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의 역습

조회수 2021. 2. 8. 1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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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살균을 위해 몸에 쌓여가는 미세플라스틱과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청결의 모순.

“살균, 세탁하셨나요?”라고 시작했던 세탁기 광고가 있었다. 10년도 더 된 광고인데, 아직도 이 노래의 멜로디가 종종 입에서 맴돈다. 특히 머리카락과 먼지를 겨우 훔쳐내는 정도의 청소나, 은은하게 퍼지는 개수대 부패의 냄새를 휘저으며 설거지를 시작할 때, 이 노래를 부르는 나를 발견하면 참으로 겸연쩍다. 그때마다 “이건 정말 세뇌야 세뇌”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살균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은 중독성 강한 멜로디 탓이 아니다. 뒤늦게 입학한 대학원에서 한 학기의 끝은 살균으로 시작해 소독으로 끝이 났다. 학생들이 모이는 모든 건물의 입구에서 체온 확인과 살균은 통과의례였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강의실은 소독이 되어야만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집에도 항균, 방역을 위한 제품이 하나둘 늘었다. 욕실과 주방용 살균제를 따로 두고, 손 소독용 젤과 에탄올에 적신 물티슈를 사용한다. 마스크는 소독 램프에 넣고, 건조기와 식기세척기의 살균 버튼을 누른다. 온갖 가전제품을 구비하지 못하면 하다못해 섬유 탈취제나 피톤치드와 같은 스프레이 제품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나.

아이들을 위해서는 청결에 더 신경을 쓴다. 인체에 안전한 제품 위주로 살균 99.9%, 천연 항균과 같은 단어가 붙은 제품을 고심 끝에 고른다. 가습기 살균제도 그랬다. 안전을 강조하는 문구의 광고를 달고 1990년대 중반 개발되어 2011년 판매 중지될 때까지 가습기 살균제는 700만 개 넘게 판매됐다. 그리고 2020년 7월 기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1552명에 달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국내의 코로나19 사망자는 300명을 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온갖 미사여구를 달고 있는 살균, 소독 제품들이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 성분 공개나 제품 안전 확인이 법적으로 강화된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심히 살펴보는 제품에 쓰인 용어가 무엇이든 청결, 살균 제품 대부분은 화학물질이다. 게다가 우리는 손 소독제, 메이크업 세정제를 달랑 하나만 사용하지 않는다. 주방에서 살균 소독제를 쓰고, 샴푸로 머리를 감고, 화장품을 몇 개 바르고, 향수를 뿌리고 디퓨저를 장식해두며 생리대를 사용한다. 각각의 제품이 모두 안전기준을 준수했다 하더라도, 동시에 여러 종류의 제품을 사용할 때 인체에 미치는 화학물질의 독성은 제품 개수의 합의 아니다. 여러 제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이 서로 상승 효과를 불러온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는데, 이를 ‘칵테일 효과’라고 부른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현대인이 화학물질 제품을 동시에 여러 개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한 노출 평가 기준을 논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청결, 위생의 요구가 커지면 우리는 쉽게 소비로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빨고, 씻고, 볕에 말리는 일에 시간을 쏟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 번 뽑아 쓰고, 버리고 뿌리고 바르는 것을 통해 간단히 살균된다는 제품을 선택한다. 따라서 살균력은 강한 것으로,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으로 소비가 이뤄진다. 몇해 전 쓰레기 대란 이후, 매장 안에서는 다회용기를 사용하자던 약속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완전히 느슨해졌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통한 감염을 우려하게 되면서, 우리는 더 쉽게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을 위생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쓰레기는 더욱 더 늘어난다. 청결 제품을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과 마스크와 화장품이나 세정 제품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이 태평양을 떠다닌다. 전복과 같은 어패류, 소금과 생선에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 지는 오래다. 지난해 WWF(세계자연기금)는 우리가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강력한 살균, 더 쉬운 청결을 바란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나. 화학제품에 우리의 몸을 담그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깨끗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어떻게, 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냐고.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화학물질에서 잠긴 몸을 조금 더 일으켜 세울 방법이 무엇인지, 일회용품을 대신할 제품이 어디에 있는지도 안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마음을 내어, 덜 소비하고 함께 깨끗할 방법을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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