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네생활자입니다

조회수 2021. 2. 2. 15: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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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맛집을 찾고 당근마켓으로 판매하는 MZ세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다양한 가치를 가지며 성장하는 뉴로컬리즘.

지난해부터 ‘슬세권’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집에서 입던 편안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부담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동네에 극장, 카페, 마트 등의 편의시설이 얼마나 자리했는지를 말하는 부동산 신조어다. 올해는 슬세권의 영향력이 좀 더 커졌다. 팬데믹으로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집을 넘어 동네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나 역시 동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말 아침,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러 갈 때면 ‘이렇게 정겨운 골목이, 감나무가 있었나?’ 또 ‘뚱뚱한 길고양이는 언제부터 저 담벼락을 은신처 삼아 낮잠을 즐겼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몽상과는 반대로 일주일에 2~3일 재택근무 중인 친구는 “동네의 크고 작은 잡음으로 인해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며 “이사를 해야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른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에 스치는 것이 전부였던 동네의 곳곳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한다. 과연 우리에게 동네는 어떤 의미일까?

MZ세대에게 로컬이란?

우리나라 인구 5000만 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2592만 명이 수도권에 산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던 말처럼 수도권에는 국내 100대 기업의 본사 95%가 몰려 있다. 인력, 예산 등이 밀집된 것과는 반대로 서울, 인천, 경기도를 합친 면적은 전체 국토의 약 12%에 해당한다. 우리 부모 세대는 ‘서울=답’이라는공식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공식의 한계를 느낀다. MZ세대는 ‘나’다운 삶을 찾아 헤맨다. 어느샌가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을 찾아 한 달 살기, 이주 등을 시작했다. 새로운 삶의 모색이다. 유행이나 지역은 큰 의미가 없다.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는 지역이 모두 다른 세대에게 팬데믹 이전까지 로컬은 자신을 더 자신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 입맛, 취향,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지역을 찾아 헤매고 정착했다. 또 언제든 이주할 수 있다. 그래서 국경과 경계 없는 글로컬리즘(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합성어)의 확산이 더 빠르게 이루어졌다. 지방에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주말이면 본가(서울)에 올라오는 2030도 많았기에 돈을 버는 지역과 돈을 사용하는 지역이 다르거나, 분기별로 여행을 다니며 지역이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무국적자에 가까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어도 1년 전까지는 말이다.

동네생활자의 하루

핫 플레이스를 찾아 신사동, 한남동으로 외출하는 것도 옛말이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일도, 해외여행 출국일을 손꼽는 일도 없다. 코로나19로 집과 회사, 학교의 루틴이 구축됐다. 주말을 맞아 집 청소를 하고 공간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물건은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을 통해 인근 주민에게 판매한다. 청소기나 화장품, 물건이 필요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누군가가 사용한 물건이라도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당근마켓을 애용한다. 또 간단한 생필품은 GS25의 모바일 앱 ‘우리동네 딜리버리’로 주문해 이웃들에게 배달받는다. 배송만 받는 게 아니라 간단한 등록 과정을 거쳐 앱 내 배달원으로 등록하고 물건을 직접 배달할수도 있다. 또 가족과 외출할 때면 동네 맛집 추천을 기반으로 한 앱 ‘페이노트’를 활용한다. 앱은 한국신용데이터(KCD)가 그간의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꼭 맞는 맛집 리스트 및 쿠폰을 제공한다. 혼자 밥 먹는 걸 꺼려 한다고? 동네에서 밥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앱 ‘같이먹자’를 활용하면 된다. 런치, 디너 메이트의 식사 매너 평가를 추가로 입력할 수 있어 상대에 대한 신뢰도도 체크할 수 있다. 혼밥을 하더라도 정성껏 차려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한 전통 시장 배달 서비스 앱도 활발하다. ‘네이버 전통시장 장보기’ 서비스는 서울시와 경기도, 경남 지역 내 36개 전통시장의 과일, 반찬, 물건 등을 배달해준다. 사용자가 4000원의 배송료를 지불하면 2시간 내로 배송이 이뤄진다. 지난가을부터는 ‘쿠팡이츠’도 서울 27개 전통시장 상점의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0원의 배송료를 지불하면 시장 반경 3km까지 바로 배송이 이뤄진다. 동네 친구를 사귀는 일도 어렵지 않다. 앱 ‘위피’는 나이와 거주지를 기반으로 이용자를 추천해준다. 영화 보기나 카페에서 수다 떨기, 간단한 치맥처럼 동네 친구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세분화해 추천받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먹고 마시며 친구를 사귀는 일까지 동네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동네라는 유일한 선택지

지난 1년 사이 세상이 180도 바뀌었다. 의도치 않게 우리는 집과 동네를 지킨다. 다시금 로컬리즘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중년에게 동네가 태어나고 자라며 결혼해 한평생 삶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능동적으로 동네 생활을 즐긴다. 덕분에 지역의 의미도 더 좁아졌다. 이전까지 서울, 제주처럼 도시가 지역을 한정했다면 이제는 내가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로컬이다. 동네 슈퍼, 반찬가게 등 소상공인의 매출이 소폭이나마 지속적으로 오른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다양한 분야에서 로컬리제이션(Localization), 이른바 현지화가 일어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처럼 골목골목 이야기가 피어난다. 사람들은 동네 곳곳에 숨은 이야기와 맛집을 찾아 다닌다. 꽤나 낭만적이다. 그러나 맹점도 있다. 동네 상권이 되살아나더라도 동네 반찬가게의 경쟁 상대는 인근 가게가 아니라 마켓컬리, 쿠팡 같은 온라인 유통업체다. 동네 1등이 메가 브랜드와 경쟁하는 구조다. 그리고 1등을 차지하지 못한 여느 가게들은 어느 순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에게는 더 냉정하고 치열한 싸움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문을 닫는 가게가 늘었지만 어떤 가게에는 여전히 손님이 많다. 뉴노멀시대의 직장인이 호봉이나 연차에 의존하는 대신 자신의 능력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야 하는 모습과 닮았다. 자신만의 빼어난 무언가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면 도태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되어버렸다.

미래는 뉴로컬리즘에

그렇다고 새롭게 일어나는 로컬리제이션에 차가운 모습만 깃든 건 아니다. 우리에게 새롭게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샌델은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코로나19는 그간 우리가 배달원, 식료품 점원, 청소부처럼 윤택한 일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했는지, 또 급여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했는지 자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공부라는 유일한 기준에 근거한 능력주의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외부 지역,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로컬을 기반으로 한 삶에는 공부뿐 아니라 청소, 요리, 보건, 농업처럼 많은 분야의 능력이 필요하다. 또 사회 시스템의 새로운 구축을 부추긴다. 그간 세계화를 기반으로 고용과 복지가 운영되었기에 코로나19가 처음 창궐했을 당시 그것을 막아낼 지자체의 보건, 복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 국가 전체를 아우를 시스템은 있지만 세부적인 실행 대책이 없던 것이다. 책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이자 연세대 교수 모종린은 “미래의 답은 로컬 생활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로컬 생활권 중심으로 공동체를 복원하고 세계와 국가 그리고 로컬 사이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로컬을 빼면 미래는 정말 암울하다.” 그는 지역을 분권화하고 도시를 재구성해 일터와 삶터가 하나인 생활권이 필요하다며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 일자리를 생활권으로 분산하는 일이 쉬워질 것”이라 덧붙인다. 세계 여러 석학들은 지역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한 뉴로컬리즘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팬데믹으로 인해 벌어진 고용, 복지, 방역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로컬리즘이 완충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한 개인이 동네의 작은 상점을 방문하고 이웃과 시간을 보내는 게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경험은 많은 걸 바꾼다. 불편은 새로운 시스템의 보완으로, 즐거움은 신선한 콘텐츠로 남는다. 공항에 가지 않는 삶, 제주도와 강원도를 계절마다 여행하는 일상을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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