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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조회수 2021. 2. 27.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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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챙기면서 '나'는 못 챙기는 사람들을 위한, 무심하지만 따뜻한 한 마디. "그러라 그래"
출처: www.shutterstock.com

드라마 <런 온>에서 오미주(신세경 역)는 기선겸(임시완 역)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 구할 시간에 본인부터 좀 구해요, 제발 좀.” 타인의 일에는 발벗고 나서고, 후배가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자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나서지만 정작 본인 일에는 무관심한 기선겸에게 본인부터 챙기라고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부터 아껴주라는 말이다. 방송인 박미선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은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였다고 말했다. 정말 힘이 되는 위로는 솔로몬급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처럼 고민 자체가 불필요했던 것처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내 편에게는 다감하고 남에게는 시크한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혹은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이 말들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분명 헛웃음이 나는 말이지만 곱씹어볼수록 위로가 된다. 다른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내 마음부터 챙겨보자. 내 마음 챙기는 데는 명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다.

나는 내가 돕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나를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것은 역시 나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소중하게 여겨주고 도와줘야 한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기 전에 스스로의 감정부터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현재 얼마나 힘든지를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기분을 조절하고,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일 발버둥치고, 수많은 갑질을 당하면서도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옭아매다 보면 어느덧 내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된다.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통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장기의 속까지 다 파헤쳐보듯 억지로 시간을 내 정기적으로 내 마음,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 이 넓은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 중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내가 되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나를 좀 챙겨주자. 챙김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무기력은 학습된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인데 계속되는 좌절은 감정을 무덤덤하게 만든다. 계속 좌절을 겪다 보면 좌절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 감흥이 사라진다. 처음에는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로 시작해 그 일에 얽힌 누군가를 원망도 했다가 결국에는 자책으로 끝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나중에는 ‘내가 그렇지 뭐’로 점철되며 포기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무기력한 사람은 없다. 선천적으로 호기심이 없거나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심리 상태는 후천적인 경험이 쌓여 학습된 결과다. 사소하거나 거대한 좌절을 통해 차곡차곡 적립한 무기력은 스스로 가진 가능성을 없애고, 자신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정 지어버린다. 하지만 무기력이 반복된 경험으로 학습되었듯 유능함 역시 학습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왜 하필 나에게’라는 생각보다는 ‘일시적인 일이야.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는 것만이 오랜 시간 쌓아온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난 왜 이럴까’라는 악의적인 주문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잘될 거라고 믿어도 잘될지 말지 알 수 없는 삶 속에 애써 무기력을 주워 담을 필요는 없으니.

출처: www.shutterstock.com

다른 누구도 아닌 나

병만 옮는 것이 아니다. 감정 역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 그래서 좋은 기운이 도는 사람 곁에는 그 기운을 따라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긍정의 기운보다 부정적인 기운에 훨씬 쉽게 휩쓸리고 동요하기 쉽다. 다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다. 우리는 살면서 꽤 많은 것을 부정당하면서 살아왔다. 익숙해지지 않아도 될법한데 천천히 비난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잔뜩 안은 채 어른이 됐고, 살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생각에 매몰돼 참고 또 참으며 살아왔다.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려왔다. 하지만 누구나 조금씩 타인에게 의도와 상관없이 폐를 끼치면서 살고 있다.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기도 하고, 또 폐를 당하기도 하면서 타인과 어우러져서 살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너무 날을 세우지 말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감정만 생각하다가 정작 자신의 마음은 들여다볼 줄 모르게 된다. 남에게 민폐가 되기 싫어서 한 행동이 결국 스스로에게 민폐가 될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어린이는 자라서 상처받은 어른이 된다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매체 속 연예인들. 대중에게 소비되는 모습은 항상 하이 텐션에 행복한 생활뿐인 그들에게 어떤 그늘이 있는지 사실 우리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가끔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면 ‘밝아만 보였는데 저런 그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늘은 대부분 어릴 때 가족, 친구에 의해 만들어진다. 완벽히 상처가 아물기 전에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어른이 된다.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혹은 상처를 잊고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 <한 끼 줍쇼>에 출연한 이효리가 지나가는 어린이에게 건넨 말이 화제가 됐다. MC가 꿈을 묻자 망설이는 어린이에게 이경규는 “훌륭한 사람 되어야지”라고 말한다. 그때 이효리의 한마디. “뭘 훌륭한 사람이야. 그냥 아무나 돼.” 언뜻 무성의하고 무관심해 보이지만 그 장면을 본 어른들은 드디어 ‘훌륭’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착하게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강요받고 성장한 우리, 왜 그렇게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꽤 많은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할 겨를 없이 어른이 되었다. 이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차례다. 훌륭은 고사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들다.

그동안 스스로 내 안의 분노를 모른 척해왔는지 생각해보자. 혼자만의 시간,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안의 분노와 낯가림을 그만두고, 이제 직접 마주하자.
출처: www.shutterstock.com

폭발하지 않는다

화병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갑갑한 화병은 마음의 병이다. 참고 참다가 폭발하지 말고, 그때그때 조금씩 표현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화를 내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화낼 권리를 허락하자. 물론 극단적으로 화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지만 반대로 화를 억누르기만 하는 것도 문제다. ‘화’라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 거야”라고 되묻는 사람도 은근히 많다. 화를 억누르면서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관계를 악화시키며 자신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늘 화를 참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쌓아두고, 묵혀둘 것이 아니라 조금씩 표현해야 한다. 억눌린 화를 한 번에 폭발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배신감을 줄 것인지,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표현하면서 잃을 사람과 내 옆에 오래 둘 사람을 구분할 것인지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분노와 억울함이 누적되면 화병, 분노 조절 장애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화병’이라는 말은 미국정신과협회에서 ‘Hwa-byung’으로 표기할 정도로 분노의 억압에서 오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문화증후군 중 하나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상당수가 이런 마음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계속 참다가 상사를 칼로 찔러 살해한 직장인의 뉴스가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수준이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폭발이 아닌 표현은 얼마든지 괜찮으니 표현하고 살자.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알면 남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식의 저주’라고 한다.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아는 전교 1등이어도 설명을 못하는 친구가 있고, 기가 막히게 설명을 잘하는 전교 100등이 있을 수 있다. 정확하게 설명은 어렵지만 ‘이걸 왜 몰라’하는 생각에 빠진 전교 1등보다는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전교 100등이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더 좋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감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상대편을 위해서 참고,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흔한 착각이 이런 내 마음을 상대방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원하지 않은 ‘기브’를 해놓고 왜 나에게 ‘테이크’가 오지 않냐고 상대를 원망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관계가 아니라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자. ‘넌 왜 내 마음을 몰라줘’라고 말해봐야 상대는 모른다. 왜, 말하지 않았으니까. 상대를 위한 배려가 때로는 상대방에게 숨 막히는 이기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대는 생각보다 당신의 마음을 꽤 많이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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