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슈퍼스타가 못 됐는지, 저도 모르겠네요

조회수 2020. 1. 21. 14: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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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로부터 스무발자국(2013)

백업 보컬리스트라는 직업이 있다. 평생을 무대에 오르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직업. 수많은 음악에 내 목소리가 있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직업. 다큐멘터리 〈스타로부터 스무발자국〉은 바로 이 백업 보컬리스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업 가수는
필요할 때 들어와서
소리를 멋지게 만들어 줘요.

칭찬도 거의 못 받고
서둘러 집에 가죠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록앨범에서 영향을 주었죠

메리 클레이튼, 리사 피셔, 주디스 힐, 린 메이브리, 클라우디아 레니어, 달린 러브. 아마 여러분에게 익숙하지 않을 이 이름들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 즉, 백업 보컬리스트들이다.


예전엔 백업 보컬이 무대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초창기 백업 보컬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그들이 잘 차려입은 옷차림과 반듯하게 정리된 헤어스타일로 단정하고 우아하게 무대를 채우고 악보를 보고 정확한 음정을 내는 것을 중시했다.


반면 흑인 보컬리스트들은 대부분 악보로 음악을 익히지 않았다. 듣고 느끼고 부르는 식이었으니 접근 방식이 달랐고 로큰롤의 자유분방한 면과 잘 맞물려 완벽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두 스타일 모두 각기의 매력을 갖고 있다. 그 시대의 자료들을 보다 보면 정말 매력적인 백업 보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기본적인 보컬 능력은 물론이고 무대 매너와 춤 실력, 매력적인 외모까지 겸비한, 잊히기에는 아까운 사람들이 무대를 채워주고 있으니 신은 인류에게 부어줄 음악적 재능을 그 시기에 실수로 몰아 부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백업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무대에 섰던 스타 뮤지션들이나 관계자들조차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음악 외 요소로 여긴 사람들도 많았다. 옷차림이나 동작을 주문하고 공정한 공연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일상이었다.

[백업 보컬의 역량을 보여주는 영화 속 라이브 영상]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실력으로 명성을 쌓고 이름있는 밴드의 백보컬로 활동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무대 위 조연이 주연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너무 높았다. 물론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루더 밴드로스, 셰릴 크로우 등 백업 보컬로 시작해 스타가 된 사람들도 있다.

[데이빗 보위의 백업 보컬 시절의 루더 밴드로스]

하지만 그 자리에 가게 된다는 것은 로또나 다름없다. 그것은 한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따라와야 한다. 운이나 연이나 노래 외의 비즈니스적인 요소 등등 복합적인 것들.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의 사연만 봐도 그렇다. 티나 터너와 롤링스톤즈의 백업 보컬로 활동하던 클라우디아 레니어는 롤링스톤즈의 전설적인 히트곡 Brown sugar의 모티브가 될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생활고 문제로 음악을 내려 놓고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반면, 어렵게 커리어를 완성한 경우도 있다. 백업 보컬리스트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달린 러브는 오랜 백업 보컬 생활 끝 마침내 솔로 발매를 위해 앨범을 녹음했건만 제작자였던 필스펙터가 그녀의 음악을 다른 립싱크 그룹의 앨범으로 둔갑 시켜 발매해 버린 파렴치한 일도 겪어야 했고 이후로도 계약 문제로 고통을 겪다 끝내는 음악을 그만두고 청소부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마스날, 욕실을 청소하다가 라디오에서 자신이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고 2011년 마침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 실력과 별개의 문제들이 그녀의 음악 인생을 돌고 돌게 만든 것이다.

유명해지려면
뭐든 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노래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특별한 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요.

저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물론, 백업 보컬리스트 중에도 최고의 스타가 되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노래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애초에 백업 보컬을 본인 커리어의 연습 작업으로 생각한 메리 클레이튼은 주변 사람들에게 칭송받으며 본인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모두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반면, 리사 피셔는 유명세보다 노래 자체가 좋다고 했었지만 결국 솔로로 월드 투어를 돌며 꽤나 성공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내한 공연도 있었다.)


이런 사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세상사 내맘대로 안 돼서 똑같은 실력인데도 누구는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고 누구는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다 한들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내 힘으로 안 되는 걸. 너무 패배론적, 운명론적인 이야기인가.

백업 가수가 있으면
훨씬 생기가 넘쳐요.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노래가 살아나죠.

그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거예요.

개인의 목소리를
굳이 고수하진 않아요.

자기 목소리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섞여서 어울리게 하니까요.

멋진 일이죠.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 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지점은 안타깝다. 하지만 조금 초점을 바꿔보자.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보다 그냥 그 자체로 멋진 일을 해냈다는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정상을 찍기 위해 달리는 삶만큼 천천히 둘러 둘러 평지를 만끽하는 삶도 있는 일이니까. 눈에 띄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하더라도 그들이 완성한 무대는 이미 멋진 순간으로 기록됐다.

스스로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본 사람들은 타인의 노력을 등급 매겨 평가하기보다 ‘존중’해 줄 거라고 믿는다.


소위 말하는 최고가 아니어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 그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가치. 그 가치를 서로가 인정해 줄 수 있다면 말이다.


이것은 음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의 수많은 조연을 존중하는 시선이 많아진다면, 보이지 않지만 정수를 이루고 있는 세상 여기저기의 중요한 것들이 더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벌판 위에서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진다. 모르는 사이 피고 져버리는 꽃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도 세상에 꽃이 있어서 아름답다는 것을 다른 어디선가는 느낀다. 아무도 보지 않음에도 아름답게 자라는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 지금 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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