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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을 만나다!... 그에게 '도시'란? 꿈과 희망이자 두려움

아트랑
아티션 작성일자2019.05.08. | 1,240  view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 위 인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동화들을 지은 안데르센입니다.


1805년 덴마크 왕국의 도시 오덴세에서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의 삶과 당시 덴마크의 사회상은 그대로 동화 속에 녹아들었는데요. 



안데르센의 삶과 덴마크의 모습을 재현해둔 전시가 관람객을 찾아왔습니다.


안데르센의 코펜하겐 입성 200주년을 기념하며 서울역사박물관과 덴마크 오덴세시립박물관이 준비한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전이 그 주인공인데요.

'북유럽 감성'은 '환상'이다?

요즘도 '북유럽'하면 떠오르는 도시 중 하나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일 텐데요. 코펜하겐과 조금 떨어져 있는 오덴세에서 태어난 안데르센 역시 코펜하겐에 대한 기대에 젖어있었다고 합니다.


극장을 사랑한 14세의 소년 안데르센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지만, 그가 마주한 코펜하겐은 혼란한 도시였다고 해요.

1819년 9월, 코펜하겐 반유대주의의 확산으로 코펜하겐 포그롬(유대인 학살)이 발발하고, 전쟁을 치르면서 덴마크는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한 번도 대도시에 가본 적이 없었던 소년 안데르센은 이 광경을 보고 '도시란 원래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곳'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고 말았죠. 

당시의 경험이 녹아든 안데르센의 첫 번째 동화가 바로 '부싯깃 통'(1835)입니다.


지방의 군인이 큰 꿈을 품고 대도시로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당시의 안데르센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었죠.


또한 가난한 군인이 도시에서 부자가 되어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소년 안데르센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삶'을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도시, 꿈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
그래서 양치기 소녀와 굴뚝 청소부는 굴뚝을 타고 올라 도망을 갔고,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하였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많은 지붕들이 촘촘하게 가득차 있는 도시가 내려다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넓은 세상을 본 적이 없던 양치기 소녀는 금방 겁을 먹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 양치기 소녀와 굴뚝 청소부(1845) 줄거리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굴뚝으로 탈출을 시도한 양치기 소녀와 굴뚝 청소부. 하지만 마주한 세상에서 이들이 든 감정은 바로 ' 두려움'이었습니다.

안데르센에게도 '도시'라는 공간은 꿈과 희망의 공간이자, 외면하고 싶은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양치기 소녀는 현실로 돌아가버렸지만, 안데르센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길을 선택하죠.

그 출발점이 바로 코펜하겐의 니하운(새로운 항구)였습니다. 니하운은 왕립 극장으로 통하는 길이자, 물을 좋아했던 안데르센이 물에 대한 동화를 쓰게 한 공간인데요.


바로 여기서 안데르센이 쓴 작품이 바로 '인어공주'(1837)입니다. 안데르센이 겪은 짝사랑의 경험을 '물'을 통해 전한 대표작이죠.

덴마크 르네상스
갈 곳이 없어 떠돌던 새끼 오리는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자기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으며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미운 오리 새끼 줄거리

동화 '미운 오리 새끼'는 고향 오덴세를 홀로 떠나 코펜하겐에 정착하며 겪은 안데르센의 고된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타고난 재능과 꿈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꽃을 피웠죠.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코펜하겐'이라는 장소 또한 안데르센에게는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됐습니다.

source :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과 모임을 갖은 안데르센

19세기 초, 경제적 위기를 맞은 덴마크는 오히려 문화를 장려하는 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베르텔 토르발센의 조각, 안데르센의 문학 등 활발한 문화 산업을 바탕으로 덴마크 '황금 시대'의 막을 열었고, 성공한 예술가들은 높은 계층으로 대접받았죠.


당시 부르주아 응접실은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으며,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거나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장소로서 역할을 하며 덴마크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source : 방문 카드와 받침대. 19세기 부르주아 응접실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한 손님은 방문 카드를 주인에게 주고 자신의 참석 여부를 알리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안데르센은 왕립 극장과 인접한 니하운에서 20년 넘게 거주했습니다. 니하운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한결같은 니하운의 물결과 정박해 있는 배가 보이는 니하운 풍경을 좋아했죠.


특히 간암으로 투병하던 시기(1871-1875)를 보냈던 곳이라 '오래된 병원'이라고 불렀던 니하운 18번지는 안데르센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그림, 책, 장식품들로 여전히 가득합니다.


이 모습을 좀 더 사실적으로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요. 실제 공간을 VR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source : 안데르센이 직접 그린 니하운 풍경

안데르센은 70세의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총 156편의 동화, 800여 편의 시, 50여 편의 극본, 7편의 소설, 6편의 여행기, 그리고 자서전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기억 속에 가물가물했던 동화 속 이야기가 마냥 '환상'이나 '희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새로이 보이게 될 텐데요.


고전이 된 동화들에 대한 또 다른 해석과 감상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 이 전시를 방문해야 할 이유일 것으로 보입니다.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

전시 기간 : 2019.04.26 ~ 2019.07.14

전시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입장료 : 무료

문의 : 02-724-0274~6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올댓아트 박찬미, pixabay, Mono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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