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시점..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조회수 2019. 10. 14. 13: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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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2012)
모든 이의 시점에
똑같은 비중을 두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엄마’가 주인공인 서사에 갈증이 많았다. ‘엄마’가 등장하는 수많은 서사를 접해오면서도 갈증은 좀처럼 해소되지 못했다. ‘엄마들’은 어딘지 모르게 늘 왜곡되어 있었다. 실재할 법한 엄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실재한다고 오랜 세월 믿어왔던 엄마의 재현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엄마를 작품 속에서 접하고 나면, 그 인물의 고독이 나에게로 밀려오는 듯해져서 서운해지곤 했다. 그 누구로부터도 있는 그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엄마라는 존재는 우선 서러운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전형성으로부터 탈피된 엄마의 모습을 담아낸 서사에서마저도 또다른 전형 같은 엄마를 만날 뿐이었다. 나의 이 오랜 갈증이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 처음으로 해갈을 맛보았다.

내가 욕망하던, 이상형에 가까운, 엉뚱한 엄마가 등장한 것이 해갈의 이유는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자기 기억을 꺼내놓는 주변인들의 표정과 어투 덕분에 갈증이 해소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편집한 감독이자 딸인 사라 폴리의 시선이 나의 해갈에 큰 몫을 해주었다.


사라는 이 다큐멘터리 안에서 가장 적게 말하고 가장 적게 등장한다. 단지, 이 영화를 편집하는 행위로 자신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자신의 엄마를 완성한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덮어두어야 했을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이자 자신의 친부)가 자신의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출간하고 싶어했고, 사라는 반대했다. 그의 시선 속에서 엄마의 로맨스(외도)가 빛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과 무관하게 수십 년을 살아온, 엄마와 사라의 가족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 내놓는 것을 사라가 맡게 된다. 엄마의 남편(이자 자신을 키워준 아빠)이 쓴 글을 내레이션으로 입혀서, 모든 이의 시점에 똑같은 비중을 둔 다큐멘터리를 사라는 완성하게 된다.

엄마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의 인터뷰를 합쳐놓으니 이야기는 당연히 불일치했다. 불일치들이 모여서 기묘한 허구가 완성되어갔다. 본질을 제공할 유일한 당사자인 엄마는 이미 죽고 없는 상태이며, 비밀을 나눈 이들의 고백으로한 사람의 비밀이 채워져갔다.


엄마의 이야기가 완성되어갈 무렵, 엄마는 엄마라기보다 단지 한 명의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엄마라는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어갔고 사라로부터 멀어져갔다. 마치 새장을 벗어나서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처럼, 멀리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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