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현재적 목소리, 〈체르노빌〉

조회수 2020. 4. 3. 13: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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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2019)

심란해서 견딜 수가 없다. 드라마 〈체르노빌〉을 보는 내내 그렇다.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다. 해피엔딩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인물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안타깝다. 가지 마. 당신은 이제 죽는 거야.


  〈체르노빌〉은 제71회 에미상 시상식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10개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그럴만도 하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24분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에 대한 이 드라마는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인류 최악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아직까지는 체르노빌이 압도적으로 언급되지만, 그 이후 3.11 동일본대지진 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다시 한번 사고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라. 드라마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제2의 체르노빌 사고가 어딘가에서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한 국가들은 떠안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체르노빌〉의 압도하는 흡인력이라면 실제 벌어진 일을 누군가가 옆에서 보고 쓴 듯한 대본의 힘을 빼고 말할 수 없을텐데, 제작진은 생존자들의 믿을만한 증언집을 가지고 있었다. 2015년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적 재난을 겪어야 했던 벨라루스 사람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아냈는데, 책을 위해 10년에 걸쳐 100여명을 인터뷰했으나 검열 문제로 초판에서는 몇몇 인터뷰가 빠졌다(한국어판에서는 초판에 제외됐던 인터뷰에 더해 새로운 인터뷰가 추가되었다).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세계를 설명하는 말로 ‘목소리 소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인터뷰 중 길지 않은 특정 부분이 발췌되고 재구성되어 책에 실리는 방식인데, 이것이 ‘소설’인가의 문제(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맞는가 하는 질문)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개별적인 목소리가 담은 경험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동시에 그 목소리들을 한 권의 책으로 어떻게 묶을까를 결정해,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목소리를 독자가 듣게 하는 것이 알렉시예비치 문학의 묘미다.

그리고 드라마 〈체르노빌〉은 알렉시예비치의 노고에 힘입어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목소리들을 얻어낸 것이다. 〈체르노빌〉의 작가이자 제작자인 크레이그 메이진은 6월13일에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나는 역사적인 사실과 과학적인 정보를 여러 곳에서 얻었지만,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야 말로 내가 언제나 아름다움과 슬픔을 찾기 위해 눈을 두는 곳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쯤에서 알렉시예비치가 드라마를 봤을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으리라. 알렉시예비치는 자유유럽방송(RFE/RL)과의 인터뷰에서 제작 전에는 큰 기대가 없었으나 “정말 인상적이었다. 강력한 영화다. 현대의 양심을 건드리는 미학이 있다. 어느 정도의 공포가 있다. 또한 논리도 있다. 아름다움이 있다.”

알렉시예비치의 말은 내가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먼저 읽고 드라마 〈체르노빌〉을 접하며 느낀 바와 흡사한데, 사고 직후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을 끄기 위해서 혹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혹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부상자를 간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들이 무방비하게 죽음의 한복판으로 들어간 일들을, 망자를 기억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묵직함을 드라마는 잘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말하는 법을, 〈체르노빌〉은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알렉시예비치에 따르면 드라마 〈체르노빌〉이 벨라루스의 청년세대에 미친 영향은 이렇다. “많은 청년들이 이 작품을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클럽에서 함께 이 작품을 보고 토론한다.” 그리고 사건을 겪은 사람들 역시 비극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성취다.


 인간이 초래한 과거의 비극은 현재형으로 말해져야 한다. 그 목소리들만이 미래의 반복을 피하게 하리라. 드라마 〈체르노빌〉은 그러니,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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