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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제3의 사나이(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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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말이 없죠.”


내 기억이 맞다면 〈제3의 사나이〉에는 이 대사가 두 번 나온다. 한번은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홀리 마틴스의 입을 통해, 그리고 다른 한번은 여자 주인공인 안나 슈미트의 입을 통해. 


그들이 지칭하는 ‘죽은 남자’는 같은 인물로, 홀리 마틴스의 “가장 좋은 친구”인 해리 라임이다. 해리의 장례식 직후 경찰로부터 해리가 사기꾼 혐의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안나를 찾아간 홀리가 “당신은 해리를 사랑하지 않았나요?” 라고 물었을 때, 안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내가 알고 있는 건, 나도 죽고 싶다는 것 뿐이에요.”

그러니까, 해리 라임은 그 둘-홀리 마틴스와 안나 슈미트의 지대한 사랑을 받으며 죽은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뒤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약간은 꺼려진다. 이 영화는 1949년에 만들어졌지만(제2차 세계대전 후의 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중에는 〈제3의 사나이〉를 본 사람보다는 못 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고, 그 말인즉슨 지금 쓰고자 하는 내용들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 글이 뭐 얼마나 영향력이 있다고 이런 걸 우려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겠지. 이를테면 내가 그토록 사랑했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사실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한 그의 실체가 사실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나에게 너무나 낯선 존재로 남아버리게 되는 그런 순간에 대해. 심지어는 그는 죽어버렸기 때문에 나를 왜 속였냐며 따질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끔씩 무엇이 정의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 선택들이 항상 옳을까? 안나는 자신이 빈에서 추방될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죽은 남자-한때는 사랑했고 그리고 이제는 비열한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진 바로 그 남자-를 위해서 자신의 여권을 포기한다. 그녀는 죽은 남자의 비열함을, 죄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나는 오히려 죽은 남자의 비열함을 뒤쫓으려고 하는, 그래서 죄값을 치르게 하려고 동분서주하는 홀리를 비열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그래, 이 영화에는 기묘한 뒤틀림의 순간들이 있다. 홀리가 어두운 밤, 폭격으로 부서진 도시를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도망을 갈 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긴박한 느낌을 주는게 아니라, 애상적이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줘서 슬며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경찰들이 잔뜩 긴장하고 숨어서 범인을 기다리고 있을 때, 위기감을 고조시키며 등장하는 위협적인 그림자는 풍선을 파는 할아버지의 것이다. 위협적으로 그를 태우고 미친듯이 달린 자동차가 도착한 곳은 문학 살롱이다. 심각하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은 해프닝들. 순간 순간 느낄 수밖에 없는 낙차들. 거기서 흘러나오는 어쩔 수 없는 웃음, 쓴 웃음 같은 것. 어쩌면 그게 바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기묘한 감각은 이 영화의 원작과 각본을 쓴 그레이엄 그린의 지분도 있을 것이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단편 전집의 소개글에 따르면 〈뉴욕타임스 북 리뷰〉는 그의 작품을 “’20세기’라는 장르의 최고 작가” 라고 표현했다는데,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적합한지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가장 기묘하고 이상한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만드는 작가. 그의 작품은 때로는 너무 기묘해서 슬프고 때로는 너무 이상해서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이 영화의 마지막 하수구 신은 (나는 영화를 잘 모르지만) 영화사에 남을 만한 추격신이 아닐까 싶다. 아마,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지상으로 난 작은 틈새 사이로 올라온 손가락들을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포일러도 자제하며 이 글을 쓴 보람이 있기를 바라며.


인물소개
  • by. 손보미 소설가
    2009년 〈21세기 문학〉,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 중편 〈우연의 신〉, 장편 〈디어 랄프로렌〉을 출간했죠. 망드를 즐겨보는 고독한 빵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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