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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조회수 2020. 5. 21.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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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도시 Z(2016)

지난주엔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야생 오랑우탄을 촬영했다. 지금은 호주 화재에서 살아남은 코알라를 찾아가는 중이다. 출장이든 개인 여행이든, 우리는 부지런히 길을 떠난다. 동기는 다양하다.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서, 새로운 체험이 좋아서 떠나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자꾸 밖으로 우리를 이끈다.


개인의 내면 깊숙이 숨은 그 비밀을 부지런히 캐묻는 감독이 제임스 그레이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로 향한다. <잃어버린 도시 Z>에서 지구 반대편 아마존 정글로 탐험을 떠나던 주인공이 최근작 <애드 아스트라>에선 태양계 반대편 해왕성까지 가서 답을 찾는다.

두 영화 속 주인공 모두 출중한 능력을 가진 남성 군인인데, 차이라면 <애드 아스트라>의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이 허구의 캐릭터인 것에 반해 <잃어버린 도시 Z>의 퍼시 포셋 소령은 실제 군인 출신 탐험가다. 위대한 탐험가 포셋의 삶을 쫒아가다 보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05년 영국군 교관으로 복무 중인 포셋은 갑작스러운 탐사를 명받는다. 당시 브라질과 볼리비아가 서로의 국경 결정을 인정 못 한다고 영국에 중재를 요청해온 상황인데, 제국주의의 선두주자 영국은 이 기회를 이용해 아마존에 진출하고자 지도 제작이라는 명목하에 군인을 파견한다. 검은 의도가 숨어있는 탐험 미션이었다. 국가의 황당한 지시에 포셋이 반발하자 영국 왕립지리학회 임원들은 포셋의 약점을 공략한다.


“우리는 소령의 선친을 알고 있네. 남자는 술과 도박에 빠지면 답이 없지. 하지만 탐사에 성공하면 인생이 달라질 걸세. 아주 크게.”

포셋이 아마존으로 향하게 된 첫 번째 동기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었다.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니고 연줄도 없던 그는 능력에 비해 박한 대우를 받던 처지였다. 박탈감이 큰 상황,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발을 들인 아마존은 조금씩 그를 바꿔놓는다.


당시 남미는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고무 농장의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농장주가 죄책감 없이 원주민을 학대하며 펼치는 논리는 백인은 우수하고 원주민은 미개하다는 것. 문명이 앞선 우등 민족이 열등한 인종을 착취하는 것은 괜찮다는 인식이 만연했다. 포셋은 아마존 상류로 올라가며 여러 원주민 부족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접하며 사고의 틀을 깨나간다. 여행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듯.

성공적으로 지도 제작 탐사를 마친 포셋은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자발적으로 다시 아마존 탐험에 나선다. 두 번째 동기는 사명감이다. 첫 탐사 말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한 그는 풍문으로만 돌던 ‘잃어버린 도시 Z’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진다. 그곳을 찾는다면, 새로운 진실을 발견한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한다. 1924년까지 포셋은 7차례 아마존에 갔다. 영화 속 점쟁이는 포셋의 사명감을 간파하고 말한다.


“당신이 찾으려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곳이에요. 광활한 땅, 보석을 걸친 사람들. 그곳을 찾기 전까진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해요. 그게 당신의 운명이에요. 그 운명으로 세상을 밝히게 될 거예요.”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아마존의 원시 부족은 외부인을 처음 만나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아마존 미지의 영역에 들어서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목숨을 건 탐사를 7번이나 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집착? 운명? 세 번째 탐험부터 동기는 불분명하다.

마지막 탐사를 앞두고 포셋은 앞선 아마존 탐험과 1차 세계 대전 참전을 같이하며 생사고락을 함께한 부관 헨리 코스틴을 찾아가 동행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잃어버린 도시 Z에 대해) 의심이 생긴 건가?”

“아니요. 하지만 대장이 찾던 해답들이 Z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가장 가까이에서 포셋을 관찰해온 코스틴의 말이 포셋의 숨은 동기를 짐작하게 한다. 우리 나이 59세에 포셋은 장남 잭과 함께 새 팀을 꾸려 다시 아마존을 향한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잃어버린 도시 Z를 찾았다는 소문과, 찾지 못하고 살해됐다는 이야기만 들려올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걸까.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는 이유는 내 안에 있다. 이 141분짜리 영화를 보면 심연 깊숙이 숨겨둔 그 이유가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잃어버린 도시 Z’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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