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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천사, 시, 그리고 인간의 어떤 순간에 대해

베를린 천사의 시(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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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베를린, 천사, 시, 그리고 인간의 어떤 순간에 대해 


나는 작년 여름에 베를린에 머물렀다. 오래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닷새 정도였을 것이다. 베를린에 가기 전에는 튀빙겐이라는 작은 도시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그 도시에서 만난 튀빙겐 대학의 교수님-그는 베를린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독일인이었다-은 내게 베를린이 그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전의 베를린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의 정확한 의미도 알 수 없었다. 우리들 일행은 그때 이름도 알지 못하는 기차역에 떨구어져 있었다. 쏟아지는 여름의 햇빛, 철로 위로 아무렇게나 자라난 기다란 풀들. 


그가 갑자기 내게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순간적으로 그렇다고 말해버렸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궁금하다. 왜 나라는 인간은 이런 식으로 아무런 이득도 없는 거짓말을 하는 걸까?

빔 벤더슨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천사 다니엘은 인간이 되고 싶다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늘어놓는다. 힘든 일과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서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 통증을 느까는 것, 육체적인 쾌락을 느껴보는 것, 걸을 때마다 뼈를 의식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거짓말도 하고 싶고, 라고 천사 다니엘이 말할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천사 카시엘은 웃는다. 그들이 웃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안심한다. 무엇보다 그 거짓말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베를린 천사의 시⟩를 정말로 찾아 보게 되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아주 잠깐 머물렀던 그 도시-베를린을 떠올리고 있었다. 베를린에 머물던 내내 나는 느즈막히 나와서 점심을 먹고 밤늦게까지 도시 여기저기를 혼자서 돌아다녔다. 내가 머물던 호텔은 알렉산더 광장 근처였고 내가 있던 호텔방에서는 저 멀리 베를린 텔레비전탑이 보였다. 스푸트니크 위성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탑은 하늘을 향해 약간은 기묘한 느낌으로 우뚝 솟아있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호텔 근처에서 다시 그 탑을 마주하게 되면 어쩐지 나는 그 탑이 하루종일 나를 쫓아다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아니면 아마도 그건 베를린의 천사였을까?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습고 이치에 맞지도 않은 생각이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가 하루종일 내 곁에 머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린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부정적이거나 슬픈- 생각을 할 때마다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준 게 아닐까? 하고. 


영화에서 천사들은 관찰한 인간의 모습을 노트에 기록한다. 그들이 기록하는 건 사소한 것들이다. “한 여인이 비가 오는데 우산을 접고는 비를 흠뻑 맞았어.” “릴리엔탈가를 걷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인생의 허무를 느꼈어.” 천사들은 나에 대해 어떤 것들을 기록했을까? 그건 아마도 나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나는 잃어버리고 만 나의 순간들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저지른 실수는 거의 모든 게 그런 것에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자신의 순간을 놓쳐버린 것. 자신의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천사는 이런 것도 기록해두었다. “포츠담가에서 자살하려뎐 남자가 이별의 편지에 기념우표를 붙이고 마리안느 광장에서 미군과 영어로 대화했지.” 내가 베를린으로 오기 전, 튀빙겐의 이름모를 역에 우리가 떨구어졌을 때, 그-튀뷩겐 대학의 교수-가 내게 말하고 싶었던 건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포츠담 광장에 대한 것이었다. 


풀이 무성한 공허한 땅, 잊혀진 늙은 시인이 버려진 의자에 앉아 속삭이던 그 버려진 땅이 이제는 최첨단 구역으로 바뀐 것에 대해, 혹은 자신이 젊었던 시절, 베를린 국립도서관 3층에서 바라보던 장벽 너머의 세계 같은 것에 대해. 많은 것이 변해야 했고 변했지만, 어떤 것들은 (적어도 그가 느끼기엔) 퇴보하고만 도시에 대해.


폐허 위에 다시 세워진 것 같은 도시(실제로 이 도시의 어디를 가도 공사 중인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여전히 미완의 슬픔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도시. 그 도시를 배회하고 있는 천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인간이 놓친 순간들을 여전히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은 구원받은 기분이 든다. 그러므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 전 만들어진 이 영화에 대해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순식간에 우리를 천국과 천국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세계로 데려다주는 마술과 같은 영화라고.


인물소개
  • by. 손보미 소설가
    2009년 <21세기 문학>,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 중편 <우연의 신>, 장편 <디어 랄프로렌>을 출간했죠. 망드를 즐겨보는 고독한 빵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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