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영감을 만든다

조회수 2021. 4. 1.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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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쇼핑하는 세상 속, 브랜드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오프라인 공간들.
출처: 나이키, 몽클레르, 프리츠한센

토요일 아침,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걸로 주말을 시작한다. 지난 일주일 동안 치약, 고양이 모래, 만두 등 많은 물건이 집으로 배송됐다. 대형마트, 드럭스토어에 간 지 꽤 오래다. 생필품은 온라인으로 구입하고 새로운 물건은 유튜브, SNS를 통해 리뷰를 확인해 주문한다. 중고라도 상관없다. 당근마켓으로 문고리 거래(판매자가 자신의 현관 문고리에 물건을 걸어두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비대면 거래)도 해보았는데 제법 만족스럽다. 판매 플랫폼의 만족스러운 큐레이션, 물건의 합리적인 가격이나 충실한 서비스와 기능, 희소성 등이 구매의 기준이 되었다. 코로나19로 명동, 강남 일대의 많은 브랜드 공간이 문을 닫았다. 해외 관광객은 사라졌고, 집에서 휴대폰 터치 몇 번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물건을 사러 외출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은 탓이다. 오프라인 시대의 종말이 왔다고 말하는 요즘, 과연 이 빈 공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채워질까?

출처: 나이키
1 미국 뉴욕에 위치한 나이키의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OOO’. 2 나이키는 마네킹에 디스플레이된 옷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선택하면 피팅룸으로 전달해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우리가 브랜드에 원하는 것은?

브랜드는 더 이상 단순히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 조직이 아니다. 브랜드를 메이커(maker)라 부르던 때가 있었다. “메이커 입었네”나 “그 메이커 비싸잖아?”라는 말처럼 메이커는 소비자의 소득, 직업 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메이커는 정말 우리의 이미지를 메이킹해주었다. 브랜드와 메이커는 다르다. 브랜드 컨설팅 기업 스탠더드프로젝트의 대표 임태수는 책 <브랜드 브랜딩 브랜디드>를 통해 브랜드는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관이자 생활양식’이고 브랜딩은 ‘브랜드의 생각과 약속을 꾸준하게 실체화해나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이미지 개선을 위한 도구, 타인에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일상에서의 태도와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브랜드에 애착을 지닌 사람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의 말처럼 브랜드는 삶의 양식,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친다. 베지테리언이 비건 화장품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비건 화장품 브랜드를 통해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브랜드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졌다. 따라서 브랜드가 출시하는 제품에는 그에 걸맞은 철학이 담겨야 하고 공간에서는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트렌드 전문가들은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가 삶의 영감을 받는 세상이 올거라 예측한다. 쇼핑을 목적으로 한 외출을 계획한지 오래다. 물건과 음식이 풍족한 시대, 여분의 세제와 휴지가 늘 집에 있고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즉석밥, 라면 등을 비축해두었다. 우리는 그저 무얼 갖거나 먹고 싶기보다는 새로운 기분, 경험,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 외출을 하고 브랜딩 공간에 들른다. 그리고 그만의 아이덴티티가 녹아든 공간에서 물건을 만져보며 일상의 자극과 영감을 얻는다.

방문객 < 예약 손님

브랜드에서 숫자는 매우 중요한 데이터다. 상품을 기획하고 제작, 마케팅, 판매하는 내내 숫자로 이야기한다. 콘텐츠 조회수, 방문 인원, 매출, 상품 가짓수 등의 값이 클수록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제 데이터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브랜드와 개인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다. 멀리 위치하더라도 경험하고 싶은 쇼룸, 다이닝을 예약해 방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또 북적이는 매장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에 매력을 느낀다. 입장료 5만원을 내고서라도 사람들이 유료 도서관 소전서림에 방문하는 이유다. 그 공간에서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문학잡지 <파리 리뷰>나 1930년대 제작된 셰익스피어 미니어처 전집을 뒤적이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코로나 19로 여행길이 막히면서 프라이빗한 공간은 더욱 귀해졌고 사전 예약, 멤버십 운영 등의 문화도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고객 데이터 분석 및 솔루션 기업 던험비가 미국, 호주에 이어 한국 소비자를 분석한 ‘2020 던험비 유통업체 선호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업체와 정서적 유대감이 강할수록 지출을 많이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던험비코리아의 대표 권태영은 “소비자가 무얼 샀는지 말고 왜 샀는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나의 물건이 판매되었다는 수치보다, 소비자가 어떤 요인에 의해 구매를 결정했는지 고민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출처: 몽클레르
3,4 몽클레르는 스키 리조트에 온듯한 분위기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출했다.

브랜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브랜드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소비자에게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건 이미 꽤 오래된 이야기다. 광고에는 스토리텔링이 녹아 있고 쇼룸은 브랜드 체험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인테리어를 넘어 전시, 클래스 등으로 소비자에게 브랜드 제품을 소개했다. 이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물건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 공간을 연다. 덴마크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프리츠한센은 쇼룸과 오피스, 와인바, 카페를 결합한 공간 ‘라운지’를 한남동에 열었다. 이곳의 이색적인 부분은 B2B를 중점으로 한 공간이기에 쇼룸을 개인에게는 오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2층에 자리한 내추럴 와인숍 겸 프렌치 레스토랑 빅라이츠, 카페 테투의 공간 전부를 프리츠한센 가구로 채웠다. 미식과 와인, 커피를 즐기며 프리츠한센의 가구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프리츠한센 한국 지사장 이수현은 “쇼룸은 그저 많은 제품을 나열하기보다 브랜드 철학과 제품의 품질을 통해 영감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며 라운지의 목적을 분명하게 했다. 이케아는 성수동에 ‘이케아 랩’을 열었다. 창고형 매장 대신 이케아 가구가 어떤 원재료를 기반으로 제작되는지 소개하고 도심형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며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내만이 아니다. 미국 포틀랜드에 새로 문을 연 스노우피크 플래그십 스토어는 쇼룸, 레스토랑, 오피스 공간을 한데 구성하고 각 공간과 실내외를 유연하게 구분 지었다. 덕분에 쇼룸과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이나 인근 주민들은 스노우피크의 크루가 된 것처럼 공간을 경험한다. 아웃도어 라이프를 지향하는 사람과 브랜드가 일하는 모습, 방식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것이다. 몽클레르는 전 세계 플래그십 스토어를 차가운 물성이나 색상의 마감재로 꾸미고 장작을 태우고 남은 재의 향을 공간에 뿌려 스키 리조트, 산속 오두막 산장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어서자마자 도시의 복잡함은 잊고 설산에서 스키를 타고 싶은 마음을 소비자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또 뉴욕에 위치한 나이키의 ‘하우스 오브 이노베이션OOO’은 피팅룸마다 TPO에 맞는 조명 연출이 가능하도록 설정했다. 예를 들면 요가복을 피팅할 때는 요가 스튜디오 조명을 설정한다거나, 러닝복에는 자연광을 선택하는 식이다. 피팅룸에서 셀피 찍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조명도 있다. 온라인 주문이 많아진 요즘, 직접 입어보고 구입하는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출처: 프리츠한센
5 내추럴 와인숍 겸 프렌치 레스토랑 빅라이츠는 프리츠한센의 가구와 오브제로 채웠다. 6 프리츠한센처럼 오피스 공간에 쇼룸, 카페 등을 함께 운영하는 브랜드가 늘고 있다. 7 한남동에 위치한 프리츠한센의 ‛라운지’ 공간. 8 프리츠한센 ‛라운지’의 쇼룸은 일반인에게 오픈하지 않는다. 대신 레스토랑과 카페를 통해서 가구를 경험할 수 있다.

브랜드 공간의 미래

누군가는 오프라인 공간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 저널> 역시 2025년까지 약 10만 개 매장이 폐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외출이 확연히 줄어든 요즘, 일상의 사소한 경험이 더욱 소중해졌다. 책 <리:스토어>의 작가 황지영은 “글로벌 기업 매출의 80% 이상이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글로벌 컨설팅 회사 커니의 분석에 따르면 Z세대 중 81%가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소비층일수록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에서 느끼는 실재감에 대한 니즈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실재감은 단순히 물건을 체험하고 사는 경험을 넘어서야 한다. 물건을 구입했을때 경험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축약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명품 매장을 2~3층으로 올리고 1층을 샤넬 뷰티, MAC 등 50개가 넘는 코스메틱 브랜드를 한데 모아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화장품 공간을 만들고자 리뉴얼을 시작했다. 뜸해진 소비자의 발길을 잡기 위해 ‘1층 = 명품 브랜드’의 공식을 깨고 코덕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든다. 백화점, 쇼핑몰을 막론하고 도심 속 많은 브랜드 공간이 문을 닫았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진화의 신호탄이다. 각 공간에 들를 때마다 제로웨이스트, 아웃도어, 컬렉팅처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에 몰입하고 즐기며 살아야 할지’ 브랜드로부터 영감을 받는 내일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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