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극찬한 정재일 음악감독은 누구?

조회수 2019. 8. 23.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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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출처: 네이버 영화
지구상에서 가장 섬세한 사람

봉준호 영화감독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작곡가 윤상도 "동생이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라 평했고, 가수 이적은 "천재인데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정재일 음악감독은 이렇게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극찬하는 '아티스트의 아티스트'였지만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했다. 하지만 그가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그의 천재성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출처: 경향DB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불렸던 정재일. 그는 세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열 살 때 기타를 잡고, 열두 살에 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중학교 때 이미 영화 OST 세션으로 일했고 19세 때는 한상원, 정원영 등 당대의 최고 아티스트들이 모인 밴드 '긱스'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연극, 무용, 국악, 재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어느덧 누구도 할 수 없는, 정재일만이 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이 구축됐다. '아티스트의 영감님' 두 번째 주인공, 정재일 음악감독에게 '영감'에 대해 물었다.

출처: KTV 방송 갈무리.

-영감을 주는 대상이 있나요?

"일단 저는 영감이라는 게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영감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해 본 적은 있어요. 사는 곳을 바꿔본다든지 아니면 다른 예술작품을 찾아서 본다든지… 그렇다고 영감이 얻어지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영감을 안 믿는 편이에요.


저는 순수예술가는 아니고 어쨌든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감이 오든 안 오든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순간들이 오죠.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걸 영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감, 데드라인이요. 많은 예술가들이 아마 그렇겠지만요."


-예술도 결국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뜻인가요?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노동자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렇고 어떤 규율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매혹당하는 편이에요. 물론 광기 넘치는 천재 예술가들을 보며 감동할 때도 있죠. 그러나 긴 세월 구도자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경도되는 편이에요.


사실 저는 그런 편은 못돼요. 저는 게을러지면 지구 끝까지 나태해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아마 더 규율을 갖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매혹당하는 것 같아요. 찰나에 번쩍하는 것들은 별로 안 믿는 편이에요. 계속 학습을 하고 생각을 해야 어떤 것들의 실마리가 잡히고 길어 올려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죠. 어쩌면 영감이라는 것도 그런 많은 것들이 시간을 두고 축적이 되면서 어느 순간 내 안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해요."


-'천재'에게 듣는 다소 의외의 대답입니다.

"저는 '음악이 인생의 전부야, 예술의 인생이 전부야'가 너무 아닌 사람이에요. 입금이 되니까 예술을 꼭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음악 외에도 중요한 삶의 부분들이 많거든요. 저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음악을 하는 거죠. '직업으로서의 예술'이요. 그래서 일을 하고, 일을 쉬고, 다음에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더 잘 쉬고... 그런 지점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변한 건가요?

“제 성향이 원래 그런 편이에요. 물론 10대 20대 때는 다들 그렇듯 저도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어요. 계속 주워 담던 시절이었죠. 모차르트, 에이미 와인하우스, 커트 코베인 같은 예술가들의 삶에 매혹됐던 때도 있고요.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처럼 예술을 성실히 꾸준히 하는 태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저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예술가 중에 아르보 페르트Arvo Part라는 에스토니아 작곡가가 있어요. 그분도 구도자적인 삶을 살고 계시죠. 제 성향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기도 하고요. '나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구나, 나는 평범한 예술가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출처: 경향DB

-‘평범한’이라는 표현은 너무 겸손한 말인 것 같습니다.

“겸손하지 않아요(웃음). 제가 재주는 많아요. 연주하는 걸 보여줄 정도가 되는 악기가 남들보다 많기는 해요.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장르와 협업도 해봤고요. 그런데 음악이기 때문에 협업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 지점에서 제가 과대평가된 것도 있고요.


천재라고 이야기들을 해주시면 감사하긴 한데, 저는 진짜, 너무 천재가 아니에요. 너무 아니라서요... 제가 아닌 걸 아니까요.” 


-많은 장르와 협업을 해왔는데, 협업은 사실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해 어려운 작업일 것 같아요.

“제가 작곡가로서 여러 장르를 하다 보니까 그 어떤 장르에서도 전문가 느낌이 없어요. 항상 초보자 같고 항상 긴장하고 그래요. ‘아 어떡하지’ 이런 막막한 느낌도 많이 받아요. 그래서 ‘학습’을 계속하려고 해요. 예컨대 제가 <옥자> 영화음악을 만들면, 아티스트 정재일의 음악보다는 봉준호 감독이 생각하는 <옥자>를 위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를 파악하고 화면이 나한테 주는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그래서 어려운 점은 있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저는 예술가는 자기 장르에서는 영감을 얻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 외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다고 보고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문학을 시작했는데, 그가 선대의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다른 예술 장르들이 저를 키워준다고 생각해요. 무용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인문학 책도 그래요. 다른 예술 분야를 제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음악을 더 잘 하기 위해 학습하기도 해요.”


-특히 무용을 좋아하시죠.

"2000년쯤에 서울에서 피나 바우쉬의 '넬켄(Nelken)'을 보고 몇 주를 넋이 나간 채로 살았던 기억이 있어요. 딱 한 찰나였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위대한 순간들을 몇 번 경험했는데, 종묘제례악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진도 씻김굿을 볼 때도 그랬고요. 압도적인 경험을 할 때가 몇 번 있어요. 그중에서도 피나 바우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폭풍 같았죠."



출처: 네이버 영화

-어떤 부분이 그렇게 압도적이었나요?

"피나 바우쉬 작품이 드라마가 있거나 내러티브가 있는 건 아니에요. '넬켄'에서는 여러 가지 미장센들이 펼쳐지다가 군무 비슷한 단순한 동작들이 반복되면서 끝나요. 여러 편린들이 마음속에 시나브로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산이 되어 솟아있는 광경을 목격했고 그 거대하고 깊은 아름다움에 오열하게 되었어요. 어떤 논리적인 드라마보다는 그냥 무의식적인 드라마, 클라이맥스를 만났던 것 같아요."

그는 무용극, 전통음악과의 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클럽 살로메'라는 첫 무용극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무용단 등과 협연을 했다. 국악과의 협연도 꾸준하다. 국악인 원일과 퓨전국악 밴드 푸리 멤버로도 활동했고 국악인 한승석과 함께 국악 크로스오버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풀버전] 액운을 떨쳐내는 행운의 노래, 정재일 '비나리'♪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감동을 얻지만 '폭풍 같은' '압도적인' 순간을 경험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남들보다 훨씬 섬세한 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제가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박효신 씨하고 작업을 해왔는데, 그의 팬들을 보면 그 열정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제가 피나 바우쉬의 공연을 보러 독일의 시골 마을을 찾아가는 것과는 오히려 비교도 안되는 열정이라고 생각해요.


열정이 있으면 거기에 헌신하는 마음은 다 가지고 있어요. 다만 저는 그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좀 지루하고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는 쪽에 열정을 쏟았던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세포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계를 하면서 살아요.


저는 좋은 예술을 소비하는 게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죽기 직전까지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살다 가고 싶어요."


-'아름다움을 느끼는 세포가 다치지 않기 위한 경계'에 대해서 좀 더 말씀해 주신다면요.

"일단 직업적인 면에서 봤을 때 제가 나이에 비해서 경력이 좀 길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떤 공식화된 태도들이 생길 수 있어요. 직업적으로 소위 '업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감수성, 심미안이 좁아지거나 닫히지 않고 넓어지고 더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해요.


저는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추함'이 아니라 '마비'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논어를 공부할 때 배우게 됐었는데요. 우리가 보통 '어질다'라고 알고 있는 한자 인(仁)이 한의학에서는 '씨앗'의 의미로 쓰이더라고요.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 인(仁)의 반대말인 불인(不仁)은 한의학에서 '마비'를 뜻한다고 해요. 


고대 그리스의 언어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요. esthesia는 감수성(esthetic)을 뜻하는데, 그와 반대되는 anesthesia는 '마비'를 의미해요. 씨앗은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는 어떤 가능태,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의미하는데, 동서양 모두 이 아름다움의 반대편에 '마비'를 놓은 거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바로 마비되지 않은 것, 살아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걸 그 때 깊게 새기게 됐어요. 저는 아직까지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펑펑 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다독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관심 있게 본 책이 있나요?

"제가 문학 작품에는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리처드 도킨스 책들, 진화생물학 책들을 즐겨 읽었어요. 최근에는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글을 처음 배우신 할머니들이 쓰신 책을 선물 받아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장민승 작가와 언젠가는 우리가 같이 시각화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자고 했던 작품이 있는데요.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에요. 문학작품임에도 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돼 있는 책인데요.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한 페이지라도 읽어요. 언젠가는 해보려고 해요."

그의 이력은 '천재'라는 잣대에 모자람이 없어 보이지만, 정재일 음악감독은 자신은 절대 천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학습' '좋은 예술의 소비' '꾸준함' 같은 예술을 대하는 어떤 태도에 대해 말한다. 기복 없는 그의 꾸준한 작업은 그가 그의 특별한 재능을 얼마나 잘 다뤄왔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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