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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해 드릴까요?

조회수 2020. 6. 4.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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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11)

큰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날 때, 당장 위안이 필요한 사람이 바로 앞에 있을 때, 우리는 바보처럼 쭈뼛대며 하나마나 한 말을 늘어놓기 일쑤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위로의 기술 같은 것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종종 연륜으로 둔갑하기도 하는 주름살이나 나잇살과는 다르다. 문제는 터무니없게도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욕심이 난다는 것이다. 차라리 국회의원이나 건물주가 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그런데 이 어려운 걸 아주 능숙하게 해내는 소년이 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오스카’는 9.11 테러로 아빠를 잃은 후,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주말마다 집을 나선다. 뉴욕에 살고 있는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전부 찾아가 아빠가 남긴 정체불명의 열쇠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아주 똑똑하지만 꽤 까칠하고, 만사에 공포증이 심하던 오스카는 오로지 이 세상에 없는 아빠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간다. 

소년이 처음 찾아간 애비 블랙은 이혼 직전의 여성으로,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스카는 계단에 앉아 망연자실 눈물을 흘리는 애비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한다.


“키스해 드릴까요?” 


 애비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소년에게 당장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는데, 오스카가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만져준 것이다. 후에, 오스카는 몇 년 전 아버지를 잃었다는 애비의 남편에게도 “안아드릴까요?” 라는 말로 자신이 그의 슬픔에 동참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엄마에게 폭언을 퍼부을 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아들이기도 했지만, 갈등과 오해가 풀리자 오스카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말한다.


“아빠가 그랬어요. 엄마를 정말 사랑한단다. 참 좋은 여자야.”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아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가슴이 벅차 오른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자, 오스카는 엄마를 올려다본다.


“나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 자주 안하죠?” 


그냥 ‘사랑해요’가 아니라 ‘늘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요.’라는 의미가 담긴 이 표현 때문에, ‘아니 자주 해.’(=알고 있어)라는 엄마의 멋진 화답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사실, 이 영화에는 오스카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위로법이 들어있다. 오스카가 자해를 할 만큼 깊은 고통과 외로움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손자의 무모한 여정을 함께 하기로 한다. 오스카가 집을 나설 때부터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수첩을 정리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음을 할아버지는 알았던 것이다. 

뉴욕의 수많은 ‘블랙’씨와 가족들 또한 안아주고, 기도해주고, 악기를 연주해 주고, 그림을 그려주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스카의 아픔을 보듬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오스카에게는 뉴욕에 살고 있는 472명의 ‘블랙’씨들이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는 사실, 우리 사회에도 뿌리가 깊다. 오스카와 가족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넸던 위로의 방법들을 기억하며 나도 앞으로는 잘 써 먹어보리라.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슬픔과 아픔과 분노와 고통에 내가 결코 무관심 하지 않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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