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대, 일단 바라보세요

조회수 2019. 6. 28.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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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랑
출처: 픽사베이

오랜 세월 명화로 추앙받아 온

작품을 보러 왔습니다.

모두가 걸작, 위대한 명작이라 말하는데,

나는 별다른 감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현대미술은 그만의 난해한 형식에

도통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 감상을 내뱉기에 부끄러워

다시 한번 작품의 감동을

느낄만한 부분을

소심하게 찾아보지는 않나요?

출처: 픽사베이

아니!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라는데,

작품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 마음.


이럴 때면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공인된 렌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싶지 않나요?

출처: 바라캇 컨템포러리

그렇다면 오는 8월 4일까지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는 게리 흄(Gary Hume)의 <바라보기와 보기 Looking And Seeing> 전시를 방문하는 건 어떨까요?


게리 흄은 1980년대 후반 런던 골드스미스에서 수학한 yBA(young British Artist) 구성원입니다. yBA는 데미안 허스트, 줄리안 오피, 트레이시 에민, 사라 루카스 등 영국을 넘어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작가들이 대거 포진된 아티스트 그룹인데요.


전시의 제목에서 '바라보기 Looking'은 어떤 것을 보는 감각적인 행위이고, '보기 Seeing'은 바라보기와 더불어 대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보기 Seeing'가 고정관념이나 기존의 이해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면, '바라보기 Looking'은 감각에 방점을 찍고 진정성 있게 대상을 인지하는 것에 가깝죠.


'바라보기'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게이 흄은 '바라보기'만을 추구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바라볼 수 있어야 볼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바라볼 수 있다"는 일종의 연쇄적인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바라캇 컨템포러리

그래서 그의 작업은 바라보는 찰나의 감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오랜 시간 보기와 바라보기를 반복했던 과정의 결과물로 남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제>는 봄에 싹이 움트는 것을 보고 세 개의 줄기를 먼저 그렸지만, 이후의 작업이 떠오르지 않아 몇 년을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불꽃놀이를 보는 순간 영감을 얻어 나머지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바라캇 컨템포러리

반면 <파란 하늘들>은 황량한 미국 벌판의 간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에 세 개의 총알이 관통한 구멍이 있는 것을 보고 구멍을 통해 들여다본 파란 하늘, 그 찰나의 기억을 담은 작품입니다. 총알 자국이 재미있게도 미키마우스 형상이기도 하죠.

출처: 올댓아트 박송이

<바라보기와 보기>에서 '자아'는 또 다른 이면의 주제입니다. 게리 흄은 "제대로 보기 위해 의식적으로 자아를 지우려고 한다. 자아가 비워진 순간에 진짜 대상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아가 작품 안에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작가인데요.


작품에 고광택 페인트를 사용하는 것도 작가와 자아, 관람자와 자아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은유라고 합니다. 고광택 페인트는 빛을 반사시켜 관람자로 하여금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데요.


작품을 보려고 할 때마다 자신이 어른거리고,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은 작품을 관람하는 데 하나의 도전이 되기도 합니다.


위의 <빅 버트>는 작가의 자아가 비워진 순간을 그린 작품이라면, 아래의 <쇼파 위의 어머니>나 <피곤한 아이>는 자아를 애써 지우지 않은 예외적인 작품입니다.

출처: 올댓아트 박송이

작가인 게리 흄이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숨김없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인데요. 있는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기보다는 작가가 자신의 자아로 대상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작품들입니다.


<쇼파 위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불편한 모습을, <피곤한 아이>는 부모들과 함께 미술관에 온 아이들의 피곤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게리 흄은 자신의 작품을 "회화painting"라 부르지 않고, "그림 그리기picture making"라 부릅니다. '회화'라는 단어를 쓰면, 미술사의 어느 시점의 자신의 작업이 고정되는 것 같아 짓눌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가문의 족보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미술 사조라는 압도적인 틀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자유롭게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봐지길 바라는 작가의 전시 <바라보기와 보기>는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8월 4일까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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