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사랑한 시집

조회수 2021. 2. 8. 18: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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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 한 문장! 젊은 작가 6인이 뽑은 인생 시집.

"내 인생은 기울고 해도 기울고 절망 아니면 희망이겠지; 변해가는 건 변해가라지 사랑의 불, 인연의 재, 그리고 권태만이 남으리라 "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진이정

20대 시절 울고 싶을 때 들춰본 시집. 서른 몇 살 때 누군가에게 빌려줬는데 돌려받고 싶지 않다. 이제 와 이 시집을 다시 읽는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럴 용기가 없다. 시집 속 많은 시를 잊었지만, 위의 구절만큼은 맥락 없이 떠올라 중얼거릴 때가 있다. 나를 앉히거나 일어서게 하는 문장. 멈추면서 움직이는 문장. 여전히 나는 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나의 끝을 안다. 최진영(소설가)

"슬픔이 나를 깨운다"

<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내게 개인적으로 좋은 시란 영민하고 눈 좋고 귀 밝고 냄새 잘 맡는 사람이 무언가를 꾸준하게 찬찬히 만지고 바라보며 위험하리만치 솔직하게 적은 기호다. 그 솔직함의 정도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보통 관찰하는 그 무언가가 시인 자신일 때 균열로 드러난다. 쓰는 사람이 자신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기만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가장 흠모하는 시인의 재능은 본능을 발로 뻥 찰 수 있는 솔직함이다. 황인숙만큼 솔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의 제목이자 표제작의 첫 줄이기도 한 ‘슬픔이 나를 깨운다’라는 문장은 노력과 재능으로 빚은 감정 과학의 진리다. 박세회(소설가 겸 <에스콰이어> 매거진 피처 디렉터)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출처: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한 책자를 발견했다. 우리 동네 배달음식점들을 소개하는 쿠폰북이었다. 음식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고 페이지 끝에는 음료수 무료 혹은 2000원 할인 쿠폰이 인쇄되어 있는. 10년쯤 전 발행된 그 책자를 생각 없이 펼쳐 보았는데,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수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웰빙 짜장면’ ‘힐링의 맛’ 같은 표현들이다. 말에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웰빙’ ‘힐링’ 같은 말처럼 우리가 너무 많이 사용했던 말은 일찍 그 기한이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떤 시를 두고 ‘감동적이다’ 혹은 ‘따뜻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주저되는 일이다. 하지만 김용택 시인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라면 여전히 ‘감동적이고 따뜻한 시’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다. 시인의 시는 정말 감동적이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박준(시인)

"긴 잠에서 깨어난 외할머니가 조용히 매실을 담그고 있다 긴 잠을 자고 있는 내가 깨어날 때까지"

출처: <단지 조금 이상한> 강성은

무더운 여름 오후, 잠에서 깨어난 외할머니가 내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매실을 담그는 이 장면이 나에게는 가장 여름이면서, 여름을 벗어나는 장면으로 느껴진다. 강성은 시인의 ‘환상의 빛’은 여름과 겨울, 바다와 눈이 누군가의 잠 속에서 솟아올랐다가 사라진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여름과 겨울을 오가는 이 시집을 꺼내 곱씹어 읽는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이면 뜨겁던 여름날도 저물어가는걸 느낀다. 황인찬(시인)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처음 이 시집을 읽었을 때 손에서 내려놓기 무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슬픔은 공포와 맞닿아서. 사람들은 이 시집에 대해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독특하다고 말한다. 그 말은 분명히 맞는데, 나는 정재학이 독특함을 탐미했다고 느끼진 않는다. 다만 그래야만 했던 마음이 그래야만 했던 방식으로, 그래야만 했던 게 아닐까라고 느낀다. 청춘의 한때에 우연히 찾아오는 감각과 감성의 찰나를 정재학이 슬쩍 들추고야 말았던 게 아닌가라고. 이우성(시인)

"내 입술에 키스하고 키스하고 키스해, 다시, 그녀는 그렇게 했어"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거트루드 스타인

전 세계 퀴어 작가들의 사랑 시 75편을 엮은 시선집. 숨길 수 없는 사랑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될 때까지, 낮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목소리들이 힘을 가지게 될 때까지, 우리의 사랑이 장르가 되지 않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이름들. 슬프고도 달콤한, 환하고도 간절한 시어들이 다채롭게 반짝이며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다만 우리가 ‘사랑’의 힘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강혜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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