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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남기는 것, 아이언맨

조회수 2019. 10. 16. 14: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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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2008)

마블의 10년 대서사가 막을 내렸습니다. 그 출발인 아이언맨. 음습한 동굴에서 탄생한 깡통 로봇 '마크 1'과 첫 완성작 '마크 2'의 데뷔전은 아직까지도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이언맨의 탄생은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가 겪은 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로봇’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만약 영화 속의 제삼자라면,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인 것을 모르는 우리에게 그의 소식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부족한 것 없어 보이던 한 남자의 피랍 사건, 그 이후로 나타나는 괴이한 행태는 어떤 단서가 될까요. 그가 겪은 사건을 1인칭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에게 일어난 사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성공적인 계약 후 돌아가던 수송 차량 안,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선두에 있던 차량이 뜨거운 열기를 뿜으며 폭발한다. 놀란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총성이 차체를 뚫었다. 함께 있던 군인들은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몸을 흔들며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내 농담에 어색한 미소로 답하던 사병도 유리창을 피로 뒤덮는다. 두렵다. 아니, 그런 감정조차 느끼기 힘들 만큼 짧고 강렬한 순간이 이어졌다.


이성을 움켜쥐고 바위 뒤로 몸을 던졌다. 호흡을 고르던 찰나에 포탄 하나가 무심히 날아든다. 굉음이 들렸고 하늘이 구르기 시작했다. 강렬한 태양이 눈앞을 바삐 지나간다. 등에 땅이 와 닿는다.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불현듯 낯설고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끓고 있는 쇳물이 가슴 어딘가로 쏟아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고통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며 처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불쾌감이었다. 그 아련했던 기분은 이내 통증으로 변했다. 그것은 가슴에서 오고 있었다. 통증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 건 새하얀 병원 벽지와 나를 응시하는 지인들이 아니었다. 가슴에 박혀있는 전자석을 차량용 배터리에 연결한 채 어느 동굴에 피랍되어 있었다. 테러 단체의 무기 제작을 위해 계획적으로 납치된 것이다.


내가 하던 일의 실체에 직면해야 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닌, 그저 죽이는 수단에 불과한 것들. 이 손끝에서 탄생한 무기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살점을 흩뿌렸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사건 후의 모습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온 남자, 그의 트라우마는 이후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세간을 통해 들리는 소식을 통해 그에게 나타나는 사후 증상을 유추해보겠습니다.

 

미국의 영웅, 군수 산업을 포기하다.

증상 1. 사건과 유사하거나 상징적인 단서에 대한 심리적 고통 및 경계


그가 미국에 발을 딛고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은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군수분야의 생산 중단을 선언합니다 그의 독단적인 결정이 미국의 사회 및 경제적으로, 그리고 관련 분야에 관련된 이들의 삶에 미치게 될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언론은 그를 향한 우려와 규탄의 목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네요.

 

더 이상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증상 2. 현실과의 연결 고리 단절


기자 회견 이후 그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저택 지하실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으며, 어떤 방문객도 만나주지 않습니다. 모든 사회적 활동이 정지된 상태. 마치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지하실의 얇은 유리벽으로 단절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주위 지인들의 독려와 충고에도 그의 유리벽은 열리지 않죠.


그의 지하실이 궁금하다.

증상 3. 외상과 연관되는 자극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곳에 몰두


그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들려오는 풍문에 의하면 무슨 로봇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요. 군수 산업을 주도하던 그가 로봇을 만들다니, 자신의 전공인 기계공학에 몰두하고 있나 봅니다.


사이코 과학자

증상 4. 현실 검증력 약화

“나는 아이언맨입니다.”


스타크 공업 건물의 폭발 사고에 대한 해명 기자회견에서 그는 엉뚱한 말을 뱉습니다. 사실일까요. 아니면 단지 현실 판단력이 약화된 것일까요. 우리는 아이언맨이라 불리는 그 로봇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기사 문구는 모호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래도 토니 스타크는 당시의 피랍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상태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가 아이언맨이길 바랍니다.

트라우마, 최소한의 보상

토니 스타크가 보인 모습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주요 증상에 해당합니다. 이대로라면 그에겐 공격적 성향,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약물 남용 등 또 다른 문제가 동반될 수 있는데요. (원작의 후속 시리즈에서 토니 스타크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죠.) 


사실 SF영화에 어렵사리 심리 문제를 대입한 건 ‘외상(트라우마)’에 대한 좀 더 균형 있는 시각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외상을 주제로 이루어진 초기 연구들은 주로 사건으로 인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관점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극심한 스트레스의 지속, 통제감 상실, 일상생활의 마비, 자신과 타인의 비난’ 등 그 부정적인 영향을 주로 다룰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개념이 정립되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르러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들에 삶에 있어서 중요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는 단서들이 나타났습니다. 전혀 다른 관점의 연구가 진행됐고, ‘외상 후 성장(Post traumatic Growth: PTG)'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확립되었습니다. '삶에서 겪는 역경에 대한 투쟁으로 얻게 되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요. 


중요한 건 여기에서의 '변화'가 해당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즉 사건 이전의 적응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심리적 성장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사건과 그로 인한 어둡고 습한 시간을 견뎌낸 이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보상이겠죠.

잊지 못할 상처가 있나요?

당신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과거의 선택을 원망하기보다 지금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자신을 격려해주세요. 세월이 흘러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때, 척박하게 식어버린 것 같았던 그 길에서 반짝이는 어떤 것을 찾게 될 거예요. 앞으로 남은 길을 따스하게 비춰줄.


자신이 아이언맨이라던 미친 과학자. 그는 피랍 사건을 겪었으며 가슴에 배터리를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어느 날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가슴속에 있던 말을 다시 꺼내죠. 그 말을 끝으로, 인류를 지켜냈습니다.

I am Iro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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