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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국회'는 무슨!

제인, 구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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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국회’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 감정이 든다. 동물이 들으면 기분 나쁠 거 같아서 미안하고, 사실 우리도 동물인데 자꾸 잊고 살다가 저렇게 극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동물적 속성을 마구 드러내는 것을 보며 그 사실을 상기한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다.   


여기 인간의 정의를 바꾼 유인원이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지금보다 더 명확하던 1957년,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하던 그녀는 한 공고문을 본다.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야생 침팬지를 6개월 동안 관찰하고 기록할 연구원을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많은 지원자 중 그녀의 이력은 특출난 게 없었다. 

영국 여자.
26살.
현재 직업 비서.
학위 없음.

리키 박사는 경험도 없고 관련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그녀를 낙점했다. 백지장 같은 스펙이 오히려 선입견 없는 순수한 관찰로, 동물에 대한 열정이 성실한 연구로 이어질 거라는 동물적 직감이었다. 그렇게 제인은 탄자니아 곰베로 향했다. (*이 영화의 원제는 Jane이다)


당시 아프리카는 지금보다도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고 치안이 확보되지 않아 외국인 여자 홀로 정글에서 장기간 머문다는 게 상상이 안 되던 시기다. 게다가 다른 영장류를 잡아먹는 사나운 대형 유인원 침팬지 무리를 온종일 따라다녀야 한다니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인가! 제인은 동행으로 어머니만 데려갔을 뿐 현장에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검은 유인원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묘한 흰 유인원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본래 야생동물은 낯선 존재를 본능적으로 피한다. 방심하면 순식간에 잡아 먹히는 동물의 세계에서 처음 보는 큰 키의 호모 사피엔스는 기피 대상이었다. 

그래도 제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그들을 따라다녔다. 침팬지 입장에서도 매번 도망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니 자꾸 얼굴을 익혀 익숙해지면 받아줄 거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5개월이 지나자 효과가 나타났다. 제인이 이름 붙인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녀석이 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그와 친해지니 다른 무리도 그녀를 점차 받아줬다. 가까이서 보니 침팬지는 인간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각자 성격이 달랐고,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질투라는 감정을 느꼈다.   


어느 날,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나뭇가지를 흰개미 집에 집어넣고 뺀 뒤, 가지에 들러붙은 흰개미를 먹는 것을 발견했다. 짐승이 도구를 사용하다니! 자세히 보니 침팬지들은 계획적이었다. 흰개미 집 근처의 나뭇가지를 구해 좁은 개미집 입구에 넣기 좋게 가지의 입을 다 땐 후 사용하고 있었다. 이른바 ‘사물개조 행동’이다. 제인의 발견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1960년대 초반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정의 중 하나는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였다. 그것을 적용하면 침팬지는 인간이다. 아니면 인간의 정의를 바꿔야만 했다. 결국 제인이 탄자니아에서 쏘아 올린 공은 인간의 정의를 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바뀐 버전은 ‘도구를 쓰고, 불을 사용하며, 언어 생활을 하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야 할까? 이후 동물행동학이 발전하면서 유인원이 언어를 쓰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도 보고됐다. 그래서 인간의 정의는 계속 수정 중이다. ‘고차원의 도구를 쓰고, 불을 사용하며, 고차원의 언어생활을 하고 고차원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 이 정도는 해줘야 다른 동물들과 선을 그을 수 있다.

자꾸 구차하게 굴지 말고 쿨 하게 우리가 동물인 걸 인정하면 어떨까? 본래 인간은 유인원이다. 영장류에는 유인원과 원숭이만 존재하는데, 둘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꼬리의 유무다.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 퇴화했으면 유인원이다. 


인간은 꼬리가 없으니 유인원이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보노보, 기번(긴팔원숭이라고 이름이 잘못 붙여져 있다), 그리고 인간이 유인원이다. 당신의 엉덩이 밑 쪽을 더듬어봐라. 꼬리뼈가 만져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유인원이다.  


유인원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의 행동을 다른 유인원 제인 구달이 관찰해 인간의 정의를 바꿨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설명했는데도 누군가 당신을 동물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동물의 범주는 유인원보다 크고 훨씬 다양한 종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동물 대신 유인원이라는 말부터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동물 국회’ 말고 ‘유인원 국회’라고 바꿔 부르는 것도 인간과 비인간 유인원, 비인간 동물의 경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접근법일 수 있다. 


인물소개
  • by. 최평순 EBS PD
    환경·생태 전문 PD입니다.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원이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등 연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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