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장애인..선입견과 차별을 딛고 일어선 '헬렌 켈러' 이야기

조회수 2019. 4. 3.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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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4월 미국앨라배마 주에서 일어난 기적을 아시나요?

출처: 뮤지컬 <헬렌 앤 미> 공연 사진 | 극단 걸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7살 아이 헬렌 켈러가 '물(Water)'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된 것인데요. 삼중고를 겪고 있는 헬렌 켈러와 그에게 언어를 가르친 가정교사 앤 설리번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러나 언어를 깨우친 후 성인이 된 헬렌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출처: 뮤지컬 <헬렌 앤 미> 공연 사진 | 극단 걸판

극단 걸판의 창작 뮤지컬 <헬렌 앤 미(Helen Anne Me)>는 헬렌의 어린시절부터 50여 년을 동반자로 살아온 헬렌과 앤의 관계, 헬렌의 사회 운동을 왜곡 보도한 언론과의 갈등 등을 헬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극중극 형식으로 무대 위에 풀어냈습니다. 

출처: 어린 시절의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 위키피디아

유복한 집안의 셋째로 태어난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때 뇌척수염을 앓은 후 시각과 청각을 잃었습니다. 목소리는 나왔지만 시청각을 잃었기 때문에 언어를 학습할 수 없었죠. 헬렌의 부모는 수소문 끝에 시각장애인 교육으로 유명한 '퍼킨스 스쿨'에 가정교사를 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헬렌와 앤은 만나게 됩니다. 


삼중고를 갖고 있던 헬렌이 언어를 학습하자 세상의 주목이 뒤따랐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천재'라며 대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후원금도 들어왔지만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헬렌은 래드클리프 대학에 들어갔지만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이 없어 앤이 모든 강의를 따라다녀야 했고, 두 사람 모두 돈 관리에 소질이 없어 후원자들에게 의지하거나 그마저도 헬렌의 부모가 가로채기 일쑤였습니다. 헬렌은 생계를 위해 스스로 보드빌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헬렌 앤 미>는 바로 이 점에서 착안해 보드빌 무대에 선 헬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출처: 1898년 헬렌과 앤 | 위키피디아

각종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헬렌은 시청각 장애인 최초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29세에는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으며, 꾸준히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헬렌은 인종차별 문제, 장애인 대변, 여성 참정권 운동 등에 참여한 1세대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출처: 1920년 경의 헬렌 | 위키피디아

보수 언론은 이런 헬렌의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장애인이 스스로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그를 조종하는 배후가 있다고 음해하기까지 했죠. 앤과 헬렌의 관계를 깎아내리는 왜곡 보도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인 헬렌이 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거나, 반대로 앤이 헬렌의 하녀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헬렌과 앤은 모두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둘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50여년이나 지속된 이들의 복잡하고 깊은 우정을 평면적으로 폄훼한 것은 분명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이중의 선입견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겠죠.

출처: 앤 설리번 | 위키피디아

가족도 외면한 헬렌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것은 앤이었습니다. 헬렌은 생전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특히 20대에 쓴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50대에 쓴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 가장 유명한데요. "내게 기적이 일어나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사랑하는 앤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해 극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출처: 헬렌켈러의 초상화 | 위키피디아

극중 헬렌 켈러는 수많은 역경을 견디며 살아왔지만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부딪히고 넘어지며 얻은 모든 상처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기 떄문이죠. 헬렌은 그러니 내가 걷는 길 위에서 모든 돌부리를 치우려 하지 말라고, 상처는 그의 자부심이라고 노래합니다. 

출처: 뮤지컬 <헬렌 앤 미> 공연 사진 | 극단 걸판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하자"는 모토로 2005년 경기도 안산에서 시작된 극단 걸판의 뮤지컬 <헬렌 앤 미>는 수많은 돌부리 앞에 놓인 미(ME)들을 꾸밈없는 목소리로 위로합니다. 신이 버린 아이라고 불리우던 아이가 세상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운동가가 된 것처럼, 상처는 때로 아물면서 그 자리를 더 단단하게 해주기도 하니까요. 뮤지컬 <헬렌 앤 미>는 2019년 4월 7일까지 계속됩니다.

뮤지컬 <헬렌 앤 미>
2019.03.09 ~ 2019.04.07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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