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죽은 날

조회수 2020. 5. 11. 14: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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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밤바(1987)



지난 1월,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 비보가 전해져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선수시절부터 헬기를 주로 이용했다던 그는 평소처럼 헬기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렇게 가장 일상적인 풍경에서 그의 삶은 툭 끊어져버렸다. 대체 뭘까. 삶이란. 운명이란. 정말 모르겠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많은 얼굴들이 스쳐간다.


죽음이 끝이라고는 하지만 때론 죽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럼 뭐해.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걸. 여러 가지 생각을 품은 채로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본다.

빠라라랄라밤바~


첫 소절만 들어도 흥이 나는 노래. 겨우 열일곱의 소년이 스페인어 노래를 무대 위에서 선보였을 때,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살아있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이 오직 8개월뿐이라는 것을. 곡 길이 3분도 채 안되는 이 노래가 로큰롤 역사에 슬프고도 강렬한 운명과 함께 이토록 오래 기억되리라는 것도.


가사를 몰라도 ‘라밤바'만 알면 대충 얼버무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이 노래의 원곡은 멕시코 민요로 주로 결혼식 축가에 많이 쓰이던 곡이다. 로큰롤 신예 스타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리치 밸런스는 우연히 이 곡을 듣고 로큰롤로 편곡해 발표한다. 사람들은 열광했고 그의 시대가 오는 듯 했다.


리치 밸런스(위 사진)와 영화 라밤바에서 리치 밸런스를 연기한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1959년 1월, 그는 로큰롤 스타 버디 홀리, 밥 포퍼와 함께 [윈터 댄스 파티]라는 타이틀로 투어를 떠난다. 투어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3주간 24개 지역을 도는 빡빡한 일정에다 혹한까지 겹쳐 버스 이동에 문제가 발생하고 멤버들의 컨디션까지 난조를 보이자 버디 홀리는 결국 비행기를 한 대 대여한다. 


조종석 포함 4인밖에 탑승할 수 없기에 버디 홀리와 빅포퍼, 남은 한 자리는 동전 던지기로 리치 밸런스가 차지하게 되고 다른 멤버와 공연 스탭들은 버스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 편하게 갈 수 있을거라는 기대로 올라탄 비행기는 이륙 얼마 후 추락, 전원 사망했다. 한꺼번에 유망한 음악가 세 명을 모두 잃어버린 1959년 2월 3일은 록음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날이 되었다.


사고 현장 사진.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이영화를 선택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고 직전 비행기 안의 상황이나 비행기 추락 장면도 영화 안에는 없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그의 노래만 흐를 뿐이다. 그저 오래도록 아프고 오래도록 기억할 날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현실이 그렇듯이.


〈라밤바〉는 그의 활동 기간에 많은 사랑을 받긴 했지만 ‘빌보드 차트 1위’의 기록은 사망 후 약 30 년이나 지난 87년의 일이다. 어떻게 30년 전 음악이 갑자기 차트 역주행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바로 이 영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영화 속 노래는 리치 벨런스의 목소리가 아닌 로스 로보스의 목소리였으나 모두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던 리치 밸런스를 깨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자신이 불렀던 노래가 살아있을 때 보다 더 널리 불리운다는 것은 슬픔일까, 영광일까.

영화를 본 후에 들어보면 좋을 또 한 곡의 노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Vincent〉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돈 맥클린의 〈American Pie〉다. 그들의 사망 당시 돈 맥클린은 가수를 꿈꾸며 신문 배달을 하던 가난한 어린 소년이었다. 동경하던 버디홀리의 사고 소식은 그에겐 무척 충격이었다. 


1971년 그는자그마치 8분이 넘는 이 곡과 함께 데뷔한다. 그들의 죽음과 60년대 미국에 대해 노래한 이 곡의 가사는 은유와 비유로 가득차 정확한 해석이 불분명하지만 그들이 사망한 날을 “The day Music died”라고 칭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사대로 1959년 2월3일을 음악이 죽은 날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어떤 삶은 이렇게 영화로, 음악으로 계속 우리 곁에 부활한다.


음악의 꿈을 막 펼치자마자 떠난 리치 밸런스. 신은 어째서 어떤 생명은 그리 길게 머물게 하고 어떤 생명은 미처 펴보지도 못한 채 떠나게 하는 걸까. 어릴 적 비행기 잔해에 친구를 잃은 그는 늘 비행기에 대한 공포에 시달렸다. 그런데 무리한 일정 때문이었을까. 그날 동전 던지기에서 이긴 그는 ‘내 평생 이겨본 게 처음이다'라고 말하며 좋아했다고한다. 어째서 그날만은 비행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걸까. 오. 삶이란. 운명이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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