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칠드런 오브 맨〉을 감당할 수 있을까?

조회수 2019. 10. 2. 11: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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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2006)

탄생을 지켜본다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다. 직접 두 눈으로 보든, 스크린을 통해 보든. 불임이 만연한 시대가 배경인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출산 씬은 촬영까지 완벽해 정말 내 앞에서 출산이 이뤄지는 듯 실감난다. 


때는 아무도 임신을 못 하는 2027년, 기적처럼 혼자 임신한 여자 주인공 ‘키’는 그 사실을 숨겨야 안전하다. 만삭의 그녀를 바다로 데려가야 하는 남자 주인공 ‘테오’는 해변 근처의 난민 캠프에 도착한다. 치안 부재의 낯선 그곳에서 처음 보는 집시가 인도한 허름한 숙소. 세 사람은 방으로 들어간다. 마룻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매트리스와 양동이 하나를 보여준 카메라는 집시가 방 밖으로 나가자 잠시 방 전체를 보여준 뒤 두 사람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산통을 내뱉는 키의 절규와 테오의 격려 섞인 외침이 오가고, 창밖에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사이 카메라는 이내 키의 무르팍까지 다가간다. 마침내, 아기가 나온다. 행복한 키와 테오 그리고 방금 태어난 아기까지 세 사람을 보여주며 씬이 끝난다. 


아카데미 3년 연속 촬영상에 빛나는 임마뉴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방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마지막 풀샷까지 약 3분 20초의 이 출산 씬을 한번에 롱테이크로 찍었다. 편집이 없는 덕분에 관객은 이 극적인 순간을 리얼타임으로 오롯이 경험하게 된다. 연기, 촬영, 조명, 미술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진 이 장면은 내가 경험한 첫 간접 출산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리얼하다. 

아이를 안은 키와 이를 바라보는 테오

몇 년 후, 현실에서 진짜 출산 장면을 촬영하게 됐다. 과잉 인구의 작은 섬에 또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인도네시아 답사를 가서 출산 예정인 임신부와 가족을 만나 촬영을 허락받고, 출산 시기에 맞춰 본 촬영을 갔다. ‘출산예정일이 틀렸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 그사이에 낳진 않았겠지?’ 별 생각을 다 하며 한국에서 건너갔는데 다시 찾은 만삭의 예비 엄마가 인도네시아인 특유의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줘 마음이 놓였다.


출산을 기다리며 며칠이 지난 밤. 갑자기 세상이 요동치길래 자다가 눈이 번뜩 떠졌다. 방이 격하게 흔들리고 창밖에선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진도 7.0의 강진. 처음 겪는 자연재해에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숙소 건너편 촬영지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전봇대 합선으로 불이 났단다. 마을 사람들이 바닷물을 길어다가 불을 꺼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많은 건물이 지진으로 무너졌고, 놀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배 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동네는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임신부들이 육지의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해서 가봤는데, 거기도 건물이 무너진 건 마찬가지였다. 


군인들과 공무원들이 몇 시간 회의를 하더니 임신부들을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옮겼다. 야전 텐트가 쳐졌다. 의사에게 출연자 상태를 물어보니, 지진 트라우마로 당초 예정일이던 내일보다 며칠 출산이 늦어질 거란다. 언제 출산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 그날 밤부터 대기하기 시작했다. 산통이 좀 크게 들릴 때마다 카메라를 꺼냈다가 ‘아직 아니다’라는 산파의 말에 다시 카메라를 내려놓길 삼일 정도 했을까. 갑자기 산모가 산통을 시작했다. 산파의 분주함을 보니 드디어 출산이 시작되는 눈치였다. 영화와는 뭔가 달랐다. 산모가 비명을 지르지 않고 힘을 주다가 기진맥진했다가 다시 힘을 주고... 


지진 때문에 운동장에 설치된 야전 텐트의 간이침대에서 출산하는 탓인지, 초산인 탓인지 남편도 엄청 예민하게 우리를 경계하는데 그래도 촬영은 해야 하니 계속 그 과정을 찍었다. 영화에선 3분 20초였는데 현실에선 한 시간이 넘어간 상황. 머리가 나오더니 아이가 쑥 나왔다. 모두가 조용해지고 아기의 울음소리만이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텐트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박수치기 시작했다. 지진과 화재로 많은 것을 잃은 절망적인 이곳에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만큼 희망적인 게 있을까? 촬영을 떠나 그때의 그 벅찬 감정은 경이 그 자체였다.


다큐프라임 인류세 中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말이 필요 없다. 출산의 순간을 경험했으면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일종의 진리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도 그런 대사가 나온다.


“놀이터의 소음이 사라지면서 절망이 찾아왔다. 참 이상하지. 애들 소리가 없는 세상.”

환경 오염 때문일까?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인류 전체가 불임이 돼버린 영화 속 시대에선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이 들리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2027년의 세상은 묵시론 그 자체다. 그런 우울한 내용을 거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워낙 리얼하게 연출해서 영화가 너무 우울하다. 이 영화는 제때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못 했는데 그런 어두운 분위기와 암울한 세계관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쓸쓸한 놀이터 풍경

냉정하게 말하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인류세 시대의 지구에선 그렇다. 이 행성은 70억 인구를 이미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류세(人類世)라는 말도 생겼다. 지질 시대는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 도래와 같은 큰 힘이 작용해 공룡 대멸종처럼 큰 사건이 발생할 때 바뀌는데, 1950년 이후 인간이 지구를 너무 많이 변화 시켜 지질 시대까지 바뀌었다는 게 많은 과학자들의 견해다. 아예 그 원인인 인류의 이름을 붙여서 명명하자고 해서 인류세다. 


물고기가 가득해야 할 바다엔 플라스틱이 가득하고, 산과 들은 야생동물이 사라진 대신 인간과 닭, 소, 돼지 같은 가축이 점령했다. 대기는 미세먼지로 뿌옇고 평균 기온은 점점 올라가 금성처럼 되고 있다. 대기학자, 지질학자, 생물학자, 해양학자 그리고 인문사회계의 많은 학자들이 외친다. 우리는 이미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이 모든 게 인구 때문이다. 과학자만 아는 게 아니라 영화 만드는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영화에서도 인구 문제가 자주 등장하는데 <킹스맨>에선 사무엘 잭슨이 분하는 ‘발렌타인’이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인류를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려 하고, 어벤저스 시리즈에선 타노스가 아예 인구의 절반을 죽인다. 


인류세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조사하다 보니 해외엔 ‘자발적 인류 절멸 운동’과 같은 극단적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 인구 예측에 따르면 <칠드런 오브 맨>의 배경인 2027년엔 80억 명을 돌파해있을 것이다. 인구압은 더 커질 테고 이 행성의 한계치엔 더욱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 우리는 우리의 편리하고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바꿀 의지가 별로 없다. 인류세니 뭐니, 아무리 경고해도 잘 안 먹힌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은 답답한 질문을 던질 따름이다.

지구는 얼마나 더 많은 칠드런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섬 중 하나인 붕인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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