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

조회수 2020. 2. 24. 15: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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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부도의 날 (2018)

아마 처음부터 그랬을 노릇인지도 모른다. 저임금, 저고가 정책. 국가는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다.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값싼 밥값이 필요했을 터.


전국이 온통 쌀농사만 지어대는 상태에서 쌀값을 통제하면 사람들은 먹고 살길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농촌에서 배출되는 젊은 인력은 도시로 몰려들고, 사회 계층은 자연스럽게 농민에서 노동자로 바뀌고 그렇게 형성된 노동자가 산업 발전의 역군이 된다.


1960년대에는 경공업 발전. 그렇게 싼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자본을 통해 1970년대 중화학 공업에 덤벼드니 딱히 수출 경쟁 상대가 없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성장, 또 성장! 1980년대 들어 탄탄한 중견 산업국가로 비상한다.


기가 막힌 국가 전략이고 대단한 성공이다? 전체로 보아서는 그렇다 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값싸게 흘러들어온 인력은 어떤 형태로 그들의 인생을 보상받았을까.


이 땅의 경제성장이란 한 편에서는 수출이지만 한 편에서는 인플레이션에 의존한 땅값 상승, 아파트값 상승으로 형성된 부인데 가난하게 시작해서, 값싼 일자리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의 삶에 막대해진 자본은 어떻게 나누어졌을까.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성장에 관한 담론은 생각보다 유치했고 지지부진했다. 잘했냐, 못했냐를 둘러싼 감정적인 공방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입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긍정과 부정의 극단이 만들어졌다. 어차피 결론이 정해져있던 논쟁을 한 셈이다.

그마나 의미 있게 얻어진 결실은 박정희 정권기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산업화의 성과나 산업구조에 관한 이해들일텐데 어차피 이것들은 전체를 이야기할 뿐 시대를 살아간 사람, 사람들, 계급과 계층에 대한 이해는 아닐 것이다.


대체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땅의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 기반한 조국근대화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은 1997년 외환위기를 다룬 작품이다. 흥행 성적이 아까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 무엇보다 문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통령과 고위 관료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껏해봤자 정치적 이슈 정도로 사태에 대응하려 한다.


헌신적인 관료들은 이러저러한 방안을 마련하면서 발 빠르게 움직이지만 국가 부도 상황을 잘 이용해서 한 몫 챙기려고 하는 이들, 이들에게 사전 정보를 팔아 관료 생활 이 후를 도모하려는 또다른 이들에 의해 치열한 싸움은 처절한 패배로 결론 나고 만다.

그래서 결과는? 막을 수 있었던, 조기에 대처가 가능했던 혹은 뒤늦었더라도 최소한으로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그 모든 시간과 과정이 붕괴된 후의 결과는 어땠을까. 싸움은 단번에 절대 다수의 평범한 국민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대기업과 종합금융회사의 연쇄적인 도산은 이들에게 대출과 어음으로 의존했던, 아니 이들에 의해 대출과 어음에 메였던 수많은 중소기업의 도산으로 이어진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몰락은 수많은 회사 직원, 직원들의 가족, 동네 시장부터 대학가 커피숍까지 구속구석 대다수의 삶에 들러붙어 그들의 현재와 미래와 가족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만다.

그런데! 이 엄청난 파국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어마어마한 사태에서 대한민국의 상층부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제의 진원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성장에서 별다른 득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가혹한 고통에 신음할 때 문제의 지원과 가까운 곳에서, 지난 수십년간 성장의 열매를 따박따박 따먹었던 사람들은 이 시기 어떤 형식으로 고통을 짊어졌을까.


영화는 손짓하고 있다. 이 때를 들여다보라고, 이 고통의 현장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어쩌면 그 때 그 사건은 그 이 전의 대한민국, 그 이 후의 대한민국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더! 외환위기는 통상 IMF로 불린다. 국제 통화 기금을 앞세운 미국이 난장판에 뛰어들어 온통 휘저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고전적인 주제이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이 만들었고 1997년 한 번 더 미국이 만들었으니 반미든, 친미든 미국을 들여다보지 않고 우리를 말할 수는 없지 않을련가.


영화를 보자, 영화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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