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광고가 아니다

조회수 2021. 2. 8. 17: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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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팔지 않는 광고? 물건이 아닌 경험을 파는 요즘 광고 이야기.

회색빛 차디찬 아스팔트가 도시의 그림이라면, 광고는 그 도시에 그려지는 표정이다.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수많은 LED 간판이 메트로폴리탄 뉴욕을 상징 하듯이, 오사카 도톤보리의 글리코(Glico) 광고, 피니시 순간의 마라톤 선수가 그 지역 혹은 상점가의 활기를 연출하는 것처럼, 광고는 물건 하나 팔기 위해 시작해 도시와 함께 시절을 걷는다. 지난 4월 코엑스 사거리 SM타운 외벽에 출렁이는 파도(WAVE)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코로나19 시절의 위안으로 해석했지만, 정작 그 벽을 장식한 디스트릭트는 코로나19를 생각하지 않았다. 유튜브에 달린 ‘한국인은 미래에 살고 있다’ ‘Koreal?’ 등과 같은 댓글을 기대하며 제작된 것도 아니다. 디스트릭트의 이성호 대표는 “처음부터 이런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도, 제안도 없었습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한 실험적 시도의 프로젝트였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봄이 온 것도, 여름이 찾아온 것도 깜빡하고 보내버리는 시절에 광고판 하나는 애써 여름을 예고하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나의 망상에 불과하다. 도시엔 서로 다른 이들의 서로 다른 마음이 흘러간다. 1개월 예정이었던 ‘WAVE’의 상영은 호평에 힘입어 2개월, 그리고 1개월 더 연장되었고, 7월 말까지 도시에 파도를 일으킬 예정이다. 강남 한복판 ‘WAVE’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 거리엔 바쁜 도시인도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의뭉스러운 그림들이 보인다. 150년 역사의 침대 브랜드 시몬스는 침대를 팔지 않는 기간 한정 숍 ‘하드웨어 스토어’를 신사동 길목에 오픈했었고,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칠성사이다는 기념 프로젝트로 향수, 그리고 문구류까지 제작했다. 그에 더해 4월부터 성수동에 자리를 튼 ‘나이스 웨더’는 업종상 편의점인데, 물건의 구색이 좀처럼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정도다. 올드 페리 도넛과 함께 치약을 팔고, 시리얼 코너 맞은편에는 욕실용품 셀렉션이 있고, 일견 ‘취향을 파는’ 콘셉트의 공간처럼 비쳐지지만, 가게를 기획한 CNP의 노승훈 대표는 “현존하는 편의점은 더 이상 우리 세대에게 편의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했다. 취향을 말하는 시대를 지나, 소비가 아닌 경험을 말하는 시절 한복판에서 도시는 어쩌면 화법을 바꿔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상품을 숨기고, 브랜드를 지우고, 장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조금 더 라이프, 삶 안에 안기는 모양새다. 일본의 마케팅 업체 OPEER는 “대부분 스스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문구, 사진으로 정보를 다소 아리송하게 하면서 소비자의 눈을 끄는 방식이 유효해진다”고도 설명했다. 시몬스가 침대가 아닌 침대의 부품이나 작동 방식을 드러냄으로써, 칠성사이다가 뜬금없이 향수 ‘오 드 칠성’을 발매하며 브랜드의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것처럼, 광고는 그리고 브랜드는 도시를 살기 시작했다.

광고를 제작하며 궁금증, 호기심을 남겨두는 건 사실 그리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사지 마라(Don’t Buy this Jacket)’라고 광고하며 유명해지기도 했고,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가 광고 컴피티션에 자주 등장하는 건 병의 프레임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린 비주얼 덕택이다. 애초 광고 문법엔 ‘less is more’란 룰이 존재한다. ‘사다’가 아닌 ‘살다’를 바라보기 시작한 시절에, 근래의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마케팅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풀이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케팅 컴퍼니 EA가 발표한 2019년 리포트에 의하면 최근 업계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인 건 브랜드가 경험적 마케팅에 쏟아붓는 예산의 증가였다. 조사 대상의 67%가 2020년에도 17%의 증가를 예상한다고 답했다. 의료용품 기업 밴드에이드는 지난 4월 도쿄에서 취업 준비생을 응원하며 스니커즈 무료 배부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당시 시모키타자와 역사 내엔 반창고가 아닌 검은색 스니커즈 100여 족이 걸려 있었다. 자동차 브랜드 폭스바겐은 지하철역 계단을 피아노 건반으로 도색하기도 했다. 이는 그들의 펀 씨어리(Fun Theory, 흥미 유발에 기반한 마케팅)에 의한 예지만, 자동차 회사가 걷기를 권장하는 꽤나 뜬금없는 목소리다. 반창고의 필요성을 기능이 아닌 소비자 생활에서 찾아내는 것, 차의 성능을 이야기하지 않고 차의 이미지를 더하는 것, 소위 콘텐츠 마케팅의 ‘콘텐츠’는 점점 너와 나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야말로 물건이 아닌 경험을 팔기 위한 시장의 재편성이 시작됐다. 지난여름 까르띠에는 도쿄에서 기간 한정으로 편의점을 오픈했다.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고작 몇 천원 장사를 시작했나 싶지만, 콘셉트는 ‘1971년 발매되었던 ‘저스트 앵 끌루’ 컬렉션의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재해석해 일상의 편의점을 프레셔스하게 변신시킨다’였다. 이름은 까르치에. 1970년 일본에서 사용됐던 까르띠에의 로고 이름 그대로다. 단 10일 동안 까르띠에는 물, 도시락, 오니기리, 간편식 등 대부분의 편의점 메뉴를 판매했고, 바구니와 비닐봉투도 별도 제작해 기대 이상의 호응을 끌어냈다. 세상에 열흘짜리 편의점은 어디에도 없지만, 하나의 스타일로서 까르띠에는 패션과 생활 사이 새로운 접점의 라이프 패턴을 제시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2018년엔 후지와하 히로시가 기획한 도심형 편의점 ‘THE CON’이 긴자에 오픈했고, 한국에서도 편의점 아닌 편의점, ‘나이스 웨더’가 4월 문을 열고 어느새 가장 핫한 장소가 되었다. 사실 CNP는 레트로풍 분식집 ‘도산 분식’, 빵집 ‘OUR’ 등 힙한 플레이스를 다수 만들어낸 기업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저희는 요식업 기업이 아니라 그냥 브랜드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장르의 물건이 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어울리는 풍경. 이건 이미 일상이 되어가지만, 어쩌면 공간이라기보다 커뮤니케이션, 우리가 알던 편의점의 확장이고 마케팅의 일면이기도 하다. 일상의 압축판으로서 새로운 개념의 편의점은 도시와 너와 나의 가장 가까운 미래가 되어가고 있다. ‘편의’란 말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경험과 함께 근래 가장 대두되는 건 유산, 레거시다.

칠성사이다가 70년 전 1950년대를 이곳에 데려오는 것처럼, 과거의 아카이빙을 활용한 마케팅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곰표가 뜬금없이 맥주, 패딩, 치약을 협업으로 만들며 오래전 밀가루 포장지에 쓰던 복고풍 서체와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왔고, 빙그레가 지코와의 협업으로 론칭한 패션 브랜드 ‘꼬뜨게랑’은 1986년 출시된 과자 꽃게랑 역사에 기반한다. 레트로 열풍, 소위 ‘약 빤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사례지만,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과거는 곧 내일이 된다. 트렌드 리서치 기업 스타일러스(stylus.com)가 앞으로 가장 중요한 마케팅적 요소로 거론한 건 ‘레거시’였다. “서스테너블한 생활을 해야 하는 시대에 물건은 사더라도 중고를 고르고, 쇼핑의 단순한 재미뿐 아니라 투자까지 생각하는 Z세대에겐, 물건에 담긴 풍부한 스토리가 매력적인 구매 동기가 된다”는 분석이었다. 실례로 루이 비통은 지난여름 160년에 달하는 역사를 소개하며 ‘뮤지엄 체험’을 공개했고, 엄선한 180착장을 10개의 방에 나누어 전시했다. 알렉산더 맥퀸이 런던 매장 꼭대기 층을 아카이브된 작품으로 장식하고, 이벤트,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속 가능하다는 말, 이건 어김없이 과거에 빚진 문장이다. “팔면 팔수록 손해.” 꼬뜨게랑을 기획한 빙그레 마케팅팀 이병욱 대리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는데, 지속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도시는 다른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함께 살아가기 위한 셈법이다.

지난 4월 <배너티 페어>가 공개한 <킨포크>를 창간한 편집장 네이선 윌리엄스와의 인터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장이 몇몇 있었다. 2011년 시작해 ‘킨포크 스타일’이란 말을 만들어냈고, 인스타그램과 함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잡지의 지금을 이야기하는 기사였는데, 현 편집장 존 번즈는 “기존의 킨포크식 접근이 예전만큼 파급력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킨포크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잡지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창간을 했던 네이선은 2016년 자리에서 물러났고, 포틀랜드에 거점을 두었던 잡지는 코펜하겐으로 옮겨 갔고, 햇살 비치는 카페에 카푸치노 한 잔과 책 몇 권을 무심코 놓아두었던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도 어느새 옛 시절이 되어버렸다. 마케팅 기획자 한석동은 근래 광고 마케팅과 관련해 인스타그램의 영향을 이야기했다. “모든 게 인스타그램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가 있어야 인스타에 올린다. 사람들은 자기 피드를 소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선별해 올리고, 피드는 자신한테 하나의 잡지와 같다. 그래서 콘텐츠가 필요하고, 맥락이 중요해지고, 자연스러운 바이럴을 위해 근래와 같은 움직임이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감성을 말하던 시절에서 스토리텔링 시대로의 변화다. IT업계 동향을 파악하는 가트너(Gartner)의 ‘Gartner Hype Cycle 2020’에 따르면, 이런 친밀감, 대화, 컨버세이셔널 마케팅은 근래 떠오른 가장 큰 화두다. “컨버세이셔널 마케팅은 회사와 소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인간처럼 대화를 따라 하게 하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역할을 해낸다”고 가트너는 적었다. 질 샌더가 몇 년째 잡지 <A Magazine Curated by>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페리에, 레드불이 자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잡지에 담아 전하는 것처럼, 매체를 빌려 물건을 얘기하던 기업은 스스로 미디어가 된다. 광고란 틀은 여느 때보다 무한해지고 유연해지고 희미해져 너와 나 사이의 일상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개인과 개인의 자리가 드러난다. “사람들이 도심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보고 싶어 할까 고민했고, 도심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무드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갈 계획이에요.” 강남 한가운데 파도를 일으켰던 이성호 대표는 그 시작이 이런 사람들의 바람이었다고 설명했다. ‘광고 같지 않은 광고.’ 이 말은 크리에이티브를 설명하는 하나의 수식이었지만, 소비를 넘어 경험, 개인에서 출발해 커뮤니티, 지속 가능한 내일을 바라보는 시대에, 이건 그와 동등한 자리에서 하나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아이러니한, 사지 않기 위해 구매를 하는 미래의 화법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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