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의 선구자인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의 시작!!!

조회수 2018. 11. 18.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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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래치에서 시작  

힙합의 선구자인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왓하이파이?’에 바이닐의 애매하고 희귀한 비트 연구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음악 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졌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랜드마스터 플래시가 우리에게 힙합 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연대 순으로 볼 때 항상 오해가 있어왔습니다”라고 


‘왓하이파이’에게 이야기하면서 “어디 에서 유래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을까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지금은 역사 강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 다. 이건 마치 피타고라스에게서 기하학을 습득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드럼 브레이크에 푹 빠져 있던 플래시는 작동 중인 2개의 턴테이블 사이에서 스위칭을 하는 자 신의 ‘퀵 믹스 이론’을 고안해냈다(몇 초 동안 샘플을 취득해 수십 분의 음악층으로 전환시켜 브 레이크 댄서들과 MC들의 캔버스가 되는 것이다). 

플래시는 ‘스크래칭’을 스튜디오로 가져왔는데, 이는 풋내기 DJ 시절에 플래시를 사사한 ‘그랜드 위저드시오도어’의 발명품으로 널리 알려진 테크닉이다. 하지만 그랜드마스터 플래시와 더 퓨리어스 파이브는 ‘The Message’를 통해 힙합을 사회적, 정치적 비판의 도구로 자리매김 시켰다.

하지만 힙합이 DJ의 음악이라면, 카세트나 CD로 그 역사를 가르쳐도 충분하다. 플래시의 라이브 쇼인 ‘Hip-hop: People, Places and Things’는 장르 탄생 지역의 영상과 지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을 수록한 음반을 선보이는 ‘오디오/비디오’ 발표 무대이다. 


플래시는 라이브 쇼에서 자신의 하이파이 키트, 요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와 진기한 드럼 브레이크를 발견했을 때의 황홀감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라이브 쇼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에게 힙합 문화의 시작을 설명하려고 하면, 대부분은 잘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이걸 사용해서 그걸 했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도 대체 무슨 말인가요?”라는 식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소개할 방식을 찾아 나섰고, 덕 분에 보면 저절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디오 촬영 팀을 데리고 뉴욕의 모든 구역을 다 녔습니다. 


그런 다음 푸티지를 편집했기 때문에 내가 특정 음악을 연주할 때는 이런저런 일이 발 생한 장소를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내가 비보이의 브레이크를 연주할 때는 브 롱스가 등장하는데, 바로 내가 퀵 믹스 이론을 구상한 장소입니다. 


그렇게 영상을 보면 장소를 알게 되고 상황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지요. 

DJ가 커팅하고 스크래칭하는 방식을 알고 싶다고요? 


오케이! 나라면 턴테이블에 카메라를 설치합니다. 그러면 40여 년 전에 내가 구상해낸 방식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레코드 위에서 손가락 끝을 어떻게 구사하는지, 그리고 바이닐 음반을 복제하는 방식 말입니다. 


나는 턴테이블 1 번에서 2번으로 진행한 다음, 약 10초 동안 짧은 드럼 솔로 일부를 잡아내서 당신이 보는 앞에서 그걸 루핑(반복)합니다. 


여러분이 이걸 알 아야 하는 이유는 이게 나중에 브레이크 댄서를 위한 음악이 될 뿐만 아니라 MC가 스토리 전개 를 해나가는 음악의 밑그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턴테이블을 하나의 악기로 둔갑시켰습 니다. 다른 포맷으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 끝을 원재료에 대고 그걸 컨트롤러로 사용하지 않으면 컷 앤 스크래치 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그걸 17살에 해냈고 그렇게 이 방식을 구현해낸 것이 죠. 현대 기술에서는 CD-J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그걸 복제해냅니다. 제 방식을 다른 형태로 구현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느 정도 의 세트를 결정하는지요? 그리고 관객의 리액션 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요? 예를 들면 지역 마다 선호하는 곡이 있지 않나요? 


나는 항상 즉흥적이고 기분에 좌우됩니다. 일종의 예측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처럼 경력이 오래된 연주자에게 그걸 예측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지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집에서는 음악을 폭넓게 청취하시나요? 


클래식을 듣습니다. 챔버 뮤직을 듣지요. 바흐와 스트라빈스키, 베토벤을 사랑합니다. 현악과 관악의 애호가입니다. 

내가 연주할 수 없는 것을 들으면,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영역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듣나요? 


뉴욕의 라디오 방송을 듣습니다. 저는 교통 체증 상황을 즐기는데, 그러면 집중해서 듣게 되거 든요. 어떤 날들은 “이거 정말 끝내주는구먼”이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영감을 내가 제작하 는 무엇인가에 삽입하기도 하고, 혹은 턴테이블에서 리듬으로 사용하죠

오리지널은 없고, 모든 일은 어딘가로부터 오 는 것입니다. 40년 넘게 이 분야에 몸담고 있다 보니, 내가 모두 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은 들어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친의 음반 컬렉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음악과 DJ에 입문한 동기라고 보아도 무방한지요? 


물론입니다. 내가 바이닐의 가치를 알게 된 계기 였습니다. 왜냐하면 어쩌다 바이닐을 손으로 만지면 수없이 엉덩이를 두드려 맞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자마자 음반장으로 가서 레코드를 꺼냈지요. 그러다 나이가 좀 들면서부터 과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이 작은 블랙 터널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괴짜 엔지니어가 되었지요. 누님의 라디오나 거실의 스테레오를 분해하면서 각종 전자 제품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내 소유의 턴테이블을 손에 쥐었을 때는, 마치 하늘에서 결혼식을 올린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내가 원한 것은 오직 드럼 솔로 파트였습니다. 레코드의 나머지 부분은 지긋지긋했지요. 그래서 10초 분량의 드럼솔로 파트를 10분으로 만들 방법을 궁리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는 브레이크 댄서들이 좋아할 음악의 밑 그림을 내가 이어 붙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이 되자 사람들이 떠들 어대기 시작하더군요. 당시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를 만큼 별것 아니었는데 지금은 엄청난 놈이 되었지요. 

“들어보세요. ‘10초 분량의 드럼 솔로 파트를 10분으로 
만들 수 있는가?’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시작은 별것 아니었는데 지금은 엄청나지요.” 

처음 구매한 음반은 무엇인가요? 


초기의 힙합은 공동체 같은 것이어서 내 파티 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친구들이었습니다. 


나는 친구들 엄마나 아빠에게 “혹시 음반장에 치워 버리고 싶은 레코드가 있나요?”라고 종종 물었고, 그러면 “그렇지 않아도 이걸 전부터 치워버리 고 싶었어”라는 식이었습니다.


나의 컬렉션은 그렇게 얻은 것들이었고, 처음 구매한 음반은 기억 못하지만, 그 전부터 산 것이 많았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음반 컬렉션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요?

 

힙합 문화는 DJ 주변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것 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쿨 허크, 아프리카 밤바 타 그리고 저까지 셋이서 서로에게는 없는 브레이크를 찾는 선의의 경쟁이었습니다. 


쾌감이 대단했지요. 예를 들면 허크가 아파치를 찾았을 때, 철통 보안을 하더군요.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앨범 커버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나도 밥 제임스의 ‘Mardi Gras’를 찾았을 때 똑같은 행동으로 되돌 려주었습니다. 

뒤가 음반 상자로 가득한 중고 가게로 소풍을 가서 그런 브레이크를 찾으려고 애쓰는 게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몇 개 찾게 되면, 몇 주 동 안은 왕초가 된 기분이 됩니다. 다른 녀석들은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알턱이 없으니까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많은 것을 찾아내지만, 아무도 갖지 못한 곡이 담긴 레코드를 찾는 것은 대단한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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