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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지만,씩씩하게

녹색 광선(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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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서 조금 쓸쓸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난 뭔가를 믿어, 내 인생에 무엇이 다가오길.”


모두들 휴가를 떠날 계획으로 들떠 있는 여름의 파리, 갑작스럽게 -장거리 연애중인-남자친구로부터 함께 휴가를 떠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델핀은 친구들에게 말한다. 자신에게는 개인적인 미신이 있다고. 녹색과 관련이 되어 있는 미신. 


녹색 옷을 입고 가던 그녀는 길을 가다가 녹색 카드를 주은 적이 있다. 그녀는 녹색이 자신에게 좋은 의미이리라고 믿고 있다. 델핀이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초록색 풀과 꽃과 작은 나무들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정원의 테이블에서 피크닉 중이다. 하지만 피크닉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다. 


혼자 휴가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울적해하지만, 함께 휴가를 가자는 가족의 요청을 거절하고, 휴가를 함께 떠날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하는 델핀 때문에 친구는 답답해한다. 델핀은 말한다. “넌 날 모를거야. 넌 날 모른다고.”결국 델핀은 울음을 터트린다. 

어쨌든 델핀도 시도를 하긴 한다. 이 영화가 진행되는 한달하고도 이틀동안 그녀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떠나본다. 그녀가 머무른 장소들은 하나같이 꿈처럼 아름답지만 델핀은 언제나 그곳들이 자신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며 여러분은 어쩌면 델핀의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델핀, 대체 너가 원하는 게 뭔데?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하지만 찬찬히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델핀의 표정과 손짓과 몸짓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델핀에게 가슴 깊이 공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 첫번째 휴가지에서 - 그녀는 친구를 따라서, 친구의 가족들과 해안가의 아름다운 마을에 머문다- 그녀는 어느 바람이 많이 부는 흐린 날, 혼자 해안가 숲길을 산책한다. 충분히 만족한 것처럼 보이던 델핀은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춘다.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은 갑자기 바뀌고, 그녀는 울음을 터트린다. 그 때 그녀를 감싸고 있는 건, 녹색의 풀과 나무들이다.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광폭하고 야만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자연. 


갑자기 터져나오는 울음. 


그러니까,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지독하게 쓸쓸한 예감. 그러한 것.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 다가오리라고 믿는 무언가는 자신을 쓸쓸하게 만들지 않을, 그러한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녀는 진짜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그건 그녀가 대책없는 로맨티스트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용감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이다. 


진짜 마음이 없이,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러니까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으로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 대신, 그녀는 차라리 혼자가 되는 것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인 그녀는 연약하고 쓸쓸하고 때때로 끝도 없이 슬퍼지지만 그렇게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 그녀는 다시 한번 더 녹색을 발견한다.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녹색. 델핀은 울다가 웃는다. 혹은, 웃다가 운다. 가장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짓고서. 그 때 그녀의 옆에는 우연히 만난 남자가 있다. 하지만 나는 델핀이 그 남자와 함께 남은 휴가를 보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델핀은 다시 파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혼자서 말이다. 그리고 남은 휴가를 보냈을 것이다. 여전히 혼자여서 조금은 쓸쓸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때때로 울음을 좀 터트리면 어떤가?
때때로 좀 쓸쓸해지고 슬퍼지면 어떤가?
내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몰라주면 좀 어떠한가?
외톨이면 또 어떤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녹색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내 인생에 불쑥 나타나서 손을 흔들어 줄텐데. 그런 순간이 언젠가 두번쯤은 또 올텐데.


사족 : 이 영화의 제목인 “녹색 광선”은 수평선에서 태양이 질 때 언뜻 보이는 녹색의 광선을 말한다. 또한 -영화 안에서 소개되듯이-쥘 베르의 동명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녹색 광선이 인용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전설에 따르면 녹색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 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광선이 나타나면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일단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녹색광선, 지금 보러 갈까요?

인물소개
  • by. 손보미 소설가
    2009년 〈21세기 문학〉,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단편집 〈그들에게 린디합을〉, 〈우아한 밤과 고양이〉, 중편 〈우연의 신〉, 장편 〈디어 랄프로렌〉을 출간했죠. 망드를 즐겨보는 고독한 빵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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