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명품 루이비통을 바꿔 버린 남자, 버질 아블로
2018.06.21.
여태껏 대중들이 인식해온 명품의 이미지/선입견을 박살 내 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럭셔리의 대명사인 “루이비통” 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1854년, 프랑스에 디자이너 Louis Vuitton 에 의해 설립된 루이비통은 고유의 캐리어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루이비통은 명품 브랜드중에서도 전통적인 로고, 디자인, 마케팅 방식을 유지해왔고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상징적인 브랜드로 위치 잡았다.
이러한 루이비통이 스트리트 브랜드인 오프 화이트의 수장인 버질 아블로를 , 루이비통의 남성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다는 사실은 많은 대중들을 놀라게했고 미디어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었다.
물론 그 전까지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자 했던 루이비통이었지만, 스트리트 브랜드의 수장을 자신의 브랜드의 얼굴로 세운다는 것은 사뭇 다른 의미였다.
그리고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은 지금까지의 루이비통과는 전혀 달랐다.
모델에게는 꿈의 무대와도 같은 루이비통의 패션쇼에는 가장 앞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델들이 아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래퍼 Kid Cudi, Playboi Carti, Theophilus London, 화가 Lucien Smith, 아티스트 Blondey McCoy, 스케이터 Lucien Clarke 등 스트릿 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쇼의 시작을 알리고 주축을 이루었다.
버질 아블로는 GQ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럭셔리 산업을 바꿀 수 있는 루이비통이라는 플랫폼을 가졌고, 변화는 불가피하다’.
여기서 말하는 버질 아블로와 루이비통이 말하는 “Change(변화)”는 “Harmony in Irony (부조화 속의 조화)” 를 이루어냈다.
럭셔리가 배타적이고, 고귀하고, 특별하다하는 점을 강조하며 역사적으로 “소수”에게만 제공되는 패션이었다면, 현 시대의 패션은 젊은 세대에게 가장 인기있고 강력한 “예술의 형태” 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표현하는 스트릿 패션에서 폭발했고 더이상 “니치 마켓” 이 아닌 다양한 대중에게 사랑받는 패션의 형태가 되었다.
하지만 버질 아블로는 그의 쇼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러한 스트릿 과 럭셔리의 벽을 파괴했다
그는 럭셔리는 더 이상 소수에게 제공되는 도도하고,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패션이 아니라 많은 “유스”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패션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그 의 첫 루이비통 패션쇼에서 분명하게 보여줬다.
전문적으로 패션의 교육을 받지 못한 디자이너, 가나 이민자 2세, 버질 아블로는 몇백년의 역사를 가진 럭셔리를 재정의 하고 유스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라고 외치고 있다.
럭셔리의 '대중성'을 추구한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은 “대중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몇 명품 브랜드들과는 분명 달랐다. 단지 수익성을 위해 대중화를 노린 명품 브랜드들과는 달리, 버질 아블로는 럭셔리 산업 자체의 대중화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신념을 필두로 세운 버질 아블로가 이끄는 루이비통의 행보가 앞으로의 럭셔리 산업을 어떻게 바꾸어 갈지 기대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