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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이브, 흔치 않은 캐릭터

조회수 2019. 9. 26. 13: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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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이브

킬러인 빌라넬의 방문을 받은 비밀누설자. 두려움에 떨며 킬러에게 호소한다.


“우리 거래해요. 나 돈 많아요.”

“나도 많아.”

(울먹거리며) “제게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건 줘도 딱히...”

“아니,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다고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너 죽으면 애들끼리 끈끈해지고 좋겠네.”


<킬링 이브> 시즌 1 에피소드 05 중에서



배우 산드라 오는 BBC아메리카의 드라마 <킬링 이브>로 2019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게 되기 전에 수상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산드라 오가 무슨 역이라고?"

"영국정보국(MI6) 보안 담당자래. 사이코패스 살인청부업자를 잡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흠... 그런 얘기 많지 않나?'



온갖 의구심은 드라마 <킬링 이브> 1시즌 1편이 시작되고 이내 끝났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은 러시아 출신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 킬러이며, 자신의 고용주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한번 받은 명령은 철저하게 수행한다. 

앞서 인용한 대화를 보면 알겠지만 빌라넬에게는 공감 능력이라는 게 없다. 빌라넬은 매번 타깃을 알려주는 남자 콘스탄틴만을 만날 뿐이다. 빌라넬은 흔적도 목격자도 남기지 않는데, MI6 소속의 이브 폴라스트리(산드라 오)는 몇건의 미해결 암살 사건을 살피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여자 킬러가 있다’는 심증을 갖는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이브의 ‘여자 킬러 덕질’이다. 이브는 여성 암살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현장 업무에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호기심이 덕질의 영역에 있었던 셈이다. 이브의 추론이 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이브가 킬러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발견한다. 멜로드라마를 닮은 전개다.


약간 과장해서 설명했지만, <킬링 이브>의 재미는 시선의 권력을 여자 캐릭터들이 갖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남성들이 무정한 킬러와 집념 어린 요원으로 등장해 맞서 싸우며 서로를 알아가는 영화나 드라마는 흔하다. <킬링 이브>는 양쪽 다 여자다. 직장생활과 나이들기에 지친 것처럼 보이는 중년의 요원이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집착적으로 뒤를 쫓다가 고도로 훈련된 사이코패스 암살자를 마주한다. 양쪽이 둘 다 남자일 때 발생하는 ‘브로맨스’적 멜로드라마가 둘 다 여자일 때도 펼쳐진다.


와중에 백인 남자들은 등장하면 곧 시체가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놀랄 일이 아니다. 권력과 정보력, 자금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큰 권력과 정보, 돈을 빼앗기 위해서 죽여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 모든 것(최소한 하나라도)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1세계의 중장년 백인 남성들일 것이다. 


이브가 먼저 빌라넬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빌라넬은 이브를 관찰하며 마음에 들어한다. 관찰하는 사람이 관찰당하고, 관찰당하던 사람이 관찰하며 정 반대의 진영에 선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로를 알아간다. 이토록 애틋한데 둘의 관계는 누구 하나가 죽기 전에는 끝나기 어려우리라. 



이다혜

씨네21 기자


2000년부터 씨네21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책 읽기 좋은날』,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아무튼, 스릴러』를 썼어요. 50개 넘는 간행물, 30개 넘는 라디오에서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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