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봐야만 한다, 〈아키라〉

조회수 2019. 11. 8. 13: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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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1988)

한일 관계가 엉망진창이고 아베발 경제 보복으로 반일 감정이 극도에 이른 이 때, 사실 우리는 일본에 관하여 잘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일본인은 언제나 3명. 


토요토미 히데요시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현직 총리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좀 더 덧붙인다면 기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조 히데키, 기시 노부스케 정도일 것이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고, 좋건 싫건 가장 가까이에 붙어 있는 나라이며, 국제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에 대해 우리는 왜 이토록 무지한 걸까.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아키라〉. 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붙는 수식어는 참으로 화려하다. ‘일본의 만화 영화는 아키라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세계 SF영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작품’ 등등. 


작품이 주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독특한 긴장감, 전개를 예상하기 힘들고 호사가들이 끝없이 뒷담화를 이어가기에 딱 좋은 작품. 지금 보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작이리라.

모든 작품은 그 자체로 세계관을, 문화를, 무의식을 담지하고 있다. 관객은 본인의 관심과 기준으로 작품을 해독 할 텐데 역사가의 눈,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연구자의 눈에는 어떤 것이 더욱 특별해 보일까.


3차 세계 대전과 파괴된 일본. 썩은 정치인들, 그들에 환멸을 느끼며 남아있는 세상을 지키려는 군인 지도자. 주류 질서를 반대하는 연약한 데모대. 그들의 저항은 민주주의적 열정과 종교적 예언 어느 지점에 묘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지하 조직. 아나키스트 정도쯤으로 추정되는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다.


어찌보면 뻔한 설정. 더구나 일본 에니메이션에서는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구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이 구조는 반복될까. 왜 전쟁과 참화라는 전제는 계속되고, 국가 지도자들은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으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은 가장 오른쪽에 있는 군인들과 가장 왼쪽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일까. 다수 대중은 이다지도 무력하기만 할까.

1920년대 다이쇼 데모크라시. 일본 민주주의의 첫 번째 개화기는 곧장 강렬한 반발에 직면한다. 민간에서는 극우파가 들끓기 시작했고 기타 잇키(北一輝)를 비롯한 우익 사상가들이 대거 배출된다. 일본의 근대화는 위기를 겪고 있다.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은 부패했고 자본주의는 일본의 청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을 뿐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결집해서 썩은 세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1931년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의 세계전쟁론에 영향을 받은 일본 군부는 내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만주사변을 일으켜서 대륙 침략의 서막을 연다. 1차 세계대전 이 후 반드시 세계 최종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마지막 전쟁은 일본과 미국 혹은 일본과 소련의 싸움이 될 것이니 그 전에 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러니 만주를! 만주 다음에는 중국을! 중국 다음에는 동남아시아를! 동남아시아 다음에는 인도 혹은 호주를!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미국에게 패배했고 전후 일본의 역사는 극우파 군국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1960년대는 일본 민주주의의 두 번째 전성기. 그들은 갈수록 보수화되는 일본 정치와 담판을 벌이고자 한다. 


기시 노부스케의 안보조약 개정을 막기 위해 도쿄 의사당에는 34만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고 이 후 정말로 안보조약이 개정될 때도 15만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자민당 중심의 보수 정치는 공고했고 결국 일본에서는 적군파가 등장한다. 시민과 호흡하는 민주주의가 아닌 조직을 결성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차별 테러를 일삼는, 조직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동료로 살해하는 지극히 고립된 극단주의 투쟁.

참으로 많은 것들이 〈아키라〉의 구성과 닮아있지 않은가. 아니면 〈아키라〉가 일본 근현대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키라〉의 시대 배경은 공교롭게도 2019년. 이제 에니메이션을 통해 일본 근현대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아키라, 지금 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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