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하게 망한 데이트

조회수 2021. 1. 25.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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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폭망진창 데이트 썰. 보는이가 더 민망하고, 자다가 이불킥 날리게되는 에피소드 모음.

CASE 1 이벤트 덕후 남친과의 손절

하라는 기념 이벤트는 안 하고, 온갖 광고 이벤트에는 다 참여하던 전 남친. 나와의 100일에는 100일인 줄도 모르더니 아침부터 요상한 링크를 던지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이거 참여해봐. 당첨되면 500만원이래’ 이런 식이다. 텍스트만 놓고 보면 남친이 보낸 건지 스팸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 그냥 알려주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참여 완료 인증까지 요구하는 남친 덕분에 어느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나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기저기 개인 정보를 너무 입력하고 다닌 탓인 것 같아 “너도 이제 이벤트 참여 그만해. 당첨된 적도 없잖아”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는 게 아닌가.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예쁜 케이크를 사 와도 모자랄 판에 케이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이벤트 링크를 보내기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이별을 고했다. 친구는 남친이 이벤트를 너무 해줘서 피곤하고 부담스럽다는데 그와의 연애에서 나에게 남은 건 언제 참여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업체에서 오는 수많은 메일과 전화뿐이다.


CASE 2 산타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울지 않고, 착하게 한 해를 보낸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 할아버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늘 빌었다. ‘아이는 아니지만 착하게 살았으니 제발 올해는 남자친구를 내려주세요’라고. 매번 모른 척하던 산타 할아버지가 드디어 내 기도에 응답했다. 12월 24일, 연인들로 가득한 크리스마스이브에 거리를 쓸쓸히 걷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연락처를 묻는 훈남이 생겼던 것.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나는 처음에 어떤 남자가 다가오길래 멈칫했다. 길을 묻는 척하면서 천천히 본인의 속내를 드러내는 이상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 한껏 경계를 했는데 그의 훈훈한 외모에 한순간 마음이 풀려버렸다. 돈 달라는 것만 아니면 다 들어줄 생각을 하고 이어폰을 뺐는데 정말로 내가 마음에 들어서 연락처를 물어본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산타 할아버지부터 떠올랐다. 그렇게 12월 24일 극적으로 그와 연애를 시작했다. 헌팅을 믿지 않던 나였는데 그는 달랐다. 다정하고 따뜻했으며 나를 진심으로 아껴줬다. 그렇게 1년간 만남이 이어졌고, 다시 크리스마스이브. 그와 1주년이 되던 날 한껏 신경 쓰고 나간 자리에 그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그와 이별한 후 3년이 지났다. 크리스마스 이벤트처럼 나타난 그는 마치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산타 할아버지, 그는 어디 있나요?

CASE 3 야릇한 그의 취향

남자친구는 평소 스킨십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처음 밤을 보내기까지 6개월 가까이 걸렸을 정도로 욕구가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오히려 내 쪽에서 몸이 달아올라서 집에 가기 싫다고 말해도 굳이 안전하게 들여보내는 그런 남자 말이다. 하지만 사건은 연말에 터지고 말았다. 처음 함께 맞는 새해, 남자친구는 무슨 영문인지 좋은 호텔을 예약하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침대에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꽃잎이 흩뿌려져 있었고, 욕실에도 마찬가지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프러포즈 각인가?’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 그는 갑자기 선물을 건넸다. 반지라고 하기엔 어쩐지 상자가 좀 컸는데 열어보니 곱게 접힌 승무원 의상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내 눈을 의심했는데 남친은 수줍게 웃으며 “나 승무원이랑 한 번 해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건넨다. 차라리 평소 밝히는 남자라고 솔직히 말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생불인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코스튬이라니. 순간 호텔방을 박차고 나왔다. 지금쯤 그는 승무원과 사귀고 있으려나?


CASE 4 이벤트 후 늘어난 의심

평소 좋아하던 케이크 맛집이 있었다. 유난히 단 걸 싫어하는 남친이라 함께 간 적이 없어서 남친은 전혀 모르는 가게였는데 크리스마스에 남친이 그 가게의 케이크를 들고 왔다. 갑자기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보이면서 남친과 나의 취향이 통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날 평소 같지 않게 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뜨거운 밤을 보냈는데 일주일 후 멘탈이 바사삭 부서졌다. 친구에게 남친 자랑을 했더니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네 남친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와서 네가 좋아하는 걸 이것저것 묻더라. 그러면서 고맙다고 밥도 한번 먹었어. 내 덕분인 줄 알아”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보통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말은 안 하는 게 나은데 친구는 참지 못하고 그 말을 내뱉어버렸다. 친구 앞에서 남친의 센스를 자랑한 나도 부끄럽고, 둘이서 따로 만났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계속 찝찝한 생각이 든다. 이런 일로 이별을 말하긴 너무 속이 좁은 걸까? 하지만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덕분에 좋아하던 그 케이크 집은 근처에도 안 가게 됐다. 사장님, 죄송해요.

CASE 5 모든 것은 사바사

드라마나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을 보면 능글맞으면 능글맞은 대로, 서툴면 서툰 대로 멋있거나 귀엽던데 현실 속 남친들은 왜 바람둥이 같거나 찌질해 보일까. 차라리 둘만 있을 때 이벤트를 할 것이지, 친구들과 함께한 송년회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이벤트를 하는 바람에 모두에게 어색한 시간을 선물해 버렸다. 결혼식에서 신랑은 노래를 못해도 신부에 대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축가를 불러도 그날만큼은 용인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남친은 몰랐던 것 같다. 사실 가수처럼 노래를 잘해도 이상하고, 너무 못해도 ‘무슨 용기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인데 남친은 후자에 속했다. 마음만 가상하고, 노래 실력은 정말 엉망이었다. 남친에게 이런 이벤트를 해주면 여친이 좋아할 거라고 말했던 직장 동료는 분명 모솔이거나 평소에 나를 싫어했던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까지 도출하게 됐다. 남친과는 지금도 알콩달콩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어디론가 숨고 싶다. 친구들에게는 부끄러워서 말도 못했는데 그날 남친의 선곡은 팀의‘사랑합니다’였다.

CASE 6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4살 연하의 남친과 연애를 시작했다. 그와 만남을 시작하면서 간과했던 것 한 가지, 남친이 군 미필이라는 것. 그와 이제 뜨거워지나 싶었는데 군대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시기에 곰신이 되다니. 처음에는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보지 못해서 더 애틋하고 좋았다. 만나는 시간만큼은 늘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평소에는 내 삶을 살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의외로 그의 제대 후 시작됐다. 그동안은 연하라는걸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예비역이 된 후 그는 기념일 집착남이 되어 있었다. 222일, 333일을 챙기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며 갑자기 회사 앞으로 찾아오더니 퇴근하는 동료들 앞에서 “누구야 사랑한다”라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어느 시절 사랑고백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의기양양한 남친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변에 서도 “OO씨, 부럽다”라고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을 하던데 요즘은 그의 마음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헌신짝이 되고 싶다. 나 너무 나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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