활이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그 약점이 강점이 돼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출처올댓아트 이참슬

때때로 열정은 ‘연기’가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끝에는 ‘연기’가 있었다.


이 동네를 떠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연기와 연결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작은 일이 주어져도 재미있게요. 한 번은 시 낭송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제가 오지랖이 좀 넓거든요(웃음).


그래서 그 작가의 책을 다 보고 갔죠. 그러다 보니 이야기할 것들이 많고, 사회까지 보게 됐어요. 그걸 본 누군가가 또 저에게 또 다른 일을 줬고, 그렇게 글도 쓰고, 교육도 하고, 그렇게 됐어요. 정말 세상일이 신기한 게 누군가는 다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종종 극 중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배우를 동일시 하곤 한다. 외모 혹은 드러난 몇 가지 단서만으로 그 배우를 규정하고 믿어버린다. 이는 그만큼 배우가 맡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는 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저 그렇게 소비해버리고픈 대중의 욕구이기도 하다. 주로 ‘센’ 캐릭터를 맡는 것이 억울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이게 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때문”이라며 웃었다. 다양한 캐릭터로 살지만 정작 그 속에 ‘자신’은 드러내기 힘든 직업이 바로 배우다.


예전의 나와 연극을 하면서 연기하면서 만난 사람들, 배역으로 만난 사람들과 등장인물들이 다 뒤섞여 있어서 이제는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규정지을 수 없는 거 같아요. 남이 보는 내가 더 맞을 수도 있겠죠. 인간은 자기 자신을 계속 왜곡 시키니까요.


혹자는 그랬다. 인생을 돌아보니 스무 살엔 궁금했고 서른엔 대충 이해됐으며 마흔엔 다 알았나 싶었는데 오십이 되니 다시 모르겠더라고. 길해연은 ‘나이듦’이 고맙다고 했다. 그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줘서. 모르고 지나갈 뻔 한 것들을 다시 한 번 되짚게 해줘서.


그동안 무대 위 여배우들의 역할은 한정적이었어요. 예쁜 여자이거나 엄마이거나, 아니면 시끄러운 동네 아주머니이거나(웃음). 20대엔 20대라서, 30대엔 30대라서 늘 애매했고, 극에도 깊게 관여를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정말 그 폭이 넓어지고 있잖아요.


역할도 시대상과 같이 간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검찰총장도 하고 사회생활도 더 많이 하고, 그 영향이 무대로까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점점 더 다양한 이야기, 인물이 나올 것이에요. 여배우들의 이야기가 풍부해 질 것이라 믿어요. 조급해 하지 말고 한 발씩 더 내딛다 보면. 저부터요.


인터뷰 말미 그녀는 “괜찮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때는 ‘훌륭한’ 사람을 꿈꿨지만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대로 사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녀같은 순수함과 중년의 노련함을 갖고 있는 그녀, 남은 공연 기간동안 더욱 깊어질 ‘길해연의 애니’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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