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되기 위해 머리 위에 책까지? 배우 '김소향'의 도전

조회수 2019. 8. 27.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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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대학로에서 태어나서 자랐거든요.
공연은 제 인생에서 너무 당연한 거였어요.
출처: 8월 24일 개막하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소향. | 올댓아트 이참슬

배우 김소향의 작품 활동을 연표 위에 점으로 찍는다면 빈틈없는 하나의 선으로 그려질 것이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 후 <렌트>의 미미 역, <아이다>의 아이다 역의 얼터(Alternate의 약어, 대역을 의미)를 거쳐 소극장 뮤지컬, 대극장 뮤지컬 무대를 가리지 않고 올랐고, 2012년에는 미국 브로드웨이로 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17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에서 메리 로버트 역으로 동양인 최초로 캐스팅돼 아시아 투어를 진행했고, 한국에서도 공연을 선보였다.


2019년에도 소극장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창작 초연 뮤지컬 <엑스칼리버>,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투란도트>까지 김소향의 발자국은 잉크가 마를 새 없이 계속해서 찍히는 중이다. 스스로 ‘살아있는 기네비어’라고 표현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그는 8월 4일 <엑스칼리버>의 무대를 마치고 또 한 번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타이틀롤 ‘마리 앙투아네트’ 역으로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프랑스 왕비로 다시 태어난다. 

출처: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김소향. | emk

재연에 새로 합류한 '마리 앙투아네트'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초연과 일본 공연을 둘 다 봤어요. 제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하게 되고 결심한 것은 비참한 상황에서도 우아함과 강인함을 잃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흘러도 닦아내지 않고 강인하게. 그 모습으로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내비치기보다는 왕비로서 끝까지 위엄과 강인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말 철이 없었다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왕족이어서 모르고 자란 사람이에요. 의도를 가지고 나쁜 일을 한 건 아니죠. 저는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지 않아요. 순수한 열다섯 소녀가 아무것도 모르는 프랑스로 시집을 와서 겪은 고통과 고난, 당당하게 자기의 선택을 따르고 책임을 지는 강인한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마리 앙투아네트와 배우 김소향은 어떤 점이 비슷한가요?

비굴하지 않은 것? (웃음). 약한 자와 강한 자를 나누어 대하지 않는 것이랄까요. 사실 저에게 약한 자, 강한 자가 있지는 않지만 내가 진실로 믿는 것 앞에서는 뜻을 쉽게 굽히지 않는 것은 진짜 비슷한 것 같아요. 마리 앙투아네트도 공주였지만 굉장히 성격이 깐깐했더라고요. 저도 그럴 때가 있어요. 한없이 해맑다가도 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정말 철벽을 칠 때가 있어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정말 다른 건, 전 정말 흙을 손으로 집으면서 놀던 대한민국의 한 소녀였어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훈련을 받고 매너가 생활인 공주였다는 점이 가장 다르겠죠, 아무래도. 그래서 제일 힘들었던 것도 행동과 말을 바꾸는 것이었어요. 연습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매일 책을 머리에 얹고 다녔어요. 이전에 했던 <엑스칼리버>에서는 활을 쏘고 뛰어다니는 역이어서 차분하게 누르기 위해 온갖 행동을 다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누가 불러서 돌아볼 때도 다 천천히 하는 훈련도 했어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출처: 올댓아트 이참슬

이번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투란도트>로 여우주연상을 받으셨어요. <엑스칼리버>와 시기도 겹쳐 대구와 서울을 오가면서 여러모로 기억에 남았을 것 같아요.

두 작품을 같이 한 게 제게는 큰 도전이었고 깨달음도 많이 얻었어요. 노래 스타일이 너무 다른 것을 했을 때 힘듦이 있는 것을 전에는 잘 몰랐다가 이번에 많이 깨달았어요. 배우로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배우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너에게서 그 역할을 봤다'라는 말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제게서 '새로운 투란도트를 봐서 좋았다', '기대했던 투란도트를 봐서 좋았다'라는 말을 들었고, 생애 첫 상을 안겨줬어요.


<엑스칼리버>는 캐스팅 과정에서 저는 물망에 없었는데 제가 쟁취한 역할이에요. 무엇보다 사랑했던 캐릭터였어요. 처음 들었을 때 여배우가 남자랑 무술을 하고 활을 쏜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캐스팅 물망에 없었고,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죠. 노래가 팝이어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에게 초반에는 혼도 많이 났어요. 제가 노래하면 대놓고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진짜 많이 울었는데 공연 개막한 날 프랭크가 저한테 "소피(김소향의 영어 이름)야 미안해. 나는 네가 이렇게 잘 해낼 줄 몰랐어. 내가 너를 잘 몰라봐서 미안해"라고 했어요. 지금은 베프가 됐어요. 어렵게 얻어내서 더 소중해요.

<마리 퀴리>, <투란도트>,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꾸준히 타이틀롤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엄청 영광스러운 일이에요. 여성이 타이틀롤인 극이 워낙 없는데 부족하지만 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해요. 원동력은 첫째는 제 열정인 것 같아요. 저는 힘이 안 들어요. 지쳐서 하기 싫다는 말이 입에서 안 나와요. 하기 싫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역할이 다 사랑스럽고, 저와의 공감대를 찾아내서 연결 짓는 끈을 만들어요. 그래서 다른 분들이 보기에도 "쟤는 저 역할을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또 창작을 워낙 좋아해서 밤이 새도록 눌러 앉아서 대본, 음악이랑 토론을 해요(웃음). 또 하나의 장점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극장과 소극장 작품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요. 소극장을 하고 대극장에 왔을 때 연출님이 많이 섬세해졌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런 게 장점이 되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요. 실컷 자랑해놓고서 감히라니(웃음).

출처: 올댓아트 이참슬

<마리 앙투아네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배우로서 목표가 있나요?

우아함?(웃음) 지금까지는 저에게 있는 걸로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어요. 이번에 작품을 하면서 강인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안 그랬으면 분명히 마그리드를 했을 거예요. 제 공연을 몇 번 보셨던 분들은 마그리드 역을 생각하셨을 수도 있어요. 이번에는 노래하는 스타일도 바꾸고 싶어요. 그동안은 시원한 샤우팅을 많이 보여드렸다면 이번에는 클래시컬한 보컬 사운드도 들려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참 도전을 많이 하는 배우인 것 같아요.

저는 사는 데 있어 도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미국에 간 것도 도전 때문이었어요. 머물러 있고 싶지 않고 자꾸 도전하고 싶었어요. 이번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하면 제게 큰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책을 머리에 얹고 돌아다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사람 안에 여러 가지 면이 있잖아요. 연습하면서 느낀 게 제 안에 마리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제가 마그리드를 했으면 은아나 연지배우처럼 못했을 것 같아요. 둘 다 너무 잘해요.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요?

미국은 나이를 아예 물어보지 못하게 돼있어요. 배우가 관리만 잘하면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죠. 저는 어린 역할, 여자 주인공 이런 것에 집착하지 않아요. <엑스칼리버>를 하고 싶었던 이유도 제가 피지컬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오디션을 본 거예요. 오히려 전 진지한 걸 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여자 주인공도 너무 좋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마리 앙투아네트>도 우리의 가치관, 목적, 정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에요. 자기 삶의 철학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공연이 될 거예요. 제가 잘 하는지 지켜봐 주세요(웃음).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2019.08.24 ~ 2019.11.17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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