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노스가 옳았다

조회수 2020. 7. 16.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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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임팩트 맨 (2009)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겨 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 미국 허드슨 강에 돌고래가 돌아왔다고 캡틴 아메리카가 말한 장면을 기억하는가? 2019년 개봉한 슈퍼히어로 픽션에서나 상상했던 일들이 불과 일 년 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간의 활동이 멈추자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에선 물고기 떼가 돌아오고 사르데나 섬 항구에선 평소 안 보이던 돌고래가 목격됐다. 인도 동부해안에서는 예년에 오지 않던 바다거북이 수천 마리가 와 산란했다. 인적이 끊긴 칠레 산티아고 시내엔 퓨마가 돌아다니다 포획되고, 스페인 북부에서는 곰들이 밤거리에 출몰한다.


동물들만 이 놀라운 변화를 체감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 북부 펀자브주에서는 30년 만에 히말라야가 보인다.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델리에서도 별이 보일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다. 실제로 델리는 내가 〈인류세〉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미세먼지를 촬영하기 위해 방문한 곳이었는데, 그때 체류한 한 주 간 휴대폰 앱으로 측정한 AQI 대기 질 지수가 300~1000 정도였다. 한데 올 4월은 20도 안 된다고 한다. 만우절 농담 같은 소식이 믿기지 않아서 직접 가서 다시 측정하고 싶은데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돼 아쉬울 따름이다.

“대체 우리가 지구에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환경에 일도 관심이 없는 한 직장 선배가 대화 도중 꺼낸 말이다.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 같은 설정은 아니지만, 다른 비극적 이유로 세상이 강제로 멈추자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 다큐멘터리로 아무리 전달하려고 해도 잘 전달되지 않던 그것의 이름은 바로 ‘임팩트’. 우리가 이 행성에 끼치는 영향이다.


다큐멘터리 <노 임팩트 맨>은 마치 나의 선배처럼 환경에 별로 관심이 없던 뉴욕의 역사저술가 콜린 배번이 어느 날 앞으로 1년 동안 환경에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아내, 딸과 함께 실천에 나서는 내용이다. ‘뭐 별것 있겠어?’란 마음으로 쉽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전기 안 쓰기, 고기 안 먹기, 자동차 안 타기 등 생활의 큰 제약을 겪으며 난관에 부딪친다. 결국 ‘노 임팩트 맨’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 덕분에 그의 도전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좋은 환경다큐멘터리 한편이 만들어졌다.


‘나도 한번 해볼까?’


2010년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나 또한 콜린처럼 세상에 덜 영향을 주는 생활 방식으로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십 년 째 시도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일례로 이번 415총선이 그랬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치룬 국회의원 선거인 만큼 안전장치가 도입됐는데 그게 하필 일회용 비닐장갑이었다. 


전 국민이 플라스틱 장갑을 끼고 투표하는 진풍경 속에 굳이 나 혼자 플라스틱을 안 쓰려면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 다행히 페친들이 팁을 줘 집에서 개인 장갑을 챙겨간 덕분에 일회용 장갑 사용은 피했지만, 투표소에서 유별스러운 사람 취급받는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개인에겐 기껏해야 비닐장갑 한 장짜리 사소한 고민이지만, 투표로 인해 63빌딩 7개 높이의 일회용 장갑 폐기물이 쌓인다는 뉴스는 사회적으로 ‘임팩트’가 있다.     

5천만 명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77억 지구촌으로 시야를 넓히면 임팩트의 사이즈도 달라진다.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밤의 까만 지구는 환한 불빛으로 빛나는 구슬 같다. 얼핏 보면 아름다운 야경이지만, 우주선에서 보일 정도로 불야성으로 24시간 365일 77억 명이 만들어내는 임팩트는 엄청나다. 우주에서 살아가는 빌런 타노스의 눈에는 더 객관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행성은 지금의 인류를 감당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긴급 정지 버튼이 눌린 현재, 우리에겐 약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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