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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애, 시버 러버

조회수 2021. 2. 9. 17: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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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새로운 연애 방식, 시버 러버.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뷰티 인사이드’

지난해부터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막상 소개팅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주춤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수고에 대한 부담도 크지만 거기서 거기인 주변 인물이 소개해주는 상대의 배경을 듣고 나면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뒷목이 당긴다. 20대 여자, 잡지사 에디터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소개팅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은 크게 3가지다. “연예인 많이 봐요? 누가 제일 예뻐(멋져)요?” “엄청 바쁘지 않아요?” “독립적인 편이라고 했는데, 연애 왜 하려고 해요?”라는 뉘앙스의 질문이다. 지겹고 고단한 질문의 끝에는 서로의 생각을 좁히기 위한 피곤함만 쌓인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 칼럼니스트 도우리 씨가 낭독한 ‘탈연애 선언문’에는 이런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연애법이 담겨 있었다. 익숙한 성 역할과 사회적 흐름에 맞춘 연애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애 방식을 인정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성별에 따라 역할이 정해지고 상대를 독점해버리는 정상적 연애의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커플의 모습 중 최근 SNS에 종종 등장하는 시버 러버(Cyber Lover)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만남을 일컫는 이 표현은 시대와 기술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소개팅 앱을 활용해 적당한 선을 지키며 감정을 교류하고 내 시간과 삶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덕이다. 소개를 기다리고 상대를 찾기 위해 물리적인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앱을 켜고 내가 원하는 상대의 조건을 입력하면 알고리즘이 내게 어울리는 상대를 찾아준다. 때로는 맞고 대체로 틀리지만 시간과 꾸밈 노동에서 자유로워진다. 소개를 부탁할 때 말 못했던 은밀한 취향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다. 취미와 외모는 물론이고 경제력, 학력, 목소리, 키, 거주하는 곳 등 상대의 조건도 놀랍도록 세세하다. 시작부터 이렇게 ‘나다움’에 집중할 수 있는 시버 러버 찾기는 만남을 시작하고도 유지가 가능하다. 연애의 부담이 없으니 지금껏 쌓은 소중한 일상이 무너질 위험도 적다. 다정하고 따뜻한 대화가 오가고 원할 때만 만날 수 있으니 감정의 농도도 오롯이 내 몫이다.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연애만 생각하면 된다. 모든 연애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시버 러버에게도 어떤 책임과 위협이 따르지만 이건 언제나 있었던 일이다.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랑은 희생이 아니다

희생과 헌신은 낭만적인 사랑의 절대 요소로 작용한다. 새벽 2시에 “널 보고 싶어 달려왔어” 하는 연인은 로맨틱한 사랑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바쁘다. 워라밸만큼이나 ‘러라밸’도 중요하다. 연인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한 사람에게는 데이트만큼이나 혼자 음미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시간을 조율하고 만남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시버 러버와의 만남은 안락한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다.

연애는 독점이 아니다

연애를 시작하면 일종의 책임감이 발생한다. 규칙적인 연락과 어느 정도의 구속은 암묵적으로 따른다. 이성의 연락처를 관리하는 행동, 옷차림과 노출의 정도를 통제하는 행동, 교우관계를 검열하는 행동은 한 인간의 오롯한 인생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통제와 구속을 사랑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연애 이후의 우리 인생을 생각해보면 그 상대는 평생을 함께할 정도의 진한 관계를 맺어야 가능하다.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내 삶을 통제하려는 당연한 압박이 없는 자유로운 세상은 쟁취해야만 내 것이 된다.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너의 결혼식’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위치는 연인 관계가 끝난 후 흉흉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데이트 폭력, 이별 범죄 등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의 튀는 행동은 남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여자를 길들이고 통제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사랑에 뒤따르는 무서운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만남은 애초에 이런 위협에서 일차적으로 자유롭다. ‘연인’이라는 완전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도 괜찮고, 원하지 않는다면 만남을 거부할 수 있다. 상대에 대한 충분한 믿음이 생기기까지 개인적인 정보 또한 통제가 가능하다. 물론 사이버 연애는 진짜와 가짜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마음먹고 철저한 설계를 하면 신원 속임 정도는 감쪽같이 할 수 있다. 시버 러버를 할 때 적당한 선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욕망에 충실할 수 있다

시버 러버의 형태는 다양하다. 실제로 데이트 앱을 유영하다 보면 프로필에 FWB(Friends with Benefits)을 써놓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가끔 성관계를 할 친구를 찾기도 하고, 함께 취미를 할 이성을 찾는 경우도 있다. 경제력이나 외모, 몸매, 독특한 취향 등 사회적으로 ‘밝힌다’고 치부될 수 있는 요구 사항을 말해도 간섭할 사람이 없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닌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과 감정을 존중 받으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나와 노골적으로 희망 사항을 공유하는 덕분에 비슷한 필요를 가진 사람과 만남을 시작하니 쓸데없는 감정 소비와 괜한 기대를 애초에 버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사랑에는 다양한 모양이 존재한다

연애의 정의를 내가 내릴 수 있다. 사회가 정한 남자와 여자의 역할, 데이트 시나리오에 맞춘 연애에 반기를 들 때는 거부해도 괜찮다. 어차피 내 행복을 위한 연애다. 페미니스트라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 자신을 부정하며 연애 때문에 힘들어할 일은 없을 것이다. 성격, 취향, 나이뿐 아니라 각자 사정이 다르니 다양한 형태의 연애가 나오는 건 당연한 결과다. 여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명제는 애초에 무의미하다.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엑시트’

스마트폰은 사랑을 타고

시버 러버를 만날 수 있는 기술력은 편안한 연애를 가능하게 했다. 다양한 콘셉트로 등장한 소개팅 앱은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범위도 넓혔다. 앱 관련 카테고리에서 당당히 한 카테고리를 차지한 소개팅 앱은 매우 다양하다. 200개를 훌쩍 넘는 앱에는 전문직 이성만 가입할 수 있는 ‘골드 스푼’ 직업과 대학을 검증 받아야 가능한 ‘스카이 피플’ 등 다양한 방법과 조건을 기준으로 상대를 탐색할 수 있다. 안전한 범위 내에서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기능 또한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출처: 이미지 출처 :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외로움은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

세상에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AI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사람이 주는 온기는 대체할 수 없다. 혼자 잘 먹고 잘사는 사람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다. 외로워서다. 피곤하고 상처 받는 일상에 내 상처에 공감하고 위로해줄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받는 위로는 제한된다. 이런 위로와 행복을 위해 ‘연인’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맺지만 시버 러버는 그 피로도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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